스마트폰 약자에 기회…디버전스 춘추시대
웨어러블 기기가 포스트 스마트폰의 춘추전국시대를 열고 있다. 소니에 이어 삼성도 스마트 시계를 내놓았고 이보다 앞서 웨어러블 시대를 선언한 구글은 구글 글라스라는 안경형을 내놓았다. 나이키는 퓨얼밴드라는 만보계 팔찌를 내놓았고 미스핏이란 밴처기업은 샤인이라는 방수 만보계를 내놓고 약진하고 있다. 조만간 애플과 LG도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이 밖에 모자·목걸이·귀고리·반지·의류·혁대·양말·신발 등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해 내놓고 있다.새 질서가 지배하는 신시장
왜 그럴까. 황금 알을 낳던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이 양분하며 높은 진입 장벽을 쌓았지만 포화하고 있다. 그리고 막강한 사용자 경험(UX) 기술과 마케팅, 브랜드 파워, 높은 기술력 때문에 다른 기업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다. 그러나 몸에 착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시장과 스마트폰은 상이하기 때문에 삼성과 애플의 양강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웨어러블은 특성상 용도가 단순하고 사용자 폭도 좁은 디버전스(divergence: 원래의 기능에만 충실하자는 개념) 제품이며 품목 역시 다양하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 시대의 약자가 군웅할거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우선 스마트폰은 휴대용이지만 손에 쥐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내려놓는다. 식사할 때에는 식탁에 올려놓고 술에 취하면 택시에 두고 내려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웨어러블은 항상 몸에 붙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분실과 도난의 위험이 적어 개인 정보, 전자 열쇠나 모바일 결제 등 보안이 필요한 정보를 담고 다닐 수 있다.
둘째, 웨어러블은 몸에 붙은 센서로, 실시간으로 생리적·심리적 신호를 측정할 수 있다. 아마 웨어러블이 있었다면 10여 년 전 경기 도중 심장부정맥으로 쓰러져 팬들의 가슴속에 묻힌 고 임수혁 선수의 안타까움은 막을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사실 심장부정맥은 급사의 주원인이어서 조기에 진단하고 발생했다면 즉각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부정맥이 일어나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에 도착하면 부정맥이 사라져 잠시 심장이 쿵쾅 뛴 것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런데 웨어러블로는 항상 측정이 가능하니 발생 즉시 기록해 의사에게 가져갈 수도 있다. 어쩌면 병원이란 물리적 공간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의료 진단과 후속 환자 관리라는 기본적인 개념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개인화된 헬스케어를 앞당길 수 있을 수도 있다. 셋째, 개인 데이터를 이용해 개인화된 서비스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저본의 업밴드는 자신의 수면 패턴을 분석한다. 언제 잠을 설쳤는지 숙면하는지 파악해 알려주고 한 침대의 아내도 모르는 은밀한(?) 정보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공유한다. 이런 데이터는 클라우드를 이용해 원격으로 측정하고 데이터를 전송할 수도 있다. 이 밖에 뇌파를 이용해 스트레스를 측정해 알려줄 수도 있고 심장박동을 측정해 운동 수준을 파악한다거나 비만 수준을 알려줄 수도 있다. 건강과 의료뿐만 아니라 보안·스포츠·교육 등의 생활 전반의 영역에서 응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스타비트의 물안경은 관자놀이에서 심박수를 측정해 왕복 횟수와 칼로리 소모량을 알려준다.
넷째, 새로운 협업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모토롤라의 HC1은 안경형 웨어러블로, 사용자가 작업하며 바라보는 장면을 원격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원격지에서 작업 상황을 함께 바라보며 지원하는데 사용한다. 물론 이런 가능성은 대리 시험 같은 가능성도 함께 열게 된다.
이런 특성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웨어러블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웨어러블이 필수적인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경은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착용한다. 즉 스마트 안경이라면 결국 전통 안경과 경쟁해야 한다. 안경이 없으면 출근하지 못하듯 스마트 안경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안경을 벗고 스마트 안경을 끼게 하든지 아니면 안경과 공생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 허리띠가 복부 지방을 측정할 수 있어도 바지를 잡아주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스마트 시계는 시계와 경쟁하며 스마트 속옷은 다른 속옷과 경쟁해야 한다.
성공적인 웨어러블의 조건
또한 웨어러블은 사회적인 패션 아이템이다. 소비자는 안경을 구입할 때 가장 먼저 멋진 안경테를 고르고 나서 안경알을 맞춘다. 시계도 마찬가지다. 정작 사람들은 시간을 알기 위해 시계를 차지 않는다. 이제 시계도 패션 아이템일 뿐이다. 패션 아이템이니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누구나 똑같은 모양의 스마트 안경을 끼고 다니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패션은 애플과 삼성 같은 IT 기업의 전문성이 아니다. 그래서 애플이 최근 버버리의 최고경영자(CEO) 안젤라 아렌츠를 영입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착용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얼굴 크기와 양안 거리가 안경에 중요하듯 웨어러블은 개인의 신체 부위에 적절하게 맞게 제작돼야 하며 소재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웨어러블의 인터랙션은 촉각 중심의 다중 감각과 암묵적 상호작용으로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은 시각을 핵심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그래픽 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GUI)가 중요했다. 그러나 웨어러블에서는 화면이 작거나 아예 없다. 따라서 시각보다 촉각을 이용하는 햅틱스와 골전도 기술을 이용한 소리가 부상한다. 물론 구글 글라스가 시각 디스플레이를 이용하지만 막상 실제로 쓰는 것을 보면 카메라로 찍는 용도가 강하지 시각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적다. 이와 함께 조작 방법도 착용하면 켜지거나 기기 전체를 두드리면 작동하는 것처럼 맥락을 이용해 사용 의도를 인식, 작동하는 암묵적 상호작용 기술이 중요하게 된다.
그리고 웨어러블 역시 스마트폰처럼 서비스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 또한 독립적인 사용도 중요하지만 다른 기기와의 연결성이 중요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기 위한 기본 서비스는 스마트폰에서 연동하는 방식이다. 스마트 시계와 태블릿의 절묘한 조합은 스마트폰도 대치할 수 있을 수 있다. 짧은 꼬리로 베터리 이슈를 언급하지만 결코 간단한 이슈는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말, 일곱 제후국 중 가장 강한 조나라와 진나라가 맞서고 있었다. 그때 귀곡선생의 두 제자인 소진과 자의는 각기 조와 진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조의 소진은 여섯 나라가 남북으로 연대하는 합종 전략으로 반(反)진나라 전선을 형성해 15년간 평화를 지켰다. 그러나 진의 장의는 연횡 전략으로 세워 이들을 분산시켜 놓았다. 결국 이들은 모두 진에 굴복했다.
다가올 웨어러블의 춘추전국시대에는 누가 조나라가 될지, 진나라가 될지 아직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메뚜기가 날뛰다가 짝을 찾듯이 다양한 합종연횡이 전개될 것이다. 이런 혼란기에는 제자백가가 그렇듯 자유로운 사상이 싹트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UX) 질서가 태어날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산업 구조도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가볍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 육참골단(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의 의지로 변신이 용이한 기업이 살아남을 것이다.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 사이언스연구소 소장 kwangsu.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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