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와 ‘이피비(EPB)’. 한국의 경제 관료 ‘라인’을 나타내는 단어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 출신, EPB는 옛 경제기획원 출신을 말한다. 업무 성격도 조직 성향도 달랐던 이 두 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도권을 번갈아 쥐었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을 경제부총리로,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내정했다. 이들은 과거 재정경제부에서 한솥밥을 먹던 대표적인 EPB 출신이다. 1999년 현 후보자가 경제정책국장으로, 그는 바로 밑에서 정책심의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금융위원장 인선이 남아 있지만 새 정부 1기 경제팀의 주축이 EPB 출신으로 꾸려진 것이다. MB 정부에서 약진했던 모피아가 지고 EPB 전성시대가 돌아온 것일까. 요즘 경제 부처 공무원들의 최대 관심사다.

노무현 정부는 EPB 출신 전성기였다. 초반엔 김진표·이헌재 경제부총리 등 재무부 출신들이 득세하는 듯했다. 하지만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등을 거치며 이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2006년 7월 개각 이후 EPB 라인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경제팀이 꾸려졌다. 청와대에서도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김대기 경제정책비서관 등 경제기획원 출신이 한꺼번에 약진하면서 크게 화제를 모았다.

EPB 출신 관료들의 장점은 기획력. 거시경제 정책을 짜는데 능해 ‘숲을 볼 줄 안다’는 평가다.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참여정부와 궁합이 잘 맞았다. EPB 출신들은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을 수립했던 경험을 살려 노무현 정부의 역점 사업인 비전 203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지방 균형 발전 등 굵직한 업무를 주도했다. 하지만 임기 말기까지 장관급 요직을 ‘EPB가 싹쓸이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인지 임기 초반 이명박 정부는 경제 관료 인맥을 멀리하는 듯했다. 금융위원회 위원장(전광우)과 부위원장(이창용)을 모두 민간에서 뽑았다.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재무부 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친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기용한 것 정도였다.
[경제부처 24시] 5년 만에‘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지고 ‘EPB(옛 경제기획원 출신)’ 뜬다
경제기획원 문화, 개인의 창의성 중시

숨죽였던 모피아가 부활한 것은 2009년 2기 경제팀부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진동수 금융위원장 등 재무부 출신이 삼각편대를 이뤘다. 임기 초반부터 금융 위기와 촛불 시위에 시달린 MB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이 절실했다. 일사불란한 팀워크와 강한 실무 능력을 갖춘 모피아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의 영문 약자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끈끈한 인맥을 바탕으로 세력화했다는 다소 부정적 뉘앙스가 섞여 있다. 실제로 재무부 출신은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편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한 공무원은 “EPB는 큰 그림이나 종합 정책을 내놓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 소재가 뚜렷하지 않지만 재무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세제와 금융 등 세부 정책을 집행하는 건 재무부 출신이다. 공무원 한 명이 하루 삐끗하면 세금이 걷히지 않는 등 금방 문제가 드러난다. 책임감과 팀워크가 강할 수밖에 없다.”

EPB 문화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좀 더 중시하는 편이다. 재정부 예산실의 한 과장은 “EPB 출신들은 산업·복지·교육·농림 등 다양한 부문의 동향을 점검하고 예산도 짠다”며 “그러다 보니 내 영역, 남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게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스포츠로 따지면 모피아는 조직력을 기반으로 한 축구, EPB는 개인기 위주의 야구팀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김유미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