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900명이 뽑은 ‘10년 후 한국의 대표 기업·대표 CEO’

한국인 900명이 뽑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CEO’ 조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각각 17.9%와 11.1%를 얻어 1, 2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CEO들 중에서 ‘부동의 투 톱’으로 통하는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은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자동차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으며 ‘코리아’ 브랜드를 널리 알린 주역이다.

두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CEO’에 1, 2위로 뽑힌 것은 예상된 결과였다. 그 뒤를 구본무 LG그룹 회장,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이 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 성과만 따진다면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CEO로 기록될 만하다.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는 2012년 매출 201조 원, 영업이익 29조 원을 기록하며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섰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천이 지난해 발표한 500대 기업과 비교해 보면 삼성전자는 매출에서 세계 14위, 이익은 4위 규모다.


SM엔터 이수만 4위 ‘이변’

메모리 반도체는 5년 넘게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고 대표 가전제품인 평판 TV도 2000년대 초 일본 소니를 누른 뒤 줄곧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휴대전화 부문은 지난해 애플과 노키아를 누르고 당당히 1위에 올라섰다. 이런 삼성을 키운 인물이 바로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아내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한국 경제에 신경영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삼성전자와 함께 정몽구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현대자동차의 약진도 한국 기업의 위대함을 보여준 쾌거다.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액 84조4697억 원, 영업이익 8조4369억 원의 실적을 거뒀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다. 연간 영업 이익률도 10%를 지켜냈다. 금융 위기 직전만 해도 5%대였던 현대차의 영업 이익률은 불과 4년여 만에 두 배가량 높아졌다.

이는 그만큼 세계시장에서 현대차의 위상과 판매 단가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몇 년 전부터 현대차가 추진하고 있는 제값 받기 전략이 브랜드 가치 상승 등과 함께 그대로 적중한 셈이다. 이는 정몽구 회장의 품질 경영 덕분으로 보인다. 상품 기획에서부터 설계·시험생산·구매·양산·출하·판매 등 전 부문에서 10여 년간 묵묵히 이어 온 정 회장의 품질 제일주의가 오늘의 현대자동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4대 그룹’ CEO 답게 선두 그룹에 속했다. LG그룹은 스마트폰에서 실기한 LG전자의 부진과 세계 화학 경기 침체로 고전하는 LG화학의 정체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SK그룹은 신성장 사업과 해외 사업에서 잇따라 실패하고 최근 최 회장이 횡령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는 등 위기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삼성·현대차그룹과 함께 한국 경제를 선도해 온 LG·SK그룹 총수들의 저력에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사에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과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다. 케이팝 열풍이 아무리 거셌다고는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워낙 작은 데다 지속성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싸이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을 보면서 케이팝의 해외 진출에 힘을 기울인 CEO들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카카오톡 신화’ 김범수 12위

이수만 회장은 1995년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H.O.T,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 많은 인기 가수를 배출한데 이어 적극적인 해외 진출로 케이팝의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세기의 프로듀서’로 통한다. 이수만 회장은 ‘시스템’과 ‘글로벌’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주먹구구식 비즈니스에서 탈피해 캐스팅과 트레이닝, 매니지먼트, 글로벌 프로모션 등 모든 것을 시스템화한 것이다.

가수 출신인 박진영 대표는 2001년 JYP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GOD, 박지윤, 비, 원더걸스, 2AM, 2PM 등의 인기 가수를 배출하며 탁월한 경영 능력을 선보였다. 일찌감치 걸그룹 원더걸스를 해외로 진출시켜 미국 빌보드 차트 100위 안에 진입시키는 등 케이팝의 초반 돌풍을 주도한 게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요인으로 보인다.

게임·커뮤니케이션·포털 등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업체 가운데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 카카오의 김범수 이사회 의장, 드림위즈의 이찬진 대표 등 3인이 25위권에 진입한 것도 눈에 띄는 결과다.

김택진 대표는 국내 게임 업계의 스타 CEO로 통한다. 1989년 ‘아래아한글’을 공동 개발했고 한메소프트를 창립하며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명성을 얻었다. 1997년엔 엔씨소프트를 설립해 온라인 게임 ‘리니지’, ‘길드워’ 등을 통해 세계적인 게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지난해 6월 김 대표는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8000여 억 원에 넥슨에 팔면서 최대 주주 자리까지 넘겨줘 화제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엔씨소프트의 신작 개발과 해외 진출을 주도하고 있다. 지분 보유와 관계없이 ‘김택진=국내 게임 업계 간판 CEO’라는 등식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범수 의장은 ‘혁신 벤처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1998년 설립한 한게임은 2000년에 네이버컴과 합병하면서 당당히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자신이 창립한 NHN 한게임에서 나와 카카오를 설립하면서 PC에서의 신화를 모바일에서 다시 한 번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카카오톡이라는 방대한 메신저 사용자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파생해 저변을 확대한 것이 카카오의 성장 원동력으로 꼽힌다. 카카오톡 이용자가 7000만여 명이라는 사실은 김범수 의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CEO’ 입성에 의문을 달수 없게 만든다.
‘전문 경영인’ 조준호 사장 유일

이찬진 사장은 아래아한글로 유명한 한글과컴퓨터를 창업하면서 ‘한국의 빌 게이츠’라고까지 불리던 인물로 탤런트 김희애 씨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1999년 한글과컴퓨터의 실적 부진 및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회사에서 나왔고 포털 업체인 드림위즈를 창업했다. ‘아래한글=이찬진’이라는 등식이 잊히지 않는 한 이찬진 사장의 명성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벌가 3세 경영인들도 적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 5명이 포함됐다. 정의선 부회장을 제외하곤 모두 삼성가의 자손들이다. 이들은 ‘향후 10년간 활약할 최고의 차세대 CEO’ 조사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재용 부회장이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CEO’에 오른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지난해 말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한데다 실질적으로도 삼성전자의 경영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식품 기업 CJ제일제당을 물려받아 재계 자산 순위 14위(공기업 제외) 규모로 사세를 키우며 경영 능력이 이미 검증됐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전 세계인이 우리의 음식·영화·방송·음악을 즐기며 생활하게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글로벌화에 공을 들였고 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경영자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인기 CEO’였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고객과 적극 대화함으로써 소통 리더십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이마트의 노조 설립 방해 파문 등을 겪으면서 신세계와 이마트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 겸임)은 일찌감치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외모와 성격은 물론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까지 빼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리더다.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사장)에 오른 이후 삼고초려 끝에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영입해 ‘디자인 기아’를 탄생시켰다. 2009년 8월부터 현대차의 기획 및 영업 담당 부회장으로 취임, 지난해까지 매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25인 중 오너 경영인이 아닌 전문 경영인으로는 조준호 LG 사장이 유일했다. 조 사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강유식 부회장에 이어 LG그룹의 새로운 조타수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2002년 44세의 나이로 LG전자 부사장에 오르면서 재계의 주목을 끌었다. 그 뒤 2009년 인사에서는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최연소 사장 승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