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최고가 되었나①-홍명보 전 올림픽축구팀 감독

한국 축구 대표팀은 최근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태극호의 브라질행을 이끈 선장 최강희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임무를 완수한 최 감독에게 박수보다 비난이 더 많이 쏟아졌다. 내용과 결과 모두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팀 내부에 불화설까지 돌았다. 감독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 월드컵을 위한 새 감독을 찾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인물이 홍명보 전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수비수 홍명보는 지난해 열린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의 동메달 수상을 이끌며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홍명보는 차기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홍명보의 리더십은 기존의 한국 감독들과 어떤 면에서 다를까.

한국 축구는 학원 스포츠와 군대 문화가 남긴 잔재가 심하다. 감독은 상관이며 선수는 복종을 요구받는 아랫사람으로 여겨진다. 홍명보는 이러한 틀을 깨뜨렸다. 선수단과의 회의 시간이나 지시 사항을 전달할 땐 늘 존댓말을 사용했다. 홍명보는 불같은 성격의 김태영 코치가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선수들 앞에서 나를 낮추는 것이 결국 모두를 높이는 일이다. 감독과 코치, 선수는 모두 평등하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같은 목표를 위해 일하는 팀이다.” 현역 시절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홍명보는 유연한 조직 분위기를 위해 스스로를 낮췄다.

홍명보는 상명하복 체계를 무너뜨렸다. 독단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 코치들과 선수들 모두와의 협의와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았다.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잘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선수들을 위해 병풍 역할을 해야 한다. 감독을 처음 시작하면서 변하지 않은 것은 선수들이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뛸 수 있게 만들어 주느냐가 중요하다.”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팀 운영은 선수단의 책임 의식을 고취시켰고 더 강하게 뭉치게 했다.
<YONHAP PHOTO-0685> <올림픽> 안풀리네

    (맨체스터=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7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준결승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이 전반전이 끝난 후 굳은표정으로 경기장을 나가고 있다. 2012.8.8

mtkht@yna.co.kr/2012-08-08 08:36:36/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올림픽> 안풀리네 (맨체스터=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7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준결승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이 전반전이 끝난 후 굳은표정으로 경기장을 나가고 있다. 2012.8.8 mtkht@yna.co.kr/2012-08-08 08:36:36/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감독·코치·선수는 평등하다

믿음이 없는 팀은 사상누각이다. 그렇지만 믿음은 요구해서 절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홍명보는 마음으로 팀원을 챙기며 신뢰의 고리를 만들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 코치 박건하는 올림픽 축구 예선 기간에 부친상을 당했다. 홍명보는 3일 내내 빈소를 지키며 코치의 마음을 보듬었다. “3일장을 지냈는데 감독님이 첫날 오셔서 마지막까지 계셨고 다음 날에도 또 오셨다. 장례식이 끝나고 인간적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다른 팀과 달랐던 점이다.”

홍명보의 신뢰 리더십이 가장 빛났던 장면은 병역 기피 논란으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던 공격수 박주영과의 공동 기자회견이었다. 모나코 영주권 취득으로 병역을 장기간 연기할 수 있게 된 박주영은 거센 비난을 받았다.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됐고 어디론가 잠적해 입장 표명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박주영은 올림픽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였다. 홍명보는 박주영을 언론 앞으로 끌고 나왔다. 그는 “주영이가 군대에 가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가겠다”고 말하며 보증인을 자처했다. 박주영은 올림픽 팀에 승선할 수 있었고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믿음에 보답했다.

