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강원 3파전…정부는 고민 중

기후변화 측면에서 6개월 이상 북극해 항행 가능 시기는 60년 후인 2071년 이후로 전망되고 있다. 운항 자체도 2030년은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벌써부터 국내 항만을 끼고 있는 동해안 지역 지방자지단체들은 장밋빛 계획안을 내놓으며 발 빠르게 북극항로 모항(母港) 유치전을 시작했다. 각 지자체마다 각종 포럼을 열고 여론 조성에 나서는가 하면 북극항로 연구소를 개설하고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지역 언론들은 “타 지역에 비해 북극항로 유치전에서 뒤지고 있다”며 해당 지자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임할 것을 다그치고 있다. 일부 단체장은 직접 해양수산부를 대상으로 모항 지정의 물밑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유치전은 정치권까지 확대돼 지역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각 소속 지역이 북극항로 전진기지로 최적이라며 지원사격에 나서고 있다.
<YONHAP PHOTO-1184> 부산항 수출화물 선적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엔저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업종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부산 감만부두에서 수출화물 선적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3.4.23.

    ccho@yna.co.kr/2013-04-23 15:19:41/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부산항 수출화물 선적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엔저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업종에 타격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23일 부산 감만부두에서 수출화물 선적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13.4.23. ccho@yna.co.kr/2013-04-23 15:19:41/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너도나도 “우리가 최적”
현재 북극항로 모항 유치전은 부산·울산·강원 3파전 양상이다. 우선 부산은 북극항로 연구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2009년 이미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에 북극해항로연구센터를 개소하고 북극항로가 부산항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왔다. 북극해항로연구센터는 부산시와 정책·전략·과제를 공유하는 등 부산이 북극항로 개발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부산은 최근 ‘북극해환경변화대응종합점검단’을 구성, 본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이곳에서는 북극해 관련 해운·항만 및 조선 기자재 산업 육성 전략 수립, 부산항 이용 선박 대상 종합 서비스 체계 구축, 북극해 크루즈 관광 루트 및 상품 개발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부산은 최근 북극항로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보다 적극적인 기초 연구, 대응 전략, 단위 사업 등을 개발,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4년 상반기에는 ‘부산시 북극해 대응 전략 계획 수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북극해 시대에 대응한 부산의 전략은 크게 ‘새로운 항구 건설’과 ‘기존 항구의 역할 강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부산은 신항 건설을 통해 국제 물류 중심 항만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방침이다. 1995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신항만 조성 사업에서 당초 16조7055억 원을 들여 2020년까지 30개 선석을 건설하겠다는 기본 계획을 수정해 2030년까지 45개 선석을 조성하기로 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북극항로 전진기지를 겨냥해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또한 2015년 북항(현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 완성되면 북극해 관광을 위한 크루즈 사업을 시작, 북극해 관광의 모항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와 알래스카 등 크루즈 관광까지를 포함하는 계획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물류 중심항과 해양 관광 거점항 등 2개의 특화 항만을 지원 운영하기 위해 지원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동삼혁신지구에 해양 연구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한국해양수산연구원·해양연구원 등 다양한 연구 기관들을 유치한다. 부산은 문현동에 10만2352㎡의 부지를 마련, 부산국제금융센터(BIFC)를 조성해 공공 기관 및 국내외 금융회사 집적을 통해 금융 클러스터를 구축할 방침이다.

울산은 울산항이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북극항로를 처음으로 시험한 곳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2009년 7월 독일 벨루가시핑 소속의 화물선 프래터니티호와 포사이트호가 6일 간격으로 울산항에서 출항해 러시아 쇄빙선의 도움으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에 입항했다. 울산항만공사는 지난해 8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북극항로 활성화에 대비한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개최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특히 북극항로 이용 화물이 대부분 액체 화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울산에는 SK에너지와 에쓰오일 등 대규모 정유 공장이 들어서 있는 만큼 이 같은 인프라를 이용해 북극항로를 통해 동북아 오일 허브항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울산시의 계획이다. 오일 허브항은 원유뿐만 아니라 석유 관련 제품, 금융 등을 아우르는 대형 클러스터다. 북극해 개발과 관련해 북극해의 석유와 천연자원이 개발되면 이를 울산항으로 유치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신항 건설과는 별도로 배후 단지 조성에 힘써 고부가가치 배후 단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배후단지 개발에만 2016년까지 총 838억 원이 투입되며 안벽 및 단지 건설에는 모두 104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을 수립했다.

울산은 석유공사와 합동으로 상부 사업 시행자 모집 및 특수목적회사(SPC)를 구성해 투자 유치를 위한 국내외 마케팅 및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오일 허브 활성화를 위한 각종 소프트웨어 구축 협력 사업 추진과 탱크 터미널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지원에 나섰다.
[新 북극해 시대] 국내 북극항로 전진기지 선점 각축전
유치전 후발 주자지만 최근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강원도다. 최문순 강원도 지사가 지난 5월 해수부를 방문해 동해항의 북극 항로 모항 지정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강원도는 지난 6월 ‘북극항로 강원항만협의회’를 설립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강원도는 동해안 항만에서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부산항보다 이틀의 운항 일수와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부산·울산항에 비해 내륙 물류 수송비 면에서도 장점을 내세운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이미 양양국제공항과 강원중부선, 강원 북부선 및 동서·동해고속도로 등 육상 교통망이 대폭 확충되고 있어 동북아 교통·물류 중심지로의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강원발전연구원의 ‘북극항로 시대 강원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북극항로가 개설되면 강원 지역 항만들은 국내 컨테이너 최대 수요처인 수도권과의 접근이 가장 용이하므로 부산항, 광양항, 인천항, 평택·당진항에 비해 내륙 운송비 절감 및 해상운송 시간 단축 측면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범 운항 기항지는 결국 러시아로
북극항로 유치전이 점점 치열해지자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북극항로 전진기지’ 쟁탈전이 새로운 지역 갈등 요소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북극 정책 마스터플랜 수립 시 아직 북극 항로 모항 지정 계획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해수부는 시작 단계부터 북극항로 활용을 위한 항만별 전략을 수립해 지자체 간 갈등을 막고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15일 출발한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앞두고 각 지자체는 기항지가 어디인지를 놓고 경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부산항·울산항·동해항·포항항까지 가세해 시험 운항 기항지를 두고 해수부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번 시범 운항의 기항지로 울산항이 지정될 게 유력하다는 이야기까지 돌며 해당 지자체의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하지만 결국 국내가 아닌 러시아 우스트루가항이 기항지로 결정되면서 일단 민감해졌던 경쟁 구도는 한풀 꺾였다. 해수부 관계자는 “울산 지역 정유사 측에 시범 운항 참여를 요청했지만 해당 업체들은 기존 중동산 원유에 비해 북극항로를 통해 북해산 및 러시아산 원유를 공급받는 것은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이 북극항로 이용이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극해 부빙의 위험, 북극 폭풍 등 험난한 기상 조건과 쇄빙선 등 북극 환경에 적합한 선박의 건조에 필요한 추가 비용과 기간 등 북극항로를 이용하기 위한 장애 요인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재성만 두고 지자체들이 장밋빛 미래를 확산시키며 현실적으로 조달이 쉽지 않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남발하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