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투자 활성화와 지방분권화를 위해 시작된 ‘기업도시’가 표류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도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일본의 도요타시처럼 지역은 물론 한 국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정도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도시로 선정된 여섯 곳은 이제야 기반 공사가 마무리된 충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 놓여 있는 ‘한국형 기업도시’의 현황과 성공 방안을 찾아봤다.
기업도시 누가 죽였나
지난 7월 6일 충주 기업도시의 준공식이 열렸다. 2005년 선정된 여섯 곳의 기업도시 중 처음으로 기반 시설 조성이 결실을 본 것이다. 충주 기업도시 준공식에는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입주 기업 대표자, 지역 주민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충주 기업도시의 기반 시설 조성은 2008년 착공 후 4년이 걸렸다. 충북 충주 주덕읍과 대소원면·가금면 일대 701만㎡에 조성될 충주 기업도시 기반 시설 조성에는 국비와 지방비 370억 원, 민간 자본 5285억 원 등 모두 5655억 원이 투입됐다. 이날 준공식을 가진 1차 기반 조성 공사에 이어 2020년까지 공장·연구소·아파트·골프장 등이 건설되면 인구 2만여 명의 ‘자족형 복합도시’로 태어날 전망이다.

기반 시설 조성이 마무리되면서 산업단지와 주거·상업·지원 시설 용지 등의 토지 분양도 활기를 띠고 있다. 전체 공급 용지 349만㎡ 가운데 60.5%가 분양됐다. (주)롯데 등 9개 기업은 산업용지에 공장을 짓고 포스코건설 등 4개 업체는 기술연구소를 각각 건립할 계획이다. 코오롱생명과학과 HL그린파워 공장은 연말 준공을 앞두고 있고 롯데주류도 맥주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충