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변화하는 트렌드를 얼마나 빨리 간파하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실적을 달성할 수 있는 원천을 파악하는 게 핵심일 것이다.



조승연 라임투자자문 이사
[경제 산책] 한국 기업, ‘고정관념’ 버려야
1975년생. 2001년 서울대 화학공학 학사·석사. 2004년 서울대 기술정책 박사 수료. 2004~2008년 SK이노베이션·아모레퍼시픽. 2009년 LIG투자증권·HMC투자증권 애널리스트. 2012년 라임투자자문 이사(현).



올해 한국 증시(코스피 기준)는 지난 석 달 동안 외국인들이 14조 원어치를 사들이며 한때 1770 선까지 하락했던 지수를 2030 선까지 끌어올려 전년 말 대비 2% 상승한 상태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5% 내외 하락했고 현대차는 20%대, SK텔레콤은 50% 이상 급등하는 등 종목별로 등락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그런데 변동성 큰 증시에서 유독 올해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시장 참여자들의 무관심 속에 조용히 상승하며 흙 속의 진주로 부각된 기업들이 있다. 바로 페인트 기업인 노루홀딩스와 삼화페인트, 시멘트 기업인 한일시멘트와 아세아시멘트다. 이들은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정보기술(IT)·자동차·조선과 언뜻 보기엔 관계도 없어 보이고 부동산 경기나 건설 시장이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는 주목 받기 어려워 보이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이들 기업들은 부정적인 일반의 견해를 깨고 올해 적게는 40%에서 많게는 120% 정도 상승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점이 예상을 뒤엎는 큰 폭의 상승을 가져온 것일까. 해답은 이들이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사업 구조나 재무구조를 개선했고 이를 통해 향상된 실적을 거뒀다는 데 있다.

페인트는 기본적으로 주택 외벽을 칠하는 제품으로, 건설·부동산 경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과점화된 국내 페인트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출혈 과당경쟁이 아니라면 점유율을 높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노루홀링스와 삼화페인트는 조선과 IT를 비롯한 산업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세계 1위의 국내 조선 업체들은 선박과 해양 플랜트 분야에서 지속적인 수요가 창출됐고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가전·자동차 등의 산업용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의 선전이 이들의 매출과 이익을 큰 폭으로 늘려 줬다. 물론 그동안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과의 제휴,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품질과 공급 능력을 향상시켜 온 덕분이다.

시멘트는 더더욱 부동산·건설 경기와 밀접하다. 국내 업체들은 전체적으로 지난 6년여 동안 무려 1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기에 이들의 상승은 남다르다. 법정 관리에 들어간 동양시멘트 등 여타 업체들의 저조한 상황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국내 시멘트 수요와 지역화되고 세분화된 레미콘 시장 및 급등한 원재료 대비 미약한 판가 상승 등 우호적이지 못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매년 꾸준한 이익을 창출해 왔다. 한일시멘트·아세아시멘트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는 여타 기업과 달리 주력 산업 위주의 사업 구조에 안정적인 재무구조 및 높은 설비 효율성, 모르타르(dry mortar) 사업으로의 시장 확대 전략 성공에 있다. 모르타르는 1990년대 후반부터 건축 현장에 보급됐고 최근 3년간 연평균 20%대의 높은 성장을 거뒀는데 이들은 시장 확대라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 왔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시장은 매일매일 무수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반응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배경 지식과 고정관념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처하기 어렵다. 결국 변화하는 트렌드를 빨리 간파하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실적을 달성할 수 있는 원천을 파악하는 게 핵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