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기보다는 고쳐서 쓸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원이 부족한 우리 대한민국이 우수한 인재를 앞세워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첩경이다.



한때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휩쓴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그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필자는 1980년대에 미국 시카고대에서 수학했는데도 그곳이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줄은 귀국해서야 국내 언론을 통해 겨우 알았다. 생각해 보니 당시 거대한 담론의 주창자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말조차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이 이미 전 세계 곳곳에 바람을 일으키는 가운데 당시 영국의 대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으로 그들의 주장이 본격적으로 정책 현장에 적용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환희와 희열에 떨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자유주의 이념의 출발점은 1930년대 유럽과 미국을 휩쓸던 집단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소련의 공산주의, 심지어 미국의 뉴딜 자유주의나 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책까지도 집단주의적 사고의 소산이라고 봤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정책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훼손하고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신자유주의 주창자들이 용감하게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비단 경제학뿐만 아니라 철학·사회학·행정학·예술에까지도 집단주의 성향의 정부가 가져올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열린사회와 시장주의를 전파하며 그것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러나 자유세계의 경제적 번영은 2008년 금융 위기로 막을 내렸다. 2008년 터진 금융 위기는 그동안 누리던 경제적 번영이 어떤 신기루였는지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기업가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믿었지만 그들의 끝없는 탐욕은 그들 스스로도 정부가 규제해 줘야 멈출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악마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돼 몰락한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은 더 이상 신자유주의를 용납할 생각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 사회는 어디를 지향해야 할까. 신자유주의가 실패했으니 다시 정부 의존적인 케인지안 정책으로 회귀해야 할까. 필자는 결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경험했다.
[경제 산책] 진정 신자유주의의 종말일까
신자유주의에 의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번영을 구가했다. 시장에 맡길 때 기업의 혁신과 생산 활동이 얼마나 생기차고 활발하게 일어나는지 우리는 보았다. 정부가 나서서 경제 계획을 세우고 시장 역할을 대신할 때 얼마나 많은 낭비와 부정·비효율이 발생하는지 이미 우리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대처 이전의 영국 사회의 병폐, 비틀거리던 미국의 자본주의, 우리나라의 개발독재에서 보았다.

그러므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진이 반복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기보다는 고쳐서 쓸 생각을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극심한 빈부 격차의 완화, 취약 계층에 대한 교육 기회와 사회 안전망 제공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원이 부족한 우리 대한민국이 우수한 인재를 앞세워 창조 경제를 실현하고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