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 피해 어떻게 되나

동양그룹이 (주)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등 3개 계열사의 법정 관리를 신청한 지난 9월 30일 동양증권 영업점은 침통한 분위기였다. 정문에서 만난 김선식(89·가명) 씨는 “오늘이 만기여서 2억3000만 원을 찾으러 왔는데 주지 않아 6시간 동안 싸우다가 돌아가는 길이에요. 평생 번 돈인데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고 주지 않으니 얼마나 억울해요. 울며 짜며 싸우다가 그냥 가는 거예요”라며 힘없이 말했다.

한 40대 여성은 가던 길을 멈추고 먼저 말을 걸어 왔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장기간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직원이 먼저 전화해 좋은 상품이 있으니 투자하라고 했어요. 바쁘다고 하면 안전한 상품이니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나중에 시간 날 때 와서 사인만 하면 된다고 했어요.” 그는 동양그룹 계열사 기업어음(CP)과 회사채에 총 2억8000만 원을 쏟아부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금융 당국, ‘사후 약방문’ 급급
이번 동양 사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개인 투자자에게 집중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법정 관리를 신청한 (주)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동양시멘트·동양네트웍스 등이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한 회사채와 CP 규모는 약 1조4500억 원, 투자자 수는 4만9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투자 금액으로 전체의 92.6%, 고객 수 기준으론 99.2%가 개인 투자자다. 1999년 ‘대우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이며 2011년 저축은행 후순위 채권 투자자(약 2만 명)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CP가 문제됐던 LIG건설이 분식회계가 먼저 부각됐다면 동양은 개인 피해가 훤한데도 장기간 그룹에서 판매를 독려하며 회사를 유지해 왔다는 점이 핵심”이라며 “개인 피해와 사회적 파장은 저축은행 때보다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CP와 회사채는 예금자 보호 상품이 아니라 금융 투자 상품이다. 회사채는 보통 3년, CP는 1년 미만의 만기로 이자가 높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회사가 파산하면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 CP와 회사채 투자자들의 손실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재산 보전 처분이 내려져 돈이 묶이게 되며 회생 계획안에 따라 조정된다. 이때 회사채나 CP 같은 채권은 담보권자에 비해 순위가 뒤처져 원금 대부분을 날리는 게 보통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자산이 부족해 투자 원금의 90% 정도를 날릴 가능성이 있다. 자체적인 채무 상환 능력이 없고 가치 있는 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은 모두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동양 채권이 발행될 당시 동양그룹의 신용 등급은 투자 부적격 등급인 ‘BB’급이었다. 기관투자가는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내부 기준을 강화해 투자 부적격 등급인 채권을 사실상 살 수 없기 때문에 동양그룹은 개인 투자자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었다. 쉽게는 은행 대출을 받는 방법이다. 신용도가 낮아 대출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은행 대출을 많이 받게 되면 주채권 은행의 감시를 받게 된다는 점에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정보에 어두운 개인 투자자가 덤터기를 쓴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동양그룹과 회사채 발행에 대한 우려가 이미 지난해부터 퍼져 있었다. 게다가 지난 4월 관련 법이 개정돼 10월부터 증권사가 투자 부적격 등급의 그룹 계열사 회사채나 CP를 판매하지 못하게 되면서 ‘10월 위기설’이 언론 등에 거론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설이 번질 대로 번진 추석 바로 전에 발행된 채권까지도 100% 소화됐다는 점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첫째, 투자자들이 위험을 알면서도 고수익을 좆아 판단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양그룹 계열사 채권은 연 7~8% 수준으로 정기예금 평균인 연 2.75%의 3배에 달하는 상품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회사채가 3개월에 한 번씩 이자를 지급하는데 월 단위로 이자를 주는 독특한 채권도 있었다. ‘월 지급식’ 상품을 선호하는 데서 착안한 상품이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서 이자율을 올리는 채권도 발행했다. 동양증권의 ‘전통’과 ‘창구의 힘’이 더해져 이러한 점들이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부분이었을 수 있다.

