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비행’ 전세값의 미래는

전세 시장이 심상치 않다. 여름철은 장마와 더운 날씨 때문에 이사를 기피하는 계절이다. 이 때문에 여름철은 전세 시장의 전통적인 비수기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비수기가 실종됐다. 6월에는 전셋값이 0.29% 올랐고 7월에는 0.42%로 상승 폭이 확대됐다. 8월 초까지 집계된 기록도 0.63%로 상승 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미친 전셋값’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부동산 시장 월세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7일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직원이 울세 시세표를 붙이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부동산 시장 월세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7일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직원이 울세 시세표를 붙이고 있다./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문제는 이렇게 오른 전셋값을 주고도 전세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라고 하더라도 전세 매물은 고작 2~3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니 층이나 방향, 수리 여부와 상관없이 아무 전세라도 구해 달라는 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심지어 대기자 명단을 작성하는 중개소도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왜 이런 현상 나타나나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이런 개인의 선택이 모여 시장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왜곡된 시장 상황과 잘못된 정책이 이런 수급의 불균형을 증폭시키고 있다.

주택 수요에는 매매 수요와 임대 수요(전세+월세)가 있다. 매매 수요와 임대 수요는 정확하게 대체재 관계에 있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하거나 결혼하게 되면 어딘가에서 살아야 한다. 과거에는 증가하는 주택 수요가 매매 수요와 임대 수요로 분산됐다.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은 집을 사고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임대로 살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집을 사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집을 사려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장기간 내수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집값이 향후 더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는 기대감으로 집을 사는 것을 보류하기 때문이다. 결국 집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이 집을 사지 않고 임대 시장에 가세하기 때문에 임대 수요가 가구 수 증가보다 더 많게 된 것이다.

문제는 임대 시장에서도 전세 시장만 임차인(세입자)들이 선호한다는 것이다. 매달 자기 주머니에서 나가는 월세 대신 원금이 보존되는 전세를 선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물론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거에는 전세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 자금 대출이 광범위하므로 자금이 부족한 사람도 전세를 얻을 수 있다. 전세 수요가 증가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그러면 지금의 전세는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일까. 전세금 자체로 보면 매년 올랐으니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그동안 돈 가치 하락을 생각하면 전세금 자체보다 매매가 대비 전셋값을 비교하는 전셋값 비율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다. 2013년 7월 말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 전셋값 비율은 64%다. 예를 들어 집값이 1억 원이라고 하면 전셋값이 6400만 원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역사상 전셋값 비율이 가장 높았던 2001년 10월의 69.5%보다 5.5% 포인트 정도 낮은 것이지만 역대 최저치인 2009년 1월의 52.3%나 지난 15년간 평균치인 59.4%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다. 서울 전세 시장에서 현재 전셋값 비율은 57.3%로, 15년 평균치인 50.3%보다 크게 높고 역대 최고치 경신까지 7.3% 포인트 정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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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이 전셋값 비율이 꾸준히 높아졌던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직후였다. 그때도 지금과 같이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고 전셋값만 오르던 시절이었다. IMF 직후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가 대중을 비관론에 빠지게 한 결과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매매 시장은 외면하고 전세 시장으로 수요가 몰리는 현재의 상황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년 후인 2015년 중반(서울 2015년 5월, 전국 2015년 7월)이면 전셋값 비율은 역대 최고치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 제도 어떻게 될까
전셋값 비율이 역대 최고치에 다다른다는 것은 시장 분위기의 변곡점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 번째 시나리오는 2000년대 초반과 같이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전환되는 대세 상승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셋값 비율이 40%에 불과하던 시절에는 내 집을 마련하려면 60%의 자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전셋값 비율이 70%에 달할 때 30%의 자금만 추가로 확보할 수 있으면 내 집을 살 수 있다. 실수요자에겐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하는 비용이 과거보다 훨씬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자에게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살 때 실투자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전셋값 비율이 높아질수록 투자 매력도 높아진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전세 시장의 붕괴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셋값이 매매가를 추월할 수 있을까. 일부 단지에서 전셋값이 매매가를 추월했다는 보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로열층의 전셋값이 비로열층의 매매가를 추월했다는 특별한 경우이고 같은 주택을 기준으로 하면 그런 일은 벌어지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셋값 비율이 높아지면 그런 일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매매가 2억 원인 집에 전세를 1억8000만 원에 들었다고 하면, 전셋값 비율은 90%에 달한다. 그런데 집값이 15% 하락한다면 1억7000만 원이 돼 전셋값 이하가 된다. 이때 세입자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예전에 전셋값 비율이 높았던 일부 지방 도시에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가지고 잠적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므로 전세를 얻을 때는 전세금과 대출액의 합이 매매가의 70% 이하인 것이 안전하다.

문제는 시장에 전세 물건이 품귀를 보이다 보니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도 전세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출이 없더라도 전세금만으로도 매매가의 80%가 넘는 곳도 많다. 전세 시장에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셋값이 매매가의 70~80% 선을 넘으면 전세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인 원금 보장 기능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전세 수요자도 이때부터 반전세(보증부 월세)를 선호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최대한도를 보증금으로 하고 나머지 부분을 월세로 돌리는 식이다. 예를 들어 2억 원짜리 집이라면 전세 1억8000만 원에 들어가는 대신 보증금 1억6000만 원에 월 20만 원씩 월세를 내는 형태로 바뀐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그 부담이 적어 보여도 계약이 갱신될 때마다 보증금이 동결되고 월세가 인상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월세가 부담이 될 수준까지 오른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모든 전세 수요자들이 담합해 매매가의 70~80% 선 이상에는 전세를 들어가지 않고 반전세도 거부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에 불과하고 전세 물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매매가에 육박하는 전세를 얻거나 반전세를 얻어서라도 자기가 먼저 전셋집을 확보하려는 사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셋값 비율이 지금보다 더 올라가면 전세 제도는 자연스럽게 붕괴되는 것이다. 그것이 2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이며 10년 정도 후면 전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이 가장 적은 국가다. 전세라는 좋은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전세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 초년병들도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다리가 없어지고 있다. 그 원인 제공자는 집을 살 여력이 있으면서도 전세 시장에 머무르고 있는 일부 귀족 세입자들과 전세 자금 대출에만 매달리고 있는 잘못된 정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