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Abenomics)에 거침이 없다. 이젠 가계 부문의 본격 훈풍까지 예상된다. 내수 부양을 위해 풀린 돈이 미세혈관(가계)까지 가도록 압박(?)해서다. ‘디플레→인플레’를 위한 엔저 유도, 재정 확대는 기업 곳간을 먼저 불려준다.

관건은 가계 부문 수혜로 옮겨갈지 여부다. 기업만 배부르고 가계가 소외되면 절름발이 성장 전략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막강 포문의 총리 발언이 가계 응원에 실린다. ‘임금을 인상해 주라’는 메시지다. 로손 등 일부 기업은 이에 화답했다.

가계로선 간만의 온기다. 기대 수혜는 주로 맞벌이 가계에 집중된다. 둘이 버니 그만큼 기대 인상률이 높아진다. 이는 가뜩이나 늘어난 맞벌이 추세를 더 심화시킬 전망이다. 실제 남성 전업의 외벌이만으로 생존은 힘들어졌다. 직업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여성은 인기조차 별로다.

이 와중에 일자리는 감소세다. 더 벌지 못하면 살얼음판이 언제 깨질지 모를 일이다. 가파른 빈곤 전락의 미끄럼틀에서 버티기 위해선 맞벌이가 불가피해졌다. 전업주부는 사치다. 이로써 ‘결혼=퇴사’는 과거 유물이 됐다. ‘OL(Office Lady)’은 이제 ‘커리어우먼’으로 진화됐다. 커리어우먼은 직장 경력을 가정 형성보다 중시한다.

떠밀렸던 컨베이어벨트형의 결혼·육아보다 궤도 이탈일지언정 자발적인 독립·경력 중시가 먼저다. 맞벌이는 21세기 일본 가정의 주류 모델이 됐다. 뚜렷한 증가세로 외벌이보다 일반적인 가계 모형으로 안착했다.

1980년 남편 외벌이(1114만 명)는 부부 맞벌이(614만 명)보다 2배 많았다(가구 기준). 최근(2008년)엔 각각 825만 명, 1011만 명으로 완전히 역전됐다. 전체 가구 중 비중은 20년(1980~2008년)간 맞벌이(17.4%→21.%), 외벌이(31.5%→17.2%)로 변화됐다.

남편은 현실 무게에 짓눌렸다. 미혼 남성 중 63.0%가 여성 배우자와의 맞벌이를 원한다(아이세어, 2010년). 아내의 자격 취득 등 맞벌이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견(51.2%)도 절반이다. 아내도 맞벌이에 동의한다.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지 못할 것(70.0%)이라고 봤다.

전업주부 희망 여성은 줄었다. 1987년(34%)보다 줄었다(19%, 2002년). 전업주부 희망 남편은 38%에서 18%로 급감했다. 양육 이후 M자형 곡선에서의 탈출(재취업)을 바라는 남편은 47%까지 늘었다. 고액 연봉일수록 맞벌이 희망이 높다. 연봉 500만 엔 이상 독신 남성(45.4%)이 이하 남성(38.9%)보다 맞벌이를 더 원했다(비지니스미디어, 2011년).
[일본] 사라진 전업주부의 꿈, 결혼은 선택·출근은 필수…맞벌이 ‘붐’
고액 연봉자일수록 맞벌이 더 원해

그렇다면 맞벌이 카드는 과연 유효할까. 선택은 일단 옳았다. 적어도 금전 부담은 줄었다. 맞벌이 가계 소득은 높다. 2040세대의 기혼·맞벌이 연봉 조사 결과 15.7%가 1000만 엔 이상으로 집계됐다(오리콘, 2007년). 비정규직을 포함한 샐러리맨(평균 연령 44.7세, 근속 연수 11.6년) 평균 연봉이 412만 엔(국세청, 2010년)이란 점에서 상당한 고소득이다. 얼추 2배다.

700만~800만 엔(13.6%), 600만~700만 엔(12.4%) 등 최소 500만 엔 이상 고소득자가 전체의 64%를 점했다. 월등한 건 아내보다 남편 소득이다. 소득 기여도를 보면 남편이 전체 소득의 70%(22.3%)다. 소득이 아내보다 적은 남편은 10%뿐이다. 맞벌이 아내의 상당수가 고용 약자라는 증거다.

맞벌이는 흑자 가계부를 꾸릴 확률도 높다. 더 벌어 더 쓰는 ‘맞벌이의 함정’이라지만 가계 부상 흑자 추세는 뚜렷하다(가계조사, 2010년). 일례로 맞벌이는 월 60만 엔을 벌어 33만 엔을 쓴다. 17만 엔이 흑자다(10만 엔은 비소비 지출).

