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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6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었던 제주항공과 한성항공 등 이른바 저비용 항공사(LCC:Low Cost Carrier)의 출범으로 촉발됐던 동북아 항공 시장의 변화가 2012년에 들어서면서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동북아 지역의 LCC 출범과 이에 따른 공세적 영역 확대는 철옹성 같았던 기존 항공사 위주의 공급자 중심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에 따른 소비자 중심 시장으로 항공사 시장이 재편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장 상황은 기존 항공사의 수비, 기존 시장 보호라는 측면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던 기존 대형 항공사들이 LCC의 공세적인 시장 확대에 맞서 자신의 영역을 방어하려는 수단으로 새로운 LCC를 시장에 진입시키는 양상이다.
TO GO WITH STORY "Asia-airport-Singapore-Malaysia-terminal,sched"
Passengers wait in line on the tarmac to board an Air Asia Airbus A320 at the Low-Cost Carrier Terminal at the Kuala Lumpur International Airport in Sepang, 14 April 2006. The chairs are plastic, the facilities are few and some passengers are grumbling, but budget airlines are hailing new no-frills terminals in Singapore and Malaysia as a cost-saving success. In a spirit of not-so-friendly rivalry, the neighbouring nations launched their low-cost terminals last month in a race to completion which saw the doors flung open just a few days apart.   AFP PHOTO/TENGKU BAHAR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TO GO WITH STORY "Asia-airport-Singapore-Malaysia-terminal,sched" Passengers wait in line on the tarmac to board an Air Asia Airbus A320 at the Low-Cost Carrier Terminal at the Kuala Lumpur International Airport in Sepang, 14 April 2006. The chairs are plastic, the facilities are few and some passengers are grumbling, but budget airlines are hailing new no-frills terminals in Singapore and Malaysia as a cost-saving success. In a spirit of not-so-friendly rivalry, the neighbouring nations launched their low-cost terminals last month in a race to completion which saw the doors flung open just a few days apart. AFP PHOTO/TENGKU BAHAR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LCC 출현과 성장은 이 지역 항공 시장에서의 LCC 분담률을 단기간에 급속히 확대한 주요 원인이다. 2012년 8월 현재 공급석을 기준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LCC 분담률은 약 9.7%로 2011년 6.9%보다 약 3% 포인트 증가했다.

매년 1% 포인트 안팎의 성장세를 기록하다가 올 들어 급성장한 배경에는 한국 LCC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일본과 중국 항공 시장에서의 LCC 출범과 시장 확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피치항공과 에어아시아재팬 등 본격적인 LCC가 출범하기 이전인 2011년만 해도 일본은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를 제외한 지역 항공사의 국내선 분담률이 9%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는 22%로 2배 이상 늘어났으며 국제선 역시 지난해 2.6%에서 올해 4%로 성장했다. 중국 역시 춘추항공이 지난해 일본 노선에 신규 취항하는 등 국내선을 벗어나 국제선으로 시장을 급속하게 확대하고 있다.

최근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독립 항공사 설립이 아닌 기존 항공사가 중심이 돼 자회사 형태 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항공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LCC의 성장에 따른 기존 항공사들의 성장 부진과 비용 상승,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지책에서 시작됐다.

LCC의 성장으로 중·단거리 노선에서 프리미엄 고객이 감소했으며 유가 상승 등으로 대형 항공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자 항공사들은 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LCC를 모델로 하는 자회사 설립에 너도나도 나서는 셈이다.
격변의 동북아 항공 시장, 최종 승자는 "모회사 우산 속 신생 LCC 속속 진입"
동북아 지역 LCC 분담률 급성장세

이처럼 자회사 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항공사 설립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말레이시아 국적의 에어아시아를 들 수 있다. 이미 에어아시아타이·에어아시아인도네시아에 이어 지난 8월 에어아시아재팬을 취항했으며 곧 에어아시아싱가포르를 취항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멀티 허브 전략을 통해 아시아권에서 시장 지배력을 키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에어아시아의 공세적 시장 확대는 향후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아시아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과거 2000년을 전후해 유럽에서 라이언에어와 이지젯 등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무렵에 이미 나타났던 현상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브리티시에어는 1998년 자회사 GO를 설립해 런던 스탠스테드공항을 기점으로 취항했지만 모회사와의 노선 중복 등의 요인으로 경쟁사인 이지젯에 2002년 매각됐다.

