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遺言) 코드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 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전부터 내 몸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내 갑옷을 벗기면서 송희립은 울었다. ‘나으리, 총알은 깊지 않습니다.’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 제자리를 찾아서 박혀 있었다. 오랜만에 갑옷을 벗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


어떤 사람의 근본적인 본성과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대개 일치한다.


작가 김훈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의 최후를 이렇게 묘사했다. ‘삼국지’에도 이와 비견될 만한 죽음이 있다. 제갈량의 죽음이다. 그는 충무공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죽음을 공개하지 말라고 유언한다. “내가 죽은 후에 절대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사마의가 공격해 오면 나를 닮은 목상(木像)을 만들어 내 사륜거에 앉혀라. 좌우에 근위병들이 엄중히 호위하도록 하라. 사마의가 혼비백산해 달아날 것이다.” 군대의 지휘관이나 장수가 전장에서 전사한 것보다 명예로운 일은 없다지만 제갈량이나 충무공의 장렬한 모습은 일세를 풍미한 영웅호걸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임종(臨終)을 맞은 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다섯 단계로 나눈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인(denial) 단계 ▷왜 하필 나인가 원망하는 분노(anger) 단계 ▷죽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협상(bargaining) 단계 ▷죽는다는 현실에 절망하는 우울(depression) 단계 ▷죽음이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수용(acceptance) 단계가 그것이다. 경우에 따라 각 단계는 순서가 바뀌거나 건너뛸 수도 있지만 대체로 이런 순서를 밟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개 마지막 수용 단계에 이른 후에야 유언을 남긴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깨지고 죽음이 인생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때 비로소 남은 삶에도 여유가 생기고 유언이라도 남길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독일의 의사 출신 저널리스트 한스 할터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근본적인 본성과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대개 일치한다.”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과 아이슈타인의 마지막 육성은 각각 이렇다. “죽음이 대체 뭔지 모를 정도로 충분히 잠을 잤구나!”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을 다한 것 같구나!” 자신의 비전을 성취한 자의 여유가 묻어 있다.

반면 정적인 스탈린에게 암살당하면서 “나는 승리를 믿는다. 끊임없이 투쟁하라!”는 말을 남긴 레온 트로츠키나 “평화…투쟁…중화를 구하라…”고 한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의 유언에는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과업에 대한 여한(餘恨)이 배어난다.


후계 문제에 집중된 황제들의 유언
600명이 넘는 역대 중국 황제들의 유언은 대개 후계자 문제에 집중된다. 후계자 선정은 언제나 제국의 존망(存亡)을 가르는 최대 관건이었다. ‘삼국지’ 시대도 마찬가지다.

사세삼공(四世三公)의 명문가 출신 원소는 후계자 문제를 두고 우왕좌왕하다가 장남 원담의 후계자 지위를 박탈하고 막내 원상에게 그 자리를 넘기는 유언을 남긴다. 원소의 오판으로 사후에 그의 집안은 쑥대밭이 됐다.

모범적인 케이스도 있다. 진시황 때부터 내려온 전국옥새를 원술에게 헌상하고 빌려 온 3000명의 군사로 강동 지역을 평정해 오나라의 기틀을 잡은 손책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이 화근이 돼 요절했다. 죽음을 앞둔 26세의 손책은 19세의 동생 손권에게 대권을 넘기면서 다음과 같이 유언한다. “너는 군사를 동원해 천하 영웅들과 겨루는 일은 나보다 못하다. 하지만 용인술과 수성(守成)은 나보다 낫다. 내부의 일은 장소(張昭)에게 묻고 외부의 일은 주유에게 자문하라.” 손권은 형의 유지를 잘 받들어 오나라를 크게 부흥시켰다.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태자가 아둔하면 그대가 황제가 되시오”
후계자 선정과 관련된 유언 중에서 두고두고 후세에 회자되는 것은 유비의 유언이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말한다. “승상! 그대의 능력은 조조의 아들 조비보다 열 배는 뛰어나오. 기필코 나라를 안정시키고 천하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요. 내 아들 유선이 황제로서 보좌할만하면 그리해 주고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그대가 황제가 되어 주시오.” 유선에게도 유언한다. “너는 승상과 함께 일을 도모하되 승상을 아버지처럼 섬겨야 한다.”

영명한 제갈량이 유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황제 자리를 덥석 받았겠는가. 공명의 속내는 유비의 유지를 받들어 군사를 이끌고 북벌하러 떠나는 날 아침 황제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잘 나타나 있다. “선제(유비)께서는 신의 신중한 성격을 아시고 돌아가실 때 신에게 대업을 맡기셨습니다. 그 명을 받은 이후 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선제께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밤낮 노심초사했습니다.” 한나라 왕조 수복이라는 대망을 끝내 이루지는 못했지만 제갈량은 최선을 다해 유선을 보필했다. 유비의 유언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비장한 유비, 유유자적한 조조
유비의 유언에서 쑨원이나 트로츠키의 그것처럼 한이 서린 비장미가 느껴진다면 조조의 유언은 사뭇 다르다. “내가 군중에서 법을 집행한 것은 대체로 옳았다. 개중에 큰 잘못이 있다면 본받지 마라.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니 내가 죽더라도 옛날 장례 예법을 답습하지 마라. … 내 비첩과 예기들은 고생이 많았으니 동작대에 모여 살게 하고 후대하라. … 측실들은 신발 짜는 기술을 익혀 생계를 잇도록 하라. … 내 남은 옷가지들은 따로 보관하되 보관이 불가능한 것은 너희 형제들이 나눠 가져라!”

조조는 실상 아쉬울 게 없었다. 당대에 이미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는(挾天子以命諸侯)’ 최고 실권자였다. 황제를 참칭하다가 공공의 적으로 몰려 몰락한 원술의 전철을 밟을 만큼 어리석은 조조도 아니었다. 게다가 후계자 문제도 약간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깔끔하게 갈무리했다. 세세한 잡사까지 관여하는 조조의 유언에 유유자적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은 이런 연유다.


사족: 호스피스 간호사 브로니 웨어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후회가 있다. ▷내 뜻대로 한번 살아볼 걸 ▷일 좀 적당히 할 걸 ▷내 기분에 솔직할 걸 ▷오랜 친구들과 더 가까이 지낼 걸 ▷내 행복을 위해 더 도전해 볼 걸 등이다. 제대로 된 ‘자기 인생’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죽은 후에라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잘사는 것(well-being)과 잘 죽는 것(well-dying)이 다 같이 중요하다는 걸 누가 모를까. 버나드 쇼의 묘비명 꼴이 나지 않으려면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 문제이지 싶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뭐냐고?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