반면 외벌이는 49만 엔 소득에 30만 엔을 지출한다. 흑자는 10만 엔 정도다. 자가(自家) 보유는 맞벌이(70.6%)가 외벌이(64.2%)보다 비중이 높으며 주택 대출 변제 가구도 둘이 벌 때(45.2%)가 홀로 꾸려갈 때(33.6%)보다 높다. 연금 생활도 달라진다. 가상 계산(만액 기준)에 따르면 2025년 연금 수령액은 맞벌이(30만2000엔)가 외벌이(23만9000엔)보다 높다. 2050년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선택엔 희생이 따른다. 기회비용이다. 맞벌이 대세론의 이면엔 우울한 스케치가 넘쳐난다. 워킹맘의 원죄 갈등이 대표적이다. 아베노믹스가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다. 일하는 엄마는 늘 슈퍼우먼이길 강요당한다. 돈도 살림도 그녀의 몫이다. 맞벌이의 편파적인 가사 배분 트러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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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내의 가사 시간 분담률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일본 아내의 평일 가사 시간은 일본(122분)·미국(120분)·프랑스(83분)·한국(96분) 등인 반면 남편은 일본(18분)·미국(82분)·프랑스(47분)·한국(41분) 순서다. 그렇다고 남편을 몰아세우면 곤란하다.

남성 정규직의 주당 근무시간(66시간 30분)을 보면 집안일을 하고 싶어도 여유가 없다(2007년). 연차휴가(유급)도 19일에 불과해 선진국에선 최하위다(렌고종합생활개발연구소, 2009년). 오랜 회사 근무, 짧은 수면 시간, 적은 가족 식사, 짧은 부부 시간, 적은 개인 시간은 일본 남편의 고단한 현실이다.

그래서 ‘일과 가정 양립 조화(work life balance)’가 중요하다. 맞벌이 지원 정책의 핵심이다. 무자녀를 선택한 딩크족을 일하며 키우는 듀크족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책 배려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총리 직속의 전담 부서까지 설치해 맞벌이의 주름살이 펴지도록 절치부심 중이다. 재팬 리스크의 최대 해법인 출산 장려 차원이다. 단시간 정규직, 재택근무제 등 고용 형태의 다양화가 추진 산물이다. 물론 현실과의 괴리감은 여전하다.

양육 문제만 해도 그렇다. 서구사회와 달리 ‘결혼=자녀’를 세트로 보는 일본에서 육아는 맞벌이의 큰 골칫거리다. 비혼·만혼이 문제지 기혼 부부의 자녀 출산은 당연시(부부완결출생아수 2.09명)되는 풍조를 볼 때 안타까운 현실 문제다. 대기 아동이 대표적이다. 워킹맘이 자녀를 공립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신청 후 탈락해 대기 중인 잠재 인원까지 포함하면 85만 명에 달한다.
[일본] 사라진 전업주부의 꿈, 결혼은 선택·출근은 필수…맞벌이 ‘붐’
한때 전업주부는 로망이었다. 고도성장의 온기가 남았던 1980년대까지 최소한 그랬다. ‘남성 전업, 여성 가사’의 역할 분담이 공고한 표준 모델로 기능해 왔던 때문이다. 다만 상황이 변했다. 여성 취업은 불가피한 시대 조류이고 직장에서의 업무 내용도 바뀌었다.

과거 여성 근로는 보조 업무가 태반이었다. 남성처럼 종합직(직역 부여)으로 출발해 장기간 전문성을 기르는 트랙은 아니었다. 복사나 음료 접대 등 신부 수업을 하는 과정으로 여기는 기업이 많았다. 꽃일지언정 과실은 될 수 없는 유무형의 성차별적 한계였다. 이 때문에 ‘결혼=퇴사’가 당연시됐다. ‘고토부키타이샤(壽退社)’의 원류다.

결혼 이후 퇴사를 뜻하며 ‘고토부키’란 축하할 일을 의미한다. 결혼이 그렇다. 결혼은 축하 이벤트이자 퇴사 계기로 해석됐다. ‘결혼=축하=퇴사’의 완성이다. 결혼 이후 회사 퇴직은 그만큼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30대 전후 M자형 취업 곡선(여성)의 도출 배경이다.



여성 취업은 불가피한 시대 조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해서 그렇지 전업주부는 여전히 꿈이다. 맞벌이는 현실 고려의 당위론일 뿐 속내는 전업주부를 바란다. ‘하류사회’의 미우라 아쓰시는 “전업주부의 꿈은 모든 여성의 바람”이라며 미혼 여성의 ‘신(新)전업주부 지향’이란 말까지 내놨다. 실제 남편 전업, 아내 가사 모델에 찬성하는 미혼 여성이 적지 않다.

20대의 36.6%가 예스로 답했다(남녀공동참획백서, 2009년). 이는 ‘30대의 전업주부’가 가장 행복한 일본인상이라는 조사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 전업주부를 포기한 대신 남편 후보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3고에서 3저로의 전환이다. 많고(연봉) 크며(신장) 똑똑한(학력) 남편보다 낮고(위험) 겸손하며(자세) 기대지(의존) 않는 신랑이 선호된다. 돈보다 중요해진 건 행복 가치 때문이다. 이때 ‘3K’가 등장한다. 가치관·금전감각·고용안정(정규직)의 3K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