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위기인 것 같다. 사람들 말 속에 영어와 한자가 한글과 뒤섞여 그 뜻이 모호하고 어지러울 때가 많다.


“설탕은 저기 있으십니다.” 1만5000개가 넘는 커피 전문점에서 종업원들이 안내하는 말이다. 설탕에 존대를 하는 세상이다. 손님에게 더 공손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생각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어색하다. 텔레비전 수다 프로그램에 나온 탤런트가 “저희 어머님께서 여행을 다녀오셨는데요…”라고 한다. 누구는 “저희 부친께서 젊으셨을 때,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남들 앞에서는 자신의 가족을 존칭어로 부르는 게 아니다. 그냥 “우리 어머니가요…”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친근감이 느껴지는 말투다. 혹시 어머니를 “엄마”라고 집에서 부른다면 “우리 엄마가요”라는 것이 오히려 더 공손하게 들린다.

직장에서도 사장 앞에서 자신 부서의 부장을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사장에 대한 실례이고 “저희 부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장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다. 자기 회사 임원회의 때 참석하지도 않은 상대방 회사의 상무를 “김○○ 상무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자기 직장 상사가 듣기에 괘씸하게 느껴진다. “너만 공손한 놈이냐?” 한다.

우리말이 위기인 것 같다. 사람들 말 속에 영어와 한자가 한글과 뒤섞여 그 뜻이 모호하고 어지러울 때가 많다.

우스갯소리로 물이 영어로 “셀프”라고 한다. “커피 테이크아웃 두 잔 주세요.”, “리필이 되나요?” 이제는 모든 사람이 쓰는 단어가 되었다. 혹시 “갖고 가게 커피 두 잔 주세요”, “공짜로 다시 채워 주나요?” 이렇게 말하면 잠시라도 두 사람 사이가 즐겁지 않을까?

자동차 내비게이션에서 “잠시 후 좌회전하세요”, “삼백 미터 앞에서 우회전 후 5킬로미터 이상 직진하는 경로입니다”라고 한다. 그 대신 “여기서 왼쪽으로 가세요”, “삼백 미터 앞에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5킬로미터 이상 곧장 가는 길입니다”라고 하면 어떨까. 꼭 그렇게 한자를 써야 하는 것일까. 한자를 쓰면 더 정중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은 아직도 한자를 써야 ‘유식한 사람’이 된다고 인식하기 때문일까. 종로구청 앞에 ‘구민과 공존하는 종로구청’이라는 선전 문구가 있다. ‘종로구 주민들 모두를 도와주는 종로구청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실감나는 것 같은데 말이다. 대부분의 한자는 추상적인 뜻을 갖고 있다. 그 뜻이 모호하고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우리말은 행위적인 뜻이 많다. 쉽게 그 뜻을 알 수 있고 누구에게나 같은 뜻을 전달하는 좋은 말이 한글이다. 그리고 다행히 ‘한글’은 한글이다.
[CEO 에세이] ‘설탕은 저기 있으십니다’
공직자들이 국민에게 “…을 당부 드립니다”라고 한다. 당부(當付)라니? 당부는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단단히 부탁”한다는 뜻이다. 그 말을 흉내 내어 신입 사원이 선배에게 “…을 당부합니다”라고 한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말해야 한다. 남들 말 흉내 내는 사원에게 무슨 창의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중부 내륙 고속도로에서인가 ‘굴길’이라는 안내 간판을 본 적이 있다. “터널이 아니고 굴길이라고 써 놓았네. 굴길? 맞아, 굴길이지.” 우리가 쓰는 한자도 물론 한글이다. 사업과 문화 영역에서 국경과 민족의 굴레가 벗겨지고 있는 세상이다. 외래어도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쓰는 한자나 영어의 원래 뜻을 사전에서 찾아 보고 제대로 사용하고 들어야 사람들끼리의 마음이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