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활황이다. 미국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나란히 2007년 이후 5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고 있다. 영국 런던 증시 등 유럽 각국의 주식시장도 2010년 초 유럽 재정 위기가 대두되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모습이다. 산업계가 엔화 가치 하락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일본 증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닛케이지수가 4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돌파했다.

하지만 주가 상승을 지켜보는 투자자들의 마음은 어딘지 불편하다. 미국의 재정 절벽(fiscal cliff: 재정지출 삭감에 따른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고 남유럽 재정 위기도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안심하고 상승세에 몸을 맡겨도 되는 걸까.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사이 거래량은 반대로 바닥을 향하고 있다. 거래가 터지면서 지수도 오르는 통상적인 시장 흐름과 상반된 모습이다.
<YONHAP PHOTO-0024> Barclays specialist Frank Masiello works at the company's post on the floor of the New York Stock Exchange, August 9, 2012.  REUTERS/Brendan McDermid (UNITED STATES - Tags: BUSINESS)/2012-08-10 00:15:32/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Barclays specialist Frank Masiello works at the company's post on the floor of the New York Stock Exchange, August 9, 2012. REUTERS/Brendan McDermid (UNITED STATES - Tags: BUSINESS)/2012-08-10 00:15:32/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주요 경제 이슈는 정치인들의 입에 달렸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주요 증시의 거래량은 2009년 상반기 대비 40% 감소했다. 유럽 주요 대기업들을 근거로 하는 유로퍼스트300지수 역시 2007년 하반기와 비교해 거래량이 45% 줄었다. 증시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외환 거래는 2006년 하반기 대비 30% 감소했으며 리스크를 매매하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거래 역시 2010년 중기 대비 18% 감소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수가 상승하는 와중에도 지난 2월 18일 코스피의 1일 거래대금은 2조8745억 원으로 2006년 10월 이후 6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날 코스닥 거래대금 역시 1조9042억 원으로 2007년 11월 이후 최저치였다.

이처럼 거래량이 지수와 거꾸로 움직이는 것은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그만큼 허약하다는 방증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들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되는 시장 흐름이다. 존 피제컬리 노무라 유럽지역 대표는 “정치인이 문 밖으로 걸어 나와 기자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면 다음날 시장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재정 절벽 협상부터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정상들의 재정 위기 타개 논의까지 주요 경제 이슈는 정치인들의 입에 달려 있다는 점을 설명한 셈이다.

증시를 비롯한 자본시장의 거래량 감소는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신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자산의 종류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거래량 감소는 선진국의 경기 부양 과정에서 풀린 돈이 어느 곳에도 잘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결국 투자자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어 유동성이 실물경제에 흘러가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수 상승에 취하기보다 실제 거시 경제 흐름을 냉정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국부 펀드 컨설팅 회사인 타워스왓슨의 로버트 브라운 글로벌투자 본부장은 “세계 정치 및 경제 환경의 변동성은 지금 금융시장에 단기적으로 반영돼 있는 것보다 훨씬 높다”며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착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증시가 상승하는 만큼 시장의 붕괴를 부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의 금융 당국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무너진 금융 시스템을 복구하는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유로존은 재정 적자와 싸우고 있다. 선진국 경제가 아직 허약한 가운데 이란과 북한 등의 세계 다른 곳에서도 지정학적 위기가 부각돼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경제를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노경목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