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복도에 있습니다. 자물쇠 구멍으로 한 방을 들여다보려고 애씁니다. 숨죽이고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이때 복도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서 내가 남의 방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당황한 당신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됩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바로 ‘부끄러움’이죠. 그런데 왜 부끄러울까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 관찰 대상이 되고 만 것이 부끄러운 것이죠.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저 보이는 대상이 된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CEO 리더십] 실천하는 지성 장 폴 사르트르 "마음을 얻으려면 주인공으로 대접하라"
비밀 누설자 색출 작업이 실패한 이유

이런 문제를 잘 설명해 준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존재는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즉자적 존재(卽自的 存在), 또 하나는 대자적 존재(對自的 存在)입니다. 즉자적 존재는 쉽게 말해 무생물 같은 존재입니다. 의식할 수 없고 의식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도 없고 삶의 환경에 대해 자유를 행사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 대자적 존재는 의식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대자적 존재입니다. 자신을 대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존재니까요.

그래서 훔쳐보던 당신은, 본래 대자적 존재가 타인의 관찰의 대상이 되어 즉자적 존재로 전락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낀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즉자적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을 즉자적으로 대해서도 안 됩니다.

한 미국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인수·합병(M&A) 관련 논의를 하는 미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회의 내용이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겁니다. 회장은 진노했습니다. 그렇게 민감한 사안을 신문 기자에게 흘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색출하기로 결심합니다.

회장은 사립 탐정을 고용합니다. 그 사립 탐정은 중역들을 미행하고 e메일을 검색하고 도청 장치를 달고 운전사들을 첩자로 심어 놓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찾는 데는 실패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회장이 사립 탐정을 고용해 중역들을 비밀리에 조사했다는 사실이 미디어에 포착되고 말죠. IT 업계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물론 회사 기밀을 외부에 누출한 중역이 잘못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회사를 배신하고 조직에 해를 끼친 것은 당연히 비난 받아 마땅하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 색출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런 방법을 썼더라면 어땠을까요. “여러분,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극도로 민감한 사안들이 계속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입니다. 사안의 민감성도 그렇지만 회의 참석자를 우리 스스로 믿지 못하는 불신의 상태로 빠뜨리는 게 더 심각합니다. 여러분도 모두 공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이런 현상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 같이 논의해 봤으면 합니다.”

이 방법이 훨씬 더 나은 이유는 모든 사람들을 즉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대자적 존재로 인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주체적으로 대우해 주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할 것에 모두 동의를 구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데 모두 동참하도록 만드는 것은 중역들을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대우해 주는 것입니다. 공동으로 논의한다는 자체가 벌써 해결책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남의 방을 엿보다가 들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들키기 전에 이미 스스로에게 들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에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늘 자신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공자님께서 ‘논어’에서 말씀하신 신독(愼獨), 즉 “혼자 있을 때 조심하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남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움찔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마구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마구 행동하는 것을 자신은 보고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남에게 마구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존심도 자부심도 자신감도 없는 이유입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적용할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할 때 지켜야 할 법칙 하나가 있습니다. 규칙의 적용 대상이 되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은 보안을 요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직원들에게 전자태그(RFID) 카드를 나눠주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기 힘들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때 주지해야 할 것은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감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주지하고 그에 대한 동의를 계속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 직원이 자신이 ‘즉자적 존재’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순간 회사에 대한 일말의 충성심조차 날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직원들에게 묻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리더가 “직원들이 반드시 이렇게 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 이유를 설명한 다음 대안을 직접 들어보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직원들이 인간으로서 대우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사르트르가 죽고 난 후 장례식에는 무려 5만 명의 국민들이 운구 행렬을 따랐습니다. 정치가도 연예인도 아니었고 난해하기 그지없는 ‘존재와 무’, ‘구토’와 같은 책을 쓴 철학자였습니다. 그런데도 프랑스 국민들은 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습니다.



"직원이 자신이 '즉자적 존재'로 전락했다고 느끼는 순간 회사에 대한 일말의 충성심조차 날아갈 수 있습니다."



장례식에 프랑스 시민 5만 명 참가

왜일까요. 그는 평생 프랑스 공산당과 함께 노동자의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고 모택동주의자들의 전단을 길거리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단지 마오이즘을 찬양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한번쯤 들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체 게바라를 면담하기 위해 쿠바까지 찾아갈 정도도 좌경향의 철학자였습니다만 소련이 지상낙원도 아니고 인간의 억압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후 현실에서 사회주의가 가진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용감하고 진실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프랑스 국민들이 존경을 표한 것입니다.
[CEO 리더십] 실천하는 지성 장 폴 사르트르 "마음을 얻으려면 주인공으로 대접하라"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가 남긴 이 말은 여러분도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를 보세요. 의자는 즉자적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없지요.

‘앉는다’는 부여된 목적 하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상에 먼저 존재하고 난 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 나가는 자유를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지지를 보낸 철학자에게서 배울 교훈은 바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자유를 존중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모두가 자유롭지 않으면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