둘째, 동양증권이 회사채를 팔면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을 경우다.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불완전 판매는 고객에게 상품을 팔 때 기본 내용과 투자 위험성 등을 설명하지 않아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불완전 판매 소송을 준비 중인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동양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된 뒤 7일간 1만여 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또한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불완전판매 신고센터에도 피해자들이 물밀 듯이 모이면서 추가로 변호사와 금융 전문가 등 11명을 급히 파견했다.
<YONHAP PHOTO-1197> 동양그룹 금융상품 민원 급증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민원실에 설치된 동양그룹 관련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신고센터를 찾은 투자자들이 민원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지난달 30일 불완전판매 신고센터가 정식 설치되면서 433건의 민원이 들어왔다. 2013.10.1

    doobigi@yna.co.kr/2013-10-01 15: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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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 금융상품 민원 급증 (서울=연합뉴스) 배정현 기자 =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민원실에 설치된 동양그룹 관련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 신고센터를 찾은 투자자들이 민원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지난달 30일 불완전판매 신고센터가 정식 설치되면서 433건의 민원이 들어왔다. 2013.10.1 doobigi@yna.co.kr/2013-10-01 15:20:04/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미 2011년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이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CP를 팔면서 서면으로 된 신탁 계약서를 쓰지 않고 전화로 주문받았다며 동양증권에 경고 조치하고 관련 임직원을 징계한 바 있다. 하지만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동양증권이 같은 방법으로 개인 투자자를 늘려 왔다. 특히 CMA 340만 개로 증권 업계 1위 성적을 기록하는 동양증권이 장기 고객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채권 마케팅을 했다고 금소원은 밝히고 있다.

이 밖에 접수된 피해 사례를 분석해 보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만기가 되면 연기하는 식으로 반복적 구매를 권유했다는 것이다. 둘째, 전화나 문자로 유치 행위를 했다는 의견이다. 셋째, 고객 연령이나 투자 경험 등을 충분히 파악하고 투자 부적격 상품이라는 것을 고지해야 하지만 노인이나 주부에게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전직 교사인 이모 씨는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신문을 매일 들여다보지 않아 경제적 지식이 없다. 동양의 오랜 고객이기도 했고 담당 직원이 우량 회사여서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니까 그 말만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3월 이후 CP를 반복 구매하며 부모님 병원비와 동생 전세금을 모두 날렸다.

이 씨는 심지어 법정 관리를 코앞에 둔 추석 전에도 가입 권유를 받아 돈을 넣었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추석 전날까지 동양그룹은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를 판매했다. 이 씨는 “뉴스를 보고 불안해 9월 27일 해약하려고 갔더니 동양파워가 자산을 매각할 예정이어서 안전하다고 어깨동무하면서 저를 보냈어요. 그런데 불과 3일 만에 다시 찾아가니까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해요”라고 하소연했다.


투자자 책임도 묻는다
하지만 실제 불완전 판매로 입증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때는 녹취 파일 등의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투자 권유를 받았더라도 ‘안정적이다’가 아닌 ‘안정적일 것이다’ 등의 확언이 아니라면 이 또한 불완전 판매로 인정받기 어렵다. 전화나 문자로 상품을 추천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 설명서나 계약서에 사인이 있다면 이 또한 불완전 판매로 인정받기 어렵다. 불완전 판매로 인정되더라도 과거 사례를 보면 원금의 10~30% 수준에서 보상이 이뤄지고 이마저도 증권사가 거부하면 법적 강제 효력이 없다. 현재 금융 당국은 투자자들에게 불완전판매 신고센터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사후 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정 관리에 들어간 이상 개인 투자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분쟁 조정과 소송밖에 없다. 분쟁 조정은 금융감독원에 불완전 판매를 신고하는 것이라면 소송은 직접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법이다. 이때는 얼마나 구제받을 수 있을까. 법무법인 화우 금융팀의 이숭희 변호사는 “판례를 봤을 때 불완전 판매로 증권사에 책임이 있다고 볼 때 30% 안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원칙책임’으로 투자자에게도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대규모 CP 피해를 냈던 LIG건설은 소송 결과 1심에서 70%까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2심에서 30%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마저도 현재 대법원에서 다시 시시비비를 가리는 형국이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LIG건설 사태 이후 15건 소송에서 우리투자증권은 3건 패소했다. 동양증권의 경우 계열사 상황을 알면서도 ‘돌려막기’를 했다는 점은 투자자에게 유리한 부분이다. 한편 동양그룹이 법정 관리에 들어간 9월 30일 이후 계열사 회사채 거래량이 급증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동양시멘트 18’ 회사채는 9월 27일 하루 6억 원어치가 거래되던 것이 9월 30일에는 24억 원어치가 거래됐다. 최종원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는 개인보다 부실채권(NPL) 시장을 겨냥한 NPL 전문가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초유의 ‘줄소송’과 책임공방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틈새시장에선 또 다른 ‘베팅’이 이어지고 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