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포인트 ③ 브릭스 시대 막 내리나
10년 전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를 제일 처음 언급했던 사람은 짐 오닐이었다. 그는 올해 초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공교롭게도 그의 퇴진 이후 브릭스는 세계경제에 뇌관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은 낮아지고 증시 수익률도 좋지 않다. 가장 먼저 화두가 된 곳은 브라질이다. 내년 월드컵 개최를 앞둔 시점에서 브라질 경제는 고질적인 대외 부채 문제에 직면했다. 고금리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브라질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심을 자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부터 불거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양적 완화(QE) 축소 가능성은 브라질 헤알화 가치의 급락을 가져왔다. 헤알화 가치 급락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더욱 높여 브라질 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중국의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바로 자산관리상품(WMP) 부실 문제였다. WMP 부실 문제는 중국 은행의 유동성 경색 가능성까지 불러일으켰다.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둔화에 대한 우려까지 겹치며 유동성 경색과 경착륙이 함께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투자자들이 우려했다.
인도는 산업 생산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보이는 등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인도 화폐인 루피화 가치가 급락해 물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루피화 가치 방어와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금리 인상을 고려할 시점이지만 부진한 국내 경기를 감안하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등 상황은 빠르게 악화됐다. 구제금융 신청설에 대해서는 인도 정부가 이미 부인한 상태다. 당장 화두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러시아는 브릭스에서 가장 저조한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로 제시한 바 있다. 최근 4년 중 가장 느린 속도다.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러시아에 대한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하반기 유럽 부활 효과 기대
브릭스의 경기 부진은 증시 부진으로 이어졌다. 브릭스가 최근 신흥국 증시 부진의 중심에 있다. 미국 증시가 2007년 고점을 돌파한 반면 브릭스 증시는 2007년 고점 대비 크게 하락한 상태다. 인도나 브라질이 각각 12%, 23% 하락했고 러시아는 44%, 중국은 66% 하락했다. 올 들어서도 미국은 15%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인도는 마이너스 8%, 중국은 마이너스 9%, 러시아는 마이너스 14%, 브라질은 마이너스 17%의 수익률을 보였다.
관건은 하반기에 이런 상황들이 개선될 수 있는지 여부다. 중국은 하반기가 기대된다. 중국의 2분기 GDP는 7.5%였다. 전문가들이 중국 정부 목표치인 7.5%를 밑돌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기우였다. 하반기에는 유로존 경기 회복이 중국 경제를 견인해 줄 전망이다. 유로존의 하반기 전년 동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수분기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전망이다. 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유럽연합(EU) 비중이 20% 내외로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경기에 활력이 될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됐던 WMP와 관련해서는 중국 인민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통해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6월과 같은 우려가 재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에 대비한 투자 증가는 브라질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1분기 GDP에서 투자는 4.6% 증가해 순수출과 소비 부진을 상쇄했다. 하반기에도 이와 같은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헤알화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으로 소비 심리는 위축됐지만 산업 생산은 4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지난 6월 산업 생산은 2010년 9월 이후 최대 증가율 4.7%를 기록하기도 했다. 외화보유액도 풍부하다. 브라질의 외화보유액은 2분기 말 기준 3720억 달러로, 총외채 3220억 달러보다 많다. 단기 외채도 작년 연말 기준 외화보유액 대비 8.7%에 불과하다. 헤알화 가치 하락이 중·장기적인 패턴이라기보다 단기적인 움직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브라질 정부가 토빈세 폐지, 선제적 기준 금리 인상 등 정책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다소 우려된다. 속된 말로 정책이 꼬였다. 인도의 고질적인 문제는 물가 상승이다. 2010년 이후 작년까지 인도의 물가 상승률(도매 기준)은 평균 9%에 달했다. 올해 들어서는 물가가 다소 안정됐다. 상반기 평균 물가는 5.7%였다. 이에 따라 인도 중앙은행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인도의 제조업 생산은 플러스로 돌아섰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움직임에 완전히 바뀌었다. 작년 연말 루피·달러당 55루피였던 환율은 현재 62루피까지 상승했다. 루피화가 달러 대비 12% 정도 절하됐다. 이에 따라 산업 생산은 5월부터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물가 상승률은 2개월 연속 오름세다. 다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EU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하반기 이후 유로존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 분위기는 호전될 수 있다. 또한 외화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이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인도 정부가 부인했다시피 IMF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네 국가 중 가장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경제가 주요 수출품인 원유에 대한 의존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 경기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품 시장, 특히 유가가 향후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반기 달러화가 크게 약세를 보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이집트 정정 불안 완화 시 유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선 세 국가에 비해서는 하반기 전망이 다소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세계 3위 외화보유국임을 감안하면 1990년대와 같은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판단되며 체계적 위험은 앞선 세 국가와 마찬가지로 높지 않다.
브릭스 내에서도 옥석 가릴 때
예전처럼 브릭스 모두 영화를 누리기는 힘들다. 브릭스 내에서도 호불호가 나뉘고 있다. 중국은 브릭스 중 가장 좋은 투자처다. 인도는 좋은 투자처이지만 당장 투자에 나서기에는 환 변동성이 높다는 점이 다소 부담이다. 잠시 지켜볼 때다. 러시아는 유가 하락 가능성이, 브라질은 적정 밸류에이션을 웃돌 모멘텀이 부족하다는 점이 부담이다. 이에 따라 브릭스 투자에서 비중은 중국>인도>러시아>브라질순으로 높게 가져가는 편이 유리하다. 브릭스 전체에 대한 투자라면 미국 Fed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가 적정해 보인다. 국가별로는 중국은 달러화 움직임의 영향이 적기 때문에 지금 당장 투자해도 좋다. 인도는 FOMC 이후가 적당한 투자 시점이다. 러시아와 브라질은 유로존 경기 회복과 그에 따른 글로벌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는 4분기 중이 적절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지난 10년간 증시 유행어 브릭스는 사라질 때다. 브릭스 내에서도 옥석을 가릴 때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gwak81@shinh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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