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또다시 경기 부양을 위한 칼을 빼들었다. 지난 9월 13일 돈을 찍어 시중의 채권을 매입하는 3차 ‘양적 완화(Quantative Easing)’를 발표했다. 매달 400억 달러 규모의 주택 담보대출(모기지) 증권(MBS)을 기한을 두지 않고 사들여 시중에 달러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Fed는 고용 시장에 개선 기미가 없으면 MBS를 계속 사들이고 추가 자산 매입에 나서는 등 다른 정책 수단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채권 매입 규모와 기간을 미리 정해 놓지 않은 사실상 ‘무제한 양적 완화’를 선언한 셈이다. 2009년 1차 양적 완화 때 1조7000억 달러, 2010년 2차 양적 완화 때 6000억 달러보다 자금 공급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

Fed가 돈을 찍어 시중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는 MBS를 매입하면 MBS 가격은 올라가고 금리가 내려간다. 주택 대출금리 하락은 집을 사려는 수요를 자극해 집값 상승과 함께 주택 경기를 되살릴 수 있다. 벤 버냉키 Fed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치는 침체된 주택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가격이 오르는 만큼 소비자들은 자산 증가를 체감하게 돼 결국 소비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Fed가 물가 상승과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한 일부의 우려에도 3차 양적 완화를 강행한 것은 빠르게 회복되지 않는 경기와 여전히 8%를 웃돌고 있는 실업률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은 “수개월간의 실망스러운 고용 지표와 경제성장 지표로 중앙은행이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며 “이번 조치는 경제 회복을 위한 시동 걸기”라고 규정했다.

미국 실업률은 8월 말 현재 8.1%로 43개월 연속 8%를 웃돌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다.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갖고 있는 중앙은행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경기 부양의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3차 양적 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경기 부양 효과는 미미한 반면 물가 상승, 통화 전쟁 등과 같은 부작용만 나타날 것이란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단기적으로 3차 양적 완화는 은행 고객들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며 “QE3 발표 이후 MBS 금리가 소폭 떨어졌지만 이 중 극히 일부만이 대출 고객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YONHAP PHOTO-0174> U.S. Federal Reserve Chairman Ben Bernanke delivers remarks about a significant shift in the direction of U.S. monetary policy at the Federal Reserve in Washington September 13, 2012. The Federal Reserve launched another aggressive stimulus program on Thursday, saying it will buy $40 billion of mortgage-related debt per month until the outlook for jobs improves substantially as long as inflation remains contained. REUTERS/Jonathan Ernst   (UNITED STATES - Tags: POLITICS BUSINESS)/2012-09-14 05:49:42/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U.S. Federal Reserve Chairman Ben Bernanke delivers remarks about a significant shift in the direction of U.S. monetary policy at the Federal Reserve in Washington September 13, 2012. The Federal Reserve launched another aggressive stimulus program on Thursday, saying it will buy $40 billion of mortgage-related debt per month until the outlook for jobs improves substantially as long as inflation remains contained. REUTERS/Jonathan Ernst (UNITED STATES - Tags: POLITICS BUSINESS)/2012-09-14 05:49:42/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인플레 우려도 커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금을 비롯한 인플레 회피용 상품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각국 중앙은행들도 물가 상승에 대비해 금 보유량을 늘리고 있다.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들은 지난 2분기에 총 157.5톤의 금을 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 분기에 비해 63%, 전년 같은 분기에 비해서는 137.9%나 늘어난 규모다.

한국·일본·인도네시아 등 수출 주도형 이머징 마켓은 QE3로 자국의 통화가치가 상승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달러를 풀면 달러 가치가 그만큼 하락하고 상대국 통화가치는 상승한다. 신흥국 통화가치가 높아지면 자국의 수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또 고수익을 좇아 이머징 마켓으로 유입되는 달러 뭉칫돈이 일시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면 외환시장이 출렁거리는 것도 부담이다. 각국의 통화 당국이 환율 방어에 고심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행은 9월 20일 10조 엔 규모의 추가 자산 매입을 발표했다. 달러화에 대한 엔고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브라질의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미국의 경기 부양 조치가 신흥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Fed의 경기 부양책을 비난했다. 그는 “Fed의 QE3가 브라질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QE3가 미국에서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수단이 되겠지만 신흥국에 많은 문제를 안겨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월가의 비관론자인 마크 파버는 “유럽과 중국 중앙은행 등도 자국의 통화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돈을 찍어내면서 세계경제가 (물가 상승 등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냉키의 ‘승부수’가 미국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 아니면 인플레이션과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에 역풍만 몰고 올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워싱턴(미국)=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


이 기사는 2012년 9월 24일 발행한 한경비즈니스 제 878·879 추석 합본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