“난 항상 마음속에 칼을 가지고 다닌다. 그 칼은 적을 찌르기 위한 칼이 아니다. 너희들이 다칠 것 같을 때 나를 찌르고 내가 먼저 죽기 위해서다. 대신 너희들은 팀을 위해 죽어라. 난 너희를 위해 죽겠다.” 정체불명의 애국심을 요구하는 게 어려운 시대다. 선수단을 향한 홍명보의 한마디가 신세대 선수들을 팀을 위해 헌신하는 전사로 만들었다. 홍명보는 선수들의 전술적 능력을 끌어올리는 방법론이 탁월했다. 홍명보의 선수단 미팅은 선수들의 자발적인 사고와 생각을 유도해 ‘전달’이 아닌 ‘이해’를 목적으로 진행됐다.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는 “한국 선수들의 부족한 점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며 홍명보의 방식을 지지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이 함께 분석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했다. 선수단을 여러 그룹으로 나눈 뒤 비디오 분석을 통해 그룹별 분석의 교집합을 모아 토론에 나선다. 여기에 감독으로서 자신의 견해와 해석을 덧붙인다.

창조적인 플레이를 위해 홍명보가 또 하나 강조한 것은 선수들이 경기 중 범하는 실수에 대해 관대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실수 OK, 패스 미스 OK. 축구는 어차피 실수로 이뤄진 경기다. 전술적으로만 실수하지 않으면 다시 반응할 수 있다.” 홍명보는 선수들이 위축되지 않고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YONHAP PHOTO-0725> <올림픽> 이제는 4강이다! 

    (카디프=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5일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대한민국과 영국의 경기에서 1:1 연장전 무승부 후 가진 승부차기에서 5:4로 대표팀이 승리 후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올림픽 도전 64년 만에 사상 첫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2012.8.5

mtkht@yna.co.kr/2012-08-0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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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제는 4강이다! (카디프=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5일 영국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대한민국과 영국의 경기에서 1:1 연장전 무승부 후 가진 승부차기에서 5:4로 대표팀이 승리 후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올림픽 도전 64년 만에 사상 첫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2012.8.5 mtkht@yna.co.kr/2012-08-05 08:00:00/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홍명보는 선수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 집중했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흐트러짐과 인성적인 면에서 보인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처했다. 홍명보는 2009년 20세 이하 청소년 팀을 맡아 처음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홍명보는 어린 대표 선수들이 식당과 숙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선수들을 존중했듯이 선수들도 팀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을 존중하기를 요구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긴 시간 여러분의 식사를 준비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숙소에서 안락하고 편하게 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라고 했다. 항상 주위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모든 분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스타로 떠오른 선수들은 자만심에 빠지기 쉽다. 홍명보는 사소한 행동을 바꿈으로써 마음가짐 전체를 바꿔 놓았다. 홍명보는 “스무 살이면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기능적으로는 훈련을 통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지만 이 시점에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인성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인성을 갖춰야 좋은 팀원이 될 수 있다. 홍명보는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원칙을 엄수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해 온 이미지는 ‘투혼’과 ‘정신력’이다. 부족한 기술을 정신력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다. 홍명보 역시 정신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정신력은 다른 의미다. 홍명보는 “정신력이란 상대를 ‘까서’ 다치게 하는 거친 플레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90분 동안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명보의 정신력에는 한국인들의 ‘한의 정서’ 역시 활용됐다. 그는 개최국 영국과 격돌한 올림픽 8강전을 앞두고 조별 리그에서 중용하지 않았던 공격수 지동원을 선발 카드로 꺼냈다.

지동원은 영국 선덜랜드팀에서 영국 선수들과 교류하지 못하며 적응에 고전하고 있었다. 홍명보는 “네가 빼달라고 하기 전까지 안 뺄 것이다. 경기에 나가 최선을 다해라”라고 말했다. 자신감을 얻은 지동원은 영국전에 출전해 결정적인 골을 넣고 한국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한풀이가 감정에 치우쳐 엇나간 행동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풀이마저도 스스로 통제 가능해야 하고 경기력으로 승화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강박증이 아닌 자신감이 기반이 돼야 한다. 홍명보는 그런 정신력을 지동원에게 심어 줬다. 최고의 실력을 뽑아낼 수 있도록 완벽한 동기부여를 한 것이다.
[닮고 싶은 스타들의 리더십]  홍명보 감독, ‘상명하복’ 관행 깨… 기술보다 인성 강조
한준 풋볼리스트 축구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