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민찬기
e스포츠팬들에게 ‘민찬기’라는 이름은 너무도 익숙하다. 케이팝 못지않게 국내외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의 e스포츠계에서 유난히 빛나던 스타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그는 게이머 시절 ‘미남 테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와 ‘신형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화끈한 게임 기량을 선보여 남녀 팬들 모두에게 높은 인기를 누렸다. 게임에서 졌을 때 유난히 화를 잘 낸다고 해서 붙은 ‘빡찬기’란 별명은 유순한 외모와 달리 그가 얼마나 남다른 승부사 기질을 갖고 있었는지 증명해 줬다. “그 별명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네요.(웃음) 하지만 평소에는 화를 거의 안 내거든요. 게임할 때는 승부욕이 심하다 보니까 지고 나면 저도 모르게 화가 나곤 했는데, 그런 모습 때문에 진짜 제 성격을 오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그의 승부욕은 요즘 게임이 아닌 연기를 통해 발산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시작된 KBS 2TV 일일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기 때문이다. 잘나가던 프로게이머가 어느 날 갑자기 신인 배우로 변신한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다.
‘MBC 게임 히어로’ 소속의 게이머로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군에 입대했고 군 e스포츠팀인 공군 ACE에 소속돼서도 화려한 기량을 선보였던 그다. 입대 이후 기량이 더욱 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역 후의 본격적인 활동을 기대한 이들이 많았지만 전역할 무렵 몸담고 있던 소속 팀이 해체되면서 그가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다른 게임단과의 재계약 시즌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게이머 외에도 세상에는 선생님·의사·은행원 등 다양한 직업들이 있잖아요. 그런 다양한 세상을 두루두루 다 경험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직업은 배우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결국 배우의 꿈을 안고 게임을 그만두게 됐죠.”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훈남’ 배우로 부상
배우를 향한 그의 도전에 주변의 많은 이들이 우려와 반대를 표했다. 처음에는 그 역시 게임계와 연예계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그때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게이머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온 슈퍼주니어 멤버 ‘규현’이었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규현이 형이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연예계에서는 완전 대선배님이시잖아요. 그런 만큼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연예계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필요한 곳인 만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라는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어요.”
그런 주변의 다양한 걱정과 우려, 조언을 자양분 삼아 그는 차근차근 변신을 위한 노력들을 시작했다. 꾸준히 연기 학원에서 연기를 배우는 한편 소속사 오디션도 직접 보러 다녔다.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동안 상처받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격려의 말도 많이 들었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제법 매력 있다는 이야기에 많은 힘을 얻었어요. 막상 연예계에 들어와 놀랐던 게 잘생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거든요. 저는 저도 좀 잘난 줄 알았는데(웃음) 어휴, 하나도 잘난 게 없더라고요. 정말 세상이 넓다는 걸 실감했죠.”
그런 노력의 결과 그는 신인 배우들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시트콤에 캐스팅될 수 있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극중 주요 무대인 에스테틱 숍의 ‘훈남’ 사원으로, 극중에서 4각 관계 러브 라인을 형성하는, 신인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배역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연기를 해 보지 않았던 그인 만큼 그의 데뷔에 많은 이들은 내심 그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미리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깨고 신인 연기자답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이며 모든 이들의 걱정과 불안을 한 번에 불식했다.
“게이머 시절부터의 팬들이 ‘본방 사수’하며 응원해 주신 덕분이죠.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이것저것 알려주신 선배님들 덕도 크고요. 함께 촬영하는 장면이 많은 (심)지호 형은 자신의 10년 노하우라면서 낯선 촬영 용어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줘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몰라요.”
주변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을 더해 시간이 갈수록 팬들이 늘고 있다. 보기만 해도 훈훈한 ‘기럭지’와 달콤한 미소로 여심을 뒤흔들며 회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여성 팬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인터넷상에서는 극중 러브 라인의 향방을 두고 심지호파·민찬기파로 나뉘어 뜨거운 각론을 펼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다행히 캐릭터가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아 연기하기가훨씬 수월한 편이에요. 친구들도 연기 같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요.”
그래도 좀 더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자신 안에 잠들어 있는 끼를 깨울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1주일에 4일 정도의 촬영을 끝내고 나면 영화나 연극 등을 보며 부족한 자신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본을 연습하는 것은 물론이다.
“친구들과 주거니 받거니 연습을 하기도 하고요, 얼마 전 유학에서 돌아온 누나와 대본을 맞춰 보기도 해요. 누나가 직접 박지윤 씨나 박희본 씨 역할을 전부 해 줘서 대본 외우기가 한결 편해졌어요. 누나, 고마워.(웃음)”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이제 프로게이머 민찬기는 없다. 막 날개를 활짝 펴려고 하는 신인 배우 민찬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게 게임과 게임계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소중한 한 부분이다.
“솔직히 말하면 게임을 할 때는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매번 매순간 엄청난 팬들이 지켜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부담이 컸고요. 그래서 다시 옛날 프로게이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 긴장감의 바다에 다시 빠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무서울 것 같긴 해요.”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중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많은 팬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연기를 하면서 쉽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잡아주는 친구들을 얻은 것도 모두 게임 덕분이기 때문이다.
그의 지금 당장의 목표는 어떤 작품을 하든 작품 속에서 누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자신의 틀을 깨고, 누구보다 단단한 배우가 되길 꿈꾸고 있다.
“언젠가 조승우·하정우 선배님들과 같은 믿음직스러운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신인 배우 민찬기, 믿고 지켜봐 주세요.”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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