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영일인터내셔널 대표

태백산맥 끝자락에 자리한 경북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 해발 450m 고산지대.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농한기인 겨울철에 더 분주해진다. 이들의 주된 작업은 무쇠 가마솥에 참나무 장작불로 메주콩을 삶아내는 일, 새끼줄에 메주를 걸고 건조 발효하는 일, 좋은 날을 택해 장을 담그는 일이다. 장의 주원료인 콩을 수확하는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작업은 계속된다.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 낸 된장·고추장·간장은 ‘죽장연’이라는 브랜드를 달고 국내 백화점과 해외 유명 레스토랑으로 건너간다. 제품은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생산하지만 와인처럼 ‘빈티지(vintage)’가 있는 게 특징이다. 정연태 영일인터내셔널 대표는 식품 대기업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죽장연’을 만들고 전통을 명품화하는데 공을 들였다. 국내보다 미국·일본 시장을 먼저 공략하며 ‘한국의 장’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포커스] “또 다른 한류 ‘장류 붐’ 기대하세요”
약력 : 1965년생.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 마케팅 전공.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오리온그룹 (주)롸이즈온 마케팅 총괄본부장. 영일인터내셔널 대표(현).


장류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부친이 포항에서 사업을 하면서 죽장면 상사리 주민들과 꾸준히 교류해 오셨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수확기에 일손을 도우면서 관계를 형성했죠. 10년 전부터 함께 김장도 하고 장을 담가 먹기 시작했습니다. 해발 450m 고산지대라 좋은 콩이 많이 나와 연간 20~30독씩 담가 지인들에게 나눠줬는데 주변에서 ‘맛있다, 좋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이것을 4년 전부터 사업화했습니다. 최근 건강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통 장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외에선 ‘한류’ 붐을 타고 있는데, 한국의 모든 음식에는 장이 들어가고 있고요. 발전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습니다.

와인의 ‘빈티지’ 개념을 도입했다고요.

좋은 재료를 사용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시스템은 가장 현대적으로 가지고 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장의 건조·발효·숙성 과정이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와인은 오크통에 저장하고 숙성 기간에 따라 질이 결정되는데, 장 또한 항아리에 저장하고 좋은 볕에 최소 1년 이상 숙성해야 좋은 맛을 내죠.

장에도 빈티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우리는 1년부터 5년까지 빈티지별로 관리하고 장을 담그는 시점부터 날씨·환경·과정 등을 다 기록합니다. 앞으로는 오래 묵힌 장들은 와인처럼 고가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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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식이라면 어떤 겁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마을 주민들입니다. 처음부터 마을 주민들이 없었으면 죽장연이 탄생할 수 없었죠. 장 담그는 시즌이 되면 주민 40여 명이 장목반을 형성해 농번기보다 더 바쁘게 움직입니다. 서포항 농협과 함께 일대 콩을 전량 수매하면 작업이 시작됩니다.

16개 가마솥을 사용하고 참나무 장작도 직접 주민들이 팬 것을 씁니다. 장을 담글 제조 반장의 지휘 아래 공동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된장은 콩·천일염·물 등 세 가지 원료로만 만듭니다. 장을 담근 후엔 해가 잘 드는 곳에 장독을 보관하는 게 중요하죠. 청정 지역이고 바람이 좋아야 하고 위생 관리도 잘 돼야 해요.

죽장연은 5000독을 보유할 수 있는 공간에 현재 2000독을 담가 놓은 상태입니다. 모든 장 만드는 과정은 재래 방식이지만 프로세스별로 매뉴얼화돼 있습니다. 장 만드는 사람들을 우리끼리는 ‘장원’이라고 부르는데 모두 교육을 받은 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장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습니까.

간장은 묵히면 묵힐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된장도 오래될수록 건강에 좋긴 한데 색이 진해지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는 편입니다. 된장은 3~5년이 지나면 가장 맛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물이 좋아야 좋은 장이 나옵니다. 요즘은 저염식을 선호하는데 전통 된장 하면 짜다는 인식이 많아 소금 농도를 낮춰 장을 담그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장을 담그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유통 채널은 어떻게 확보하고 있습니까.

국내 유통도 하지만 미국·일본·뉴질랜드·인도네시아·중국 등 해외시장을 먼저 공략했습니다. 지난해 20억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중 수출이 50%를 차지합니다.

미국은 한식 레스토랑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점을 받은 곳에 죽장연의 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 백화점과 마트, 또한 사이카보(Saikabo)라는 레스토랑과 제휴해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판로는 명절 기업 선물 세트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백화점에도 입점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건 1년 정도 됐습니다. 이제 하나씩 만들어 가는 과정인데 특히 올해는 국내시장을 더 확대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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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2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장을 가지고 가서 맛을 보라고 권했습니다. 계속 장을 보냈는데 1년 정도 지나니 만드는 과정을 한 번 보고 싶다고 연락해 오더군요. 무엇보다 식품 업계에 종사하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던 게 가장 큰 자산이었습니다.

좋은 장을 만드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을 알리고 판매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죠. 보통 지역에서 전통 식품을 만드는 분들이 제품에 대한 고집과 자부심이 강하지만 외부 세상과의 네트워크에는 약한 편입니다. 이런 점에서 열린 마음을 갖고 전통을 소비자 니즈에 맞추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해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일본에서는 된장과 비슷한 미소가 있어서인지 된장보다 고추장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미국은 교민 사회에서 된장을 많이 찾습니다. 아직 음식 ‘한류’는 이제 첫 단추를 끼운 상태라고 봅니다.

장류는 현지인들이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스화가 돼야 합니다. 현재 일본의 파트너사와 일본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쌈장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최근 해외 유명 셰프들이 한국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발효식품인 장에 대한 연구를 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학계에서 음식 ‘한류’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봅니다.
[포커스] “또 다른 한류 ‘장류 붐’ 기대하세요”
국내 고객을 늘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장기적으로는 충성도 있는 고객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신제품이 출시되면 단골손님들에게 제품을 돌리고 설문 조사도 합니다. 우리의 주 타깃 층은 ‘건강을 생각하는 도시 중산층’으로, 연령대와 건강 상태에 따라 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장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내수공업 형태로 하다 보니 위생 등에서 신뢰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있죠. 그래서 특별히 위생 관리에 힘을 쏟고 있고 디자인이나 포장 등 현대 감각을 입혔습니다.

생각보다 젊으신데 전통 장류 사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장류 관련 행사장에 가면 “당신이 무슨 장을 만드느냐, 어디서 왔느냐, 장을 아느냐” 등의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사람들이 전통 장류라고 하면 두루마기를 연상하거나 나이가 지긋한 명장을 떠올리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이라는 것은 한국 음식의 기본이고 또한 소스부터 반제품·완제품 등 장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이 다양하죠. 우리의 전통을 가지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입맛에 맞는 식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전통 식품 기업을 만드는 게 저의 비전입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