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63) 국민연금 이사장은 미시간주립대 교수와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국제금융 전문가다. 1998년 경제부총리 특보로 외환 위기 해법을 조언했으며 금융 구조조정으로 출범한 우리금융 총괄 부회장에 올라 뉴욕 증시 상장을 성사시켰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초대 금융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글로벌 금융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 이런 화려한 이력 때문에 전 이사장은 2009년 취임 초부터 국민연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적임자로 꼽혔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해외 투자 확대 등 규모에 걸맞은 자산 운용 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3년이 지난 지금 전 이사장에 대한 기대는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국민연금은 지난 8월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을 제치고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올라섰다. 전 이사장에게 창립 25주년을 맞은 국민연금공단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국민연금 투자 성적표] 인터뷰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유럽 위기 장기화…‘위기 이후’ 보며 투자”"
그동안 국민연금 규모가 몰라보게 성장했습니다.

성숙기에 있는 선진 연·기금과 달리 국민연금은 성장 중에 있는 젊은 연·기금입니다. 8월 말 국민연금 자산이 380조 원을 넘어 6월 말 기준 세계 3위를 기록했던 네덜란드 ABP(378조 원)를 이미 추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요. 2020년에는 적립 기금이 1000조 원에 이를 겁니다.

기금 규모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물론 주요 연·기금 중 최근 5년 평균 수익률이 1위를 차지할 만큼 운용 성과도 뛰어나 규모와 역량을 모두 갖춘 글로벌 연·기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투자 포트폴리오의 글로벌 분산을 위해 확대하고 있는 해외 투자에서 HSBC 타워 투자 등 대규모 딜을 성공적으로 클로징하고 안정적인 투자 성과를 내 글로벌 위상이 더욱 높아졌어요. 이는 다시 유망 투자 정보 확보나 세계적인 기관투자가와 공동투자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올해 운영 수익률을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구체적인 수익률 전망치를 말씀드리는 건 어렵습니다.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수익금 잠정치가 15조8000억 원이었어요. 작년 연간 수익금 7조7000억 원을 벌써 2배 이상 앞지른 거죠. 앞으로 글로벌 경제가 회복되고 금융시장도 안정된다면 운용 성과는 더욱 좋아질 거예요.

수익률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글로벌 경제와 금유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면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리스크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어요. 긴 안목에서 장기적으로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발굴하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고요.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커지면서 경영권 간섭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먼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투자 기업의 주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국민의 자산을 떠맡은 수탁자로서의 의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재무적 투자자로서 경제적 관점에 따라 국민연금과 기업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요. 의결권 행사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됩니다.

아직도 기금 고갈을 우려하는 국민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국민연금은 두 차례의 제도 개선을 통해 2060년까지 기금이 유지되도록 설계됐어요. 선진 외국의 연금제도와 비교해 재정적으로 매우 건실한 상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 문제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에 대비해 우선 5년에 한 번씩 재정 계산을 실시하지요. 국민연금 장기 재정을 점검하고 사회적 합의를 반영해 제도 개선을 모색하는 거죠. 내년에도 3차 재정 계산이 예정돼 있어요. 또 다른 방법은 기금 운용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겁니다.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는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은 개인적으로는 장수 리스크에 대비하고 사회적으로는 세대 간 연대를 바탕으로 고령화에 대처하는 필수적인 사회 안전망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요.

취임 후 해외 투자를 강조하셨는데, 그동안의 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외 투자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계속 커지는 기금 규모에 비해 국내 시장이 너무 협소하거든요. 효율적인 위험 분산과 장기 수익 기반 확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해외 투자 확대가 필요해요.

해외 우량 자산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2008년 말 16조 원에 불과했던 해외 투자가 2012년 7월 57조2000억 원으로 늘어났어요.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게 아니라 투자 정보력이나 네트워크·전문성 등도 몰라보게 강화됐어요. 그게 작년 해외 대체 투자에서 12.3%라는 놀라운 수익률로 나타났죠.

최근 기금 운용 환경은 어떻습니까.

유럽 재정 위기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당분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요. 국민연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도전적인 상황이지만 장기적이고 냉철한 투자 관점을 견지해 나갈 거예요. 위험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동시에 ‘위기 이후’를 보면서 중·장기 자산 배분 계획을 꾸준히 이행해 나갈 겁니다.

국민연금 급여 서비스에서 올해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연금 수급자의 수급권 보호와 수급자 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 개선을 추진했어요. 지난 5월부터 실시한 노후 긴급 자금 대부 사업인 국민연금 실버론은 단순 급여 지급을 넘어 복지 서비스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준 사례죠.

금융 사각지대에 놓인 60세 이상 연금 수급자에게 낮은 금리로 긴급 생활 안정 자금을 빌려줌으로써 ‘따뜻한 금융’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5월부터 매월 말일 지급하던 연금을 25일로 앞당겼어요. 수급자들이 좀 더 연금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거죠.

국민연금이 최고의 ‘재테크’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국민연금 활용법은 무엇입니까.

국민연금은 고령화 시대의 일차적인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는 공적 보험이죠. 이를 재테크 수단으로 표현하거나 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노후에 받는 연금액은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와 납부 기간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가입 기간이 없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국민연금에 가입해 10년을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가입 기간을 늘리기 위해 추납·반납·선납 등 다양한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좋아요. 한 사람의 연금만으로는 부부가 노후에 경제적으로 적정한 생황을 유지하는 데 부족하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이사장으로서 남은 임기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취임 이후 국민연금 신뢰 제고, 기금 규모에 맞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 생산적 조직 문화 정착 등 3개 과제를 제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이 3개 과제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국민연금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높아져 가입자 2000만 명 시대를 열었고 연금 수급자도 330만 명 시대를 맞았어요. 투자 다변화를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뤄 세계 3대 연·기금으로 도약했고요. 작년 말에는 3년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성과연봉제를 확대하는 노사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죠. 남은 재임 기간 동안 3개 과제를 잘 마무리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국민연금 투자 성적표] 인터뷰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유럽 위기 장기화…‘위기 이후’ 보며 투자”"
약력:1949년 서울 출생. 7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81년 미 인디애나대 경제학 박사. 82년 미시간주립대 경영대 교수. 86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98년 경제부총리 특보. 2000년 국제금융센터 소장. 2001년 우리금융 총괄부회장. 2004년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2008년 포스코 이사회 의장. 2008년 금융위원회 위원장. 2009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