KLM 역시 2000년 자회사 BUZZ를 취항했지만 저비용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해 결국 2004년 라이언에어에 매각됐다. 최근에는 브리티시에어와 이베리아항공의 모회사인 IAG가 이베리아익스프레스라는 LCC를 취항했다.

GO의 매각과 관련해서는 모회사와 노선 중복에 따른 불가피한 매각으로 실패한 항공사라는 평가와 함께 기업 가치가 높았던 시점에 매각한 점을 들어 오히려 성공적이라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하지만 모회사인 브리티시에어와의 노선 중복이 매각의 중요 요인이 됐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BUZZ도 기존 모회사와의 노선 중복과 저비용 구조를 완성하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된 점을 감안할 때 기존 항공사의 운항 노하우와 인프라 등에 의지해 취항하면 저원가 구조를 통한 저운임 실현이라는 LCC 사업 모델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권에서 새롭게 LCC가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의 시장 확대 전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보잉과 함께 세계 최대 여객기 제작사인 에어버스는 현재 28% 수준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여객 점유율이 2015년까지 32%로 늘어나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현재 전 세계 평균인 23% 수준의 LCC 비중도 2030년까지 34%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신생 항공사는 향후 고속 성장이 예상되는 동북아시아 시장 진출에 대부분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한국 시장은 중국과 일본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시장 가치가 풍부하며 일본은 현재 인근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항공 운임 수준이 높아 시장 개척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중국 시장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에 발맞춰 항공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은 항공 자유화 또는 취항 횟수 확대에 필요한 사전 합의가 필요하지만 신규 공항 개항 등 LCC 신규 취항 여건이 날로 성숙해지고 있다.

이는 기존 항공사는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의 선두 주자인 제주항공을 비롯한 우리나라 LCC 시장이 상당 부분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는 예측으로 이어진다. 에어아시아의 저비용 구조를 토대로 설립된 프랜차이즈 항공사와 초저가를 지향하는 중국계 LCC의 시장 진입이 본격화되면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항공 시장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자회사형 또는 합작법인 형식의 신생 LCC 성패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과거 유럽의 GO 에어와 BUZZ의 사례처럼 모회사와의 노선 중복이나 새로운 사업 모델을 기존의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예측할 수 있는 시장의 변화는 통상 4~5시간 이내의 노선을 중심으로 하는 LCC와 중·장거리 노선에 집중하는 기존 항공사의 구도에서 예상해 볼 수 있다.

최근 자회사 진에어의 지분을 100% 보유한 대한항공이 A380 등 초대형 항공기 도입이나 아프리카 케냐에 취항하며 장거리 노선을 강화하는 것도 이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또 타이거항공 역시 중·장거리 노선에서 프리미엄 항공사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단거리 노선에서는 지난 7월부터 자회사인 타이스마일을 취항했다.
격변의 동북아 항공 시장, 최종 승자는 "모회사 우산 속 신생 LCC 속속 진입"
원가·가격 경쟁력 확보 필수

격변기의 항공 시장에서 우리나라 LCC들이 일본 중국 동남아 등의 글로벌 초저가 LCC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가 및 가격 경쟁력 확보가 필수다. 항공사 스스로 기단과 노선 등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해 원가절감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의 LCC 전용 터미널을 서둘러 마련하는 등 LCC의 원가 경쟁력을 높여주는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 등이 필요하다.

일각에선 보다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진에어와 에어부산 등이 다른 독립 LCC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의 편협한 방식에서 벗어나 공정 경쟁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국내선 시장을 자회사에 이관하거나 자회사를 내세워 수급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기존 항공사들이 국제 노선에 주력하는 방편으로 활용하는 편법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또한 모회사가 존재하는 자회사형 LCC의 의사결정 한계 때문에 모회사의 정책 방향에 무조건 동조하는 행위를 피해야 글로벌 LCC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