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자원 슈퍼 사이클과 이슈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시작된 ‘3차 원자재 슈퍼 사이클’은 지난 15년간의 상승 동력을 거의 소진한 모습이다. 박환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960년부터 에너지와 금속, 곡물값 등을 종합한 세계은행 원자재 가격지수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그 상승세가 눈에 띄게 둔화됐다”며 “장기적으로는 하락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슈퍼 사이클은 원자재 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다가 정점을 찍고 내리는 주기적 현상을 말한다. 하나의 주기는 20년 이상 지속된다. 1차 슈퍼 사이클은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유럽의 특수, 2차는 1970년대 석유파동 등이 촉발했다. 지금의 3차 슈퍼 사이클은 중국의 고성장에 힘입은 면이 크다. 기상이변과 바이오 연료 생산, 투기성 자본의 상품 시장 유입까지 겹치면서 상품 값은 2000년대 후반 연이어 신고가를 썼다. 곡물값 상승은 기상이변 때문
분위기가 바뀐 것은 2~3년 전부터다. ‘자원의 블랙홀’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선진국 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수요가 꺾인 것이다.
박 연구원은 “세계 경제성장 사이클은 2009년 정점을 찍었다”며 “대표적 산업재인 석유와 구릿값은 2~3년 후행해 올해를 기준으로 장기 하락세에 돌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신흥시장 대표도 최근 “슈퍼 사이클 상승 국면이 종료되면서 앞으로 20년간 내림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품목별로 보면 석유와 구릿값은 최근 정점을 형성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가격은 2006년 하락 국면에 진입했다. 옥수수와 대두 등 곡물값은 아직 고공행진 중이지만 이는 2010년부터 기상 악화가 계속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년간 석유값은 최고점 대비 19.1%(9월 말 기준), 석탄은 40.3%, 구리는 18.5% 떨어졌다
박 연구원은 “장기 하락 국면이더라도 그 속도와 기울기는 기상이변과 같은 단기 변수가 결정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셰일가스 붐’을 예로 들었다. 셰일가스 생산이 확대되면 석탄과 천연가스 가격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
자원 값이 약세일 때는 관련 투자가 위축된다. 하지만 역발상의 투자를 시작한다면 다음 슈퍼 사이클에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즉 가격 하락기에 자원 생산 기술과 관련 서비스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다음 상승 국면을 노리는 것이다. 세계 최대 원자재 기업 글렌코어는 1990년대 슈퍼 사이클 하락 국면에서 저개발 지역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한편 자원 시장이 약세 국면에 진입하면 신흥국 가운데 자원 수출 비중이 낮고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가 유리해진다. 즉 상품값 하락은 이 두 측면을 모두 갖춘 한국에 더욱 유리하다는 뜻이다. 터키·인도·이집트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신흥국 경제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홍표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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