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의 인연을 선대 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과의 추억에서 찾는다. 이 부회장은 어렸을 때 매일 학교가 끝나면 할아버지인 이병철 회장과 동양방송·동양라디오 방송국에 가서 쇼 프로그램이었던 ‘쑈쑈쑈’ 촬영 현장, 드라마·음악 프로그램 촬영 현장, 라디오 녹음 현장 등을 배회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게 엔터테인먼트와의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 다른 배경은 유학 시절 미국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이다. 영화광이던 이 부회장은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멀티플렉스를 보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여러 편의 영화를 골라볼 수 있는 미국의 멀티플렉스는 이 부회장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블록버스터뿐만 아니라 B급 영화, 독립영화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미국인들의 일상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CJ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진출은 이 같은 배경에서 출발한다. 봉준호·이병헌·정지훈 등 폭넓은 인맥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진출한 후 CJ는 지속적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호사가들 사이에는 ‘이미경 라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2011년 4월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퀸시 존스 내한 기념 파티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계를 아우르는 이 부회장의 파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당시 파티에는 가수 비를 비롯해 이병헌·정우성·정준호·서인영·김창렬·백지영·김태우 등 국내 톱스타들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 대부분은 CJ와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공연·광고 등에 출연한 인물들이다.
CJ 측은 그러나 ‘이미경 라인’의 실체에 대해 부인하며 “영화 작업을 함께한 감독·배우들과 네트워크가 돈독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영화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낼 때마다 감독과 배우들을 격려해 왔다. 지난해에도 ‘늑대인간’으로 가능성을 보여준 조성희 감독에게 격려의 문자를 보냈고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는 감독과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한 ‘베를린’이 한창 촬영 중이던 지난해 여름에는 라트비아를 방문해 하정우·한석규 등 배우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부회장은 감독·배우들과 돈독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감독으로는 ‘박쥐’의 박찬욱을 비롯해 김지운·봉준호·윤제균 등이 있다. 김지운 감독과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으로 인연을 맺었다. 봉 감독은 ‘마더’ 투자에 이어 현재 상영을 앞둔 ‘설국열차’에도 CJ E&M이 투자와 배급을 맡고 있다.
배우로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이병헌이 대표적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 부회장이 직접 투자·배급 총괄에 이름을 올리며 애정을 보인 작품이다. 이병헌이 ‘지.아이.조’를 통해 미국 영화에 진출한 것도 CJ E&M이 일정 역할을 했다.
가수 비로 알려진 배우 정지훈도 빼놓을 수 없다. CJ E&M이 투자한 ‘알투비’ 주연을 맡았던 비는 ‘닌자, 어쌔신’을 통해 미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생일 등 기념일 초청 멤버에 정지훈이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2011년 크리스마스 직후에는 이 부회장이 배우들과 함께 군복무 중인 정지훈을 면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CJ E&M 측은 개인적인 친분 이상의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CJ E&M 관계자는 “특별히 어떤 감독이나 배우를 선호하기보다 시나리오의 색깔에 적합한 감독이나 배우를 좋아한다”며 “이전 필모그래피를 통해 감독이나 배우의 특징을 파악하고 작품 내 캐릭터와 일치도를 판단해 감독과 배우 후보군을 선정, 내부 유관 부서 간 다양한 논의를 거친 후 최종 선택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의 인맥은 국내보다 해외가 더 주목할 만하다. CJ엔터테인먼트의 초석이 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의 인연은 자주 회자된다. 이 부회장이 스필버그와 인연을 맺은 건 1995년이다. 당시 스필버그는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 프로듀서 데이비드 게펜과 해외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이때 알게 된 게 이 부회장이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이 부회장은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골프와 술을 하지 않으며 하루 5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부회장은 그들의 이런 열정을 닮고 싶었고 지금도 스필버그 감독을 인생의 멘토로 생각한다. 해외 인맥은 문화 수출의 발판
CJ로서도 이들과의 만남이 중요한 모멘텀이 됐다. 당시 삼성에서 분리한 CJ(당시 제일제당)는 식품 이외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 이때 이 부회장이 드림웍스와 딜을 성사시키며 CJ 내에 멀티미디어사업부를 신설했다. 이후 멀티미디어사업부는 CJ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바꿨다.
이 부회장은 스필버그로부터 감독이나 배우 같은 크리에이터들을 어떻게 동기부여하고 지원해 주는지 보고 배웠다. 이 부회장은 “스필버그는 영상·엔터테인먼트업에 관한 한 선배이기 때문에 이 산업을 이끌어갈 때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매니지먼트 시스템으로 가야 되는지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은 영화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CJ E&M이 영화·방송·음악·게임 부문이 있듯이 이 부회장이 교류하는 인사도 폭넓다. 그중 전설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의 인연은 국내에서도 제법 알려졌다.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명반 ‘스릴러(Thriller)’의 프로듀서이자 그래미 어워드를 27회 수상한 프로듀서다.
이 부회장은 2011년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퀸시 존스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이 부회장은 한국의 문화, 특히 케이팝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그때 만남이 인연이 돼 그해 4월 퀸시 존스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퀸시 존스는 방한 후 대금 독주, 아쟁과 칠현금 이중주, 사물놀이, 판소리 ‘홍보가’ 등을 관람하는 한편 그의 음악을 국악으로 재해석한 크로스오버 공연도 관람했다. 그는 사물놀이와 판굿의 신명 나는 공연에 “한국 음악과 아프리카 음악의 리듬이 매우 흡사하다”고 놀라움을 표하며 기립 박수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퀸시 존스는 그해 7월 자신이 프로듀싱하는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한국 아티스트를 초청했다. 페스티벌에서 그는 세계적 신진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메인 무대인 ‘스트라빈스키’ 홀에 호원대 실용음악과 학생들을 세워 전 세계 팬들에게 한국 음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한국 문화의 글로벌 시장 개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부회장은 항상 로컬 챔피언이라는 자리에 안주하거나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마음을 가장 경계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베스트’가 된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과 대한민국 1등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는 길과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꿈은 비교적 심플하다. 전 세계인이 매년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월 1~2번 한국 음식을 먹고 매주 1~2편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매일 1~2곡의 한국 음악을 들으며 일상생활에서 한국 문화를 마음껏 즐기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1970~1980년대 한국의 할리우드 키드처럼 ‘코리안 키드’가 생겨나길 바란다.
한국 문화계에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이미경 부회장. 이 부회장은 그 영향력을 바탕으로 2006년 세계 여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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