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코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년)’에서 신발(구두)은 체제 구성원 개개인의 신분을 표시한다. 제자리에 있는 구두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질서를 상징한다. ‘설국열차’의 총리 메이슨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구두를 모자처럼 머리에 쓸 수는 없다. 발로 신는 것이다. 너희들도 각자 분수대로 제자리를 잘 지켜라!”
[문화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조조의 붉은 신발과 전두환의 군홧발
구약 ‘출애굽기’에 따르면 어느 날 모세가 양떼를 이끌고 호렙산으로 가는데 활활 타오르는 떨기나무 사이로 천사가 나타난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데도 나무가 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모세가 가만히 다가가자 야훼 하나님이 이를 제지한다.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너는 네 신을 벗어라!” 그 자리에서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며 고생하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오라는 소명을 받는다.

상징적으로 신발은 두 가지 모순적 의미가 있다. 신발을 신으면 사람들은 더러운 땅에 직접 닿지 않아도 되고 자기 신분을 과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류층일수록 좋은 신발을 신는다. 신는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나 ‘콩쥐팥쥐’의 꽃신은 왕자와 고을 원님으로 하여금 신발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만드는, 즉 정체를 파악하게 만드는 일종의 신분증명서다. 생면부지의 아버지 아이게우스를 만나기 위해 아버지가 남겨둔 가죽 신발 한 켤레와 칼 한 자루를 신분증명서 삼아 아버지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나는 그리스신화의 테세우스는 낭만적이다.
[문화 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조조의 붉은 신발과 전두환의 군홧발
다른 한편 신발은 풍진세상의 땅을 밟는 비천한 사물이다. 불명예와 굴종을 상징한다. 일반 상민이나 노예는 짚으로 엮은 값싼 신발을 신거나 맨발로 돌아다녔다. 조조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모시던 여인들을 모아 놓고 뜻밖의 유언을 한다. “너희들은 내 사후에 길쌈을 많이 하라. 그 실로 신을 삼아 팔아 생계를 꾸려라.” 작가 나관중은 유비가 소싯적에 짚신을 삼고 돗자리를 짜며 세상을 피해 엎드려 있던 인물로 서술한다. 유비를 일세의 영웅으로 반전시키기 위한 장치의 하나다. 조조의 유언이나 나관중의 유비 묘사에서처럼 신발은 하찮은 것의 상징이다.

신발로 사람을 밟거나 때릴 때는 대상이 창녀나 도둑 등에 한정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욕적인 행위였다. 촉나라의 대신 유염은 아내 호 씨가 황후를 알현하기 위해 입궐했다가 한 달 후 귀가하자 아내가 황제와 사통했다고 의심해 부하를 시켜 신발로 아내의 얼굴을 때리게 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로 유명한 오나라 왕 부차는 마침내 월 왕 구천을 항복시키자 신발을 신은 채 구천의 얼굴을 밟는다.


절대적 복종과 존경의 표현
거칠게 정리하면 주인은 신발을 신고 노예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그런 풍속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슬람 사원에 들어 설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 앞에 절대 복종한다는 겸손한 마음의 표현이다. 불교 신자들이 신발을 벗고 절의 법당에 들어설 때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모세가 야훼로부터 신성한 소명을 부여받는 거룩한 땅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거룩한 땅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더러운 신발을 벗어야 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모세는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벗어야 했던 신발은 속세의 더러움이었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소명 앞에서 ‘내려놓아야’ 했던 모세 자신의 자아(自我)이자 에고(ego)요 집착이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중국에서는 황제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에서 천자(天子)라고 부른다. 하늘의 아들이 거주하는 황궁은 속세와 구별되는 일종의 거룩한 성전이다. 당시 법도에 따르면 신하가 천자를 알현할 때는 반드시 차고 있던 칼을 풀고 신발을 벗어 놓고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대전에 들어야 했다. 칼을 차고 신발을 신은 채 대전에 오르는 것을 검리상전(劍履上殿)이라고 한다. 황제가 하사하는 예외적인 특권이다. 그러나 ‘삼국지’ 시대는 법도와 질서가 무너지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이 이미 희미해진 난세였다. 동탁은 이런 특권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마저 무시할 정도로 방자한 위인이었다.

조조도 오십보백보였다. 조조는 수도 낙양에 있던 헌제를 모시고 자신의 본거지 허도로 옮기면서 확실하게 정권을 접수하자 대놓고 황제를 무시한다. 헌제가 동승에게 “조조를 제거하라”는 밀조를 내린 일이 발각되면서 이런 행동을 더욱 노골화했다. 조조는 자신을 암살하라는 칙명을 내린 헌제를 폐위하고 새 황제를 세우고 싶었지만 참모들의 반대로 포기했다. 그러나 분이 풀리지 않자 칼을 빼들고 붉은 신발을 신은 채 궁중으로 뛰어들어가 동승의 여동생이자 황제의 첩실인 동귀비를 직접 시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헌제가 울며 매달리자 자신이 직접 죽이는 대신 임신 5개월째의 동귀비를 군사를 시켜 대신 목 졸라 죽이는 패륜을 감행한다. 그것도 황제의 면전에서 말이다.


황제를 겁박해 얻어낸 특권
고대 중국에는 ‘구석(九錫)’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천자가 공덕이 큰 제후나 신하에게 아홉 가지 특권을 하사하는 제도다. 의식주 전반에 관해 신하에게 황제에 버금가는 의전을 갖추고 특별 대우하는 것이다. 말이 하사(下賜)일 뿐 실제로는 실권을 잡은 신하의 월권을 허용하는 기형적인 제도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전한(前漢)에서 구석의 권세를 누렸던 왕망(王莽)은 왕조를 무너뜨리고 신나라 황제가 된다. 수나라에서 구석의 특권을 누린 이연(李淵)도 당나라를 세워 황제가 된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헌제를 폐위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신하를 자칭하며 구석의 특권을 하사받았던 손권도 나중에 위나라를 배신하고 오나라를 세웠다. 동탁처럼 검을 차고 제왕이 신는 붉은 신발을 신은 채 대전을 들락거리는 등 이미 구석의 특권을 받은 이만 할 수 있는 행동을 해온 지 오래였던 조조는 참모 순욱과 순유의 반대를 무릅쓰고 헌제를 핍박해 기어코 구석을 하사받는다. 먼저 위나라를 정벌하고 난 뒤 받겠다며 한사코 구석의 권한을 사양한 촉한의 승상 제갈량과는 대조적이다.



사족: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일당이 1980년 10월 27일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전국의 사찰에 군홧발로 난입해 100여 명의 승려들을 연행해 간 적이 있다(10·27 법난). 동탁이나 조조의 만행을 연상시킨다. 문제는 법당에 들어서면서 신발은 벗어야 한다는 정도의 기본적인 예의조차 모르는 이런 삼류 무뢰한(無賴漢)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월 왕 구천처럼? 아니면 유염의 아내처럼? 그렇다고 대명천지에 ‘설국열차’의 민초들이 총리 메이슨을 처리하듯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답답한 노릇이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