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인터뷰 제의를 받을 때마다 늘 신기해요. 다들 뭐가 그리 궁금한지, 뭐가 알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거든요.”(웃음) 하지만 그 자신의 말과 달리 사실 그의 일상과 삶은 독특하고, 열정적이고, 누구나 따라 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를 잃고 그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매혹 당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주목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마다가스카르건 에티오피아건 연평도 해변이건 그의 사진에 찍힌 장소들이, 그의 사진에 찍힌 그곳의 사람들이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정면을 빤히 응시하는 아프리카 아이의 새까만 눈동자가, 짙게 겹쳐진 주름살에도 불구하고 온화한 웃음을 머금은 노인의 입가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처음 갔을 때부터 전혀 낯설지 않았어요. 7년 전, 제 나이 마흔네 살 때 처음 아프리카에 갔는데요, 비행기에서 내린 그 순간부터 아프리카는 제겐 너무나 편하고 익숙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남은 삶을 보내라고 해도 기꺼이 그럴 수 있을 정도였죠.
그 익숙함과 반가움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 보름 만에 다시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요.” 전 세계 100여 개국을 누비며 다양한 여행,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왔음에도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아프리카 전문 사진작가’인 이유는 이처럼 그가 아프리카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무엇이 나를 매료시켰느냐고요? 바로 사람들이죠. 밝고, 긍정적이고, 조금만 마음을 열면 먼저 다가오는 아프리카 사람들이야말로 제가 아프리카를 즐겨 찾는 이유예요.”
처음 아프리카에 갔을 때 그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뒤늦게 사진의 매력에 빠졌던 그다. 서른 살부터 회사일 하는 틈틈이 사진을 공부하고 서른다섯의 나이에 잡지사를 그만둔 후 사진을 찍으며 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진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웃음) 프리랜서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돈이 생기면 카메라를 사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살았죠.”
돈이 없으면 돈을 벌고, 돈이 생기면 훌쩍 여행을 떠나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처음 아프리카에 갔을 때도 신용불량자였을 정도로 생활에 쪼들리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많은 힘을 얻었죠. 특히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보며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신미식 작가가 사진과 상관없이 거의 매년 아프리카를 찾는 것도, 마다가스카르에 도서관을 세우고우물을 파고 신발을 주는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치게 된 것도 아프리카야말로 자신을 반기는 땅이자 반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11월에 아프리카에 갈 예정이에요. 사진 촬영 때문이 아니라 매트리스를 나눠주기 위해서요.” 그의 뜻에 동참하고 후원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그는 200개의 매트리스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아프리카, 어머니 그리고 사진
하지만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그의 사진 인생의 획을 그을 중요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바로 9월 12일부터 열릴 사진전 ‘삶의 도구 전(展)’이다. “저를 아는, 제 작품을 아는 사람들은 이번 사진들을 보고 많이 놀라더라고요.
기존에 봐왔던 제 사진들과는 그만큼 많이 다르거든요.” 이번에 전시될 사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의 손과 발 그리고 주름들을 담은 사진들이다. 전시회를 위해 따로 찍기도 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그가 찍어 온 사진 속에서 고르고 고른 사진들도 있다.
“삶의 도구란 건 바로 자식들을 위해 사용된 부모님의 손과 발, 주름들을 말해요. 자식의 안위를 위해 사용된 삶의 흔적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과 발이 바로 우리네 부모님의 손과 발일 테니까요.” 신 작가 개인적으로도 이번 전시회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회는 그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엄마’에 대한 지난 기억들을 찾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13남매를 낳고 키운 그의 어머니는 그가 지금과 같은 사진들을 찍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고 실마리를 준 위대한 존재다.
“1997년에 돌아가셨는데, 마음으로는 한 번도 엄마를 떠나보낸 적이 없어요. 제가 가장 힘들 때 돌아가셔서 아쉬움이 더 커요.”
지금까지는 자신에게 보인 길 위의 풍경을 찍은 것과 달리 이번에는 순수하게 자신이 찍고 싶은, 표현하고 싶은 사진들을 찍고 골라 담았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사진을 찍었는데요, 결국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사진을 찍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가장 찍고 싶었던 사진이 뭔지, 이제야 그걸 알 것 같아요.” 그에게는 정해진 목표가 있다. 죽기 전에 35권의 책을 쓰고, 65세까지 세계를 누비며 사진을 찍고 싶다는 목표다. “현재까지는 21권의 책을 냈어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1년에 대여섯 권도 써내니까 책을 내는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에게 책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은 그리 어렵고 힘든 작업이 아니다. 오랫동안 편집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만큼 스스로 자신의 책을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 쓰는 일은 디자인이나 사진을 찍기 훨씬 이전부터 그의 특기라면 특기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또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깨달음들을 블로깅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 글들을 모아 사진들과 함께 책으로 펼쳐내곤 한다.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나눔 활동을 하고, 책을 쓰느라 바쁠 법도 하련만 그의 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갤러리 카페 마다가스카르를 운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인들과 조인트 콘서트도 열고 북파티, 강연 파티, 특강 등을 통해 대중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한다.
누구를 가르치기보다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닐 힘이 있을 때까지 언제나 사진 찍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신미식 작가. 그렇다면 그의 인생 최고의 한 컷은 무엇일까. “아직은 없어요. 지금도 그 베스트 컷을 찾아가는 도중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 당장 가장 좋은 사진인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한 컷이 나타날 수 있거든요. 사진가들에게 베스트 컷은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내려놓았을 때 알 수 있는 게 아닐까요.”
“ 마다가스카르에 도서관을 세우고 우물을 파고 신발을 주는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치게 된 것도 아프리카야말로 자신을 반기는 땅이자 반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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