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D 출구전략·소재 산업 강화 ‘이중 포석’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와 아이폰에 쓰이는 ‘고릴라 글래스’를 개발한 세계적인 유리·소재 기업인 미국 코닝사 간에 빅딜이 성사됐다. 두 회사는 1995년 휴대전화나 TV 등에 쓰이는 액정표시장치(LCD)용 핵심 소재인 기판유리 생산에 주력하는 삼성코닝정밀소재(이하 삼성코닝)를 설립했다. 삼성은 LCD 기술이 필요했고 코닝은 자신들이 만든 유리 제품을 안정적으로 팔 수 있는 삼성이라는 매력적인 고객의 제안을 뿌리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합작회사를 세워 유리와 관련된 사업에만 집중해 쏠쏠한 재미를 거뒀지만 이제부터는 삼성이 아예 코닝의 최대 주주가 되어 유리 이외에도 코닝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사업 분야에서 포괄적인 협력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 측은 지난 10월 23일 이러한 내용의 협약을 코닝과 체결했다고 밝혔다.삼성그룹이 미래 성장 동력이랄 수 있는 첨단 소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고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부터 이건희 회장까지 40년 ‘절친’ 관계를 유지해 온 코닝과 강도 높은 동맹을 선택한 것이다. 삼성코닝 실적 갈수록 ‘하락’
그렇다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어떤 방법으로 코닝의 최대 주주가 되겠다는 것일까. 방법은 간단하다. 현재 삼성코닝은 코닝이 50%, 삼성디스플레이가 42.54%,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7.32%의 지분을 각각 보유 중이다. 1단계는 삼성 측이 보유한 지분을 고스란히 코닝 측에 넘겨주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단 자신이 가진 지분 전체를 코닝에 팔겠다고 했고 홍 회장 측의 지분 또한 조만간 정리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 이후 삼성디스플레이는 코닝의 전환 우선주를 2조4300억 원에 사들이는데 이 전환우선주는 7년 뒤 보통주 7.4%로 바뀌어 삼성디스플레이는 자연히 코닝사의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현재 코닝의 최대 주주는 사모 펀드인 블랙락으로 6.2%를 보유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삼성디스플레이가 코닝의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지분 취득도 9%를 최대치로 한다고 아예 선을 그어 버렸다. 2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지만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은 것만으로도 두 회사 간의 신뢰도가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삼성코닝의 경영에서 손을 뗀 이유는 삼성코닝의 실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디스플레이 산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삼성코닝이 매년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지분 정리에 의구심을 갖는 업계 관계자들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코닝은 2010년 매출 5조6159억 원, 순이익 3조3994억 원이란 엄청난 실적을 거두는 등 ‘알토란’같은 회사로 명성이 자자했다. 실적이 워낙 좋다 보니 매년 주주들에게 순이익의 40%가 넘는 고액 배당도 해왔다.
하지만 2011년쯤부터 LCD 불황이 불어닥쳤고 삼성코닝의 매출과 순이익이 거의 매년 1조 원씩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매출 3조2452억 원, 순이익 1조3551억 원에 머물렀다. 2020년에는 현재 매출의 반 토막을 기록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삼성디스플레이로서는 이쯤에서 ‘출구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삼성코닝의 부진이 예상되는 이유에 대해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갈수록 LCD의 가격은 떨어지고 고객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 거래처였던 LG디스플레이가 더 이상 삼성코닝의 제품을 쓰지 않는 것도 영향이 크다”며 “2011년만 하더라도 LG디스플레이는 삼성코닝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였지만 지난해부터 LG화학이 직접 LCD용 유리기판을 만들어 LG디스플레이 등에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삼성코닝 제품을 찾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코닝도 2010년을 정점으로 실적이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터라 이번 딜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소재 산업 키우기에 나선 삼성의 행보
그렇다면 코닝의 최대 주주에 올라선 삼성은 향후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이번 코닝에 대한 지분 투자는 완제품과 부품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한 삼성이 차세대 먹을거리로 정한 ‘소재’ 사업의 강화와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완제품은 세계 1등을 달성했고 부품도 어느 정도 됐는데 이젠 소재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851년에 설립된 코닝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나 애플의 ‘아이폰’ 등에 사용되는 특수 강화 유리인 ‘고릴라 글래스’로 유명하다. 최근 코닝은 휘는 유리인 ‘윌로(Willow)’를 공개했는데 이는 차세대 플렉서블 기기에 최적화된 유연성을 가진 유리로, 가벼우면서도 높은 강도를 가진 것이 큰 특징이다. 이에 따라 갤럭시 기어나 휘어진 스마트폰 등 최근 ‘휘는 디스플레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삼성의 차기 전략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코닝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코닝과의 관계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닝은 뛰어난 유리 기술과 함께 세라믹·통신·환경·생명과학 등 다양한 특수 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이번 딜을 통해 그토록 강조했던 ‘소재 1등’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된 것이다. 유기화학과 함께 무기화학 소재 분야로도 기반을 넓힐 수도 있게 됐다.
최근 삼성그룹의 행보를 지켜보면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꼽고 있는 ‘소재 부품’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패션 사업을 삼성에버랜드로 양도한 제일모직이 지난 10월 OLED 소재 업체인 독일의 노발레드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6월 삼성석유화학은 독일 SGL그룹과 탄소섬유, 복합 소재 판매를 위해 합작 투자를 했다. 또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근처에는 삼성전자·삼성SDI·제일모직·삼성정밀화학·삼성코닝 등 5개 계열사가 모여 연구하는 ‘전자소재 연구단지’도 조성, 이르면 올해 안에 가동할 계획이다.
글로벌 세트 기업들도 비슷한 전략이다. 최근 애플이 탄소 소재 전문가를 채용하는 것 또한 혁신의 근간에 ‘소재’를 둔다는 점에서 삼성과 비슷한 행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교수는 “일본의 기업들이 불황에도 살아남는 이유는 소재 산업이 튼튼하기 때문이다. 모든 산업이나 기업의 뿌리는 튼튼한 밑받침이 되는 소재에 있다”고 했다.
돋보기
이건희-홍석현 지분 연결 고리 끊기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삼성코닝 지분(7.32%) 정리를 놓고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닝은 삼성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회장의 지분도 사들여 지분 100%를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지분 정리가 삼성의 후계 구도 정리와도 연관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우선 코닝이 홍 회장 지분을 사게 되면
홍 회장과 삼성, 즉 중앙일보와 삼성의 연관 고리가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그간 알짜 기업인 삼성코닝의 높은 배당금이 홍 회장을 통해 중앙일보로 흘러간다는 시각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이번 지분 매각을 두고 재계 일부에서는 앞으로 삼성의 전자 계열사를 진두지휘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앞날을 위해 외삼촌인 홍 회장의 지분을 사전에 정리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지분 매각으로 홍 회장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내놓게 됐다. 그동안 홍 회장은 이 회사 지분을 통해 막대한 배당금 등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의 상무이사·전무이사·부사장 등을 재직한 바 있으며 이 당시 삼성코닝의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현재 129만 주 정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홍 회장은 삼성코닝으로부터 2011년 2464억 원, 2012년 1300억 원대 등 해마다 엄청난 규모의 배당금을 챙겨 왔다.
이 배당금은 JTBC로 넘겨져 드라마, 예능의 제작비로 투입됐다는 이야기가 언론계에서 공공연히 나왔다. 홍 회장이 지분을 전량 매각한다면 확보할 자금은 약 3000억~36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삼성 측은 홍 회장의 지분 매각 여부에 대해 확인을 거부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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