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매출 52조1800억 원, 영업이익 8조1200억 원의 실적을 거뒀다. 분기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최대다. 3분기까지 실적 호조에 힘입어 올 연말까지 매출 200조 원, 영업이익 25조 원 돌파를 바라보게 됐다.
현대자동차도 직전 분기보다 약간 떨어졌지만 3분기 매출 19조6456억 원, 영업이익 2조558억 원, 영업이익률 10.5%의 실적을 올렸다. 올 연말까지 80조 원 매출과 8조 원대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정도 실적이면 안심할 만도 하지만 두 회사는 여전히 ‘비상 경영’, ‘위기 경영’을 외치고 있다. 최고경영진은 연일 대책 회의를 열며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경영 환경과 상관없이 모든 기업은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글로벌 전쟁터에서 지속적인 승리를 보장받는 기업은 없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되는 일이 다반사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노키아·소니·제너럴모터스(GM) 등은 순식간에 선두에서 밀려났다. 이치는 하나다. 세계를 제패한다는 것은 그만큼 규모가 커진다는 의미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비용 또한 매출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삼성전자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 데는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시설 투자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1~6월) R&D와 시설 투자비로 지출한 비용은 각각 5조8000억 원과 13조9000억 원이다. 20조 원에 가까운 돈을 6개월 동안 쏟아 부었다.
삼성전자의 놀라운 경영 성적표는 이처럼 천문학적인 투자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투자한 만큼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도체·휴대전화처럼 엄청난 R&D 비용이 들어가고 기술 속도가 빠른 산업에서는 한 번 밀리면 쭉 밀린다. 위기는 천천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덮치는 법이다.
더구나 기업도 잘나가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사실은 이것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가장 큰 변수다. 자신감이 넘쳐 자만이 되고 오만으로 번진다. ‘내가 최고야’ 하고 거들먹거리는 사이 2, 3위 업체들이 독을 품고 1위 탈환을 노린다. 1등 기업이 무너지는 이유는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니 최고경영자(CEO)들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위기 경영’을 부르짖는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 CEO들에게 ‘당신 기업은 안전한가’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만이 가장 큰 위기 변수
우선 ‘상시 위기경영체제’인 삼성전자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다. 환율은 큰 변수가 아니다. 생산과 매출이 대부분 해외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통화를 사용하고 환 헤지 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대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변수는 3가지다. 우선 스마트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실적 고공 행진의 주역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휴대전화 사업부가 포함된 IM(IT 모바일) 부문은 3분기 5조6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는 전체 이익의 69%다. 알다시피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은 최고의 격전지다. 최근 몇 년 새 순위 바꿈이 숱하게 일어났다.
달리 해석하면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35%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압도적인 점유율이 오히려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승 추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모토로라·에릭슨·노키아·LG전자 등 한때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던 기업들이 한순간에 애플과 삼성전자에 밀려났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더구나 한 번 밀리면 기업의 존립 자체가 휘청거린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제품은 교체 주기가 짧은 데다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 대응하다 보면 엄청난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이 불가피하고 결국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일본의 전자 기업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비결 중 하나로 반도체·모바일·TV·백색가전 등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포트폴리오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 비중이 높아지면서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고 있지만 반대로 스마트폰 시장이 침체되면 그만큼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애플과 끝나지 않는 특허 전쟁도 고민거리다. 지난 10월 15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침해 맞제소와 관련, “애플은 삼성전자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예비 판정을 내렸다. 지난 10월 미국 내 특허 소송에서 애플에 완패한 삼성전자는 더욱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부품 사업의 침체도 걱정거리다. 유럽 재정 위기 지속으로 PC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 또한 함께 침체되고 있는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의 부품 수요처 다변화 정책에 따른 부품 부문 실적 부진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9월 중국 산시성 시안의 반도체 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부품 사업은 내년에도 획기적으로 시장이 좋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짠물 경영’으로 이를 돌파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0월 30일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2013년 경영 플랜을 짰다. 이 자리에서 저성장 기조에 발맞춰 무리한 사업 확장과 대규모 투자는 보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내 긴장감 유지가 관건
현대차를 위기에 빠뜨릴 변수는 3가지다. 현대자동차 측은 우선 환율을 언급했다.
정몽구 회장은 10월 말 주요 임원을 대상으로 해외 경영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해외 공장을 100% 가동하고 비용을 절감하라. 환율을 버텨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속적인 유로화 약세에 4분기부터 달러화 약세까지 겹쳐 환율이 매출 감소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며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줄이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율이 현대차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예전처럼 치명적이지는 않다. 해외 생산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국내 공장 생산 비중은 2006년 64.5%에서 지난해 46.3%로 낮아졌다. 신정관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브랜드 가치 상승, 품질 경쟁력 증가로 경쟁력을 갖추면서 예전처럼 환율 변동에 대한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침체에 빠져 있던 일본 차의 재도약은 현대차의 앞길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일본 차의 공세가 무섭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도요타자동차는 미국에서 전년 동기 대비 42% 늘어난 17만1910대를 팔았다. 점유율은 지난해 9월 11.5%에서 올 9월 14.5%로 3% 포인트 올라갔다. 혼다도 11만7211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율을 보였다. 점유율도 9.9%로 10%대 재진입을 눈앞에 뒀다.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의 약진도 현대차의 전진을 방해할 수 있다. 현대차는 국내 시장에서 지난 9월까지 48만1403대를 판매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5.6% 감소한 것이다. 최근 수입차 브랜드의 성장세는 무섭다.
수입차 브랜드의 내수 시장점유율은 1987년 시장 개방 이후 지난 10월 처음으로 누적 기준 10%를 넘어섰다. 올해 1~9월 수입차는 국내에서 9만5706대가 팔려 10.1%(승용차 기준)를 기록했다. 수입차의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유럽연합(EU) FTA 등으로 관세가 인하된 데다 엔고 현상으로 일본 차의 대대적 공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원고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 현대차와 엔고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일본 차가 국내외 시장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일 것이고 여기서 지면 위기는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대차는 유럽 경제 위기와 환율 변동 등 불안한 경제 상황에 대비해 원가절감 등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브랜드 가치와 품질 경쟁력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은 삼성전자·현대차의 급성장이 모두 위기 속에서 일궈낸 점이라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남들이 겁먹고 후퇴할 때 과감하게 전진한 덕분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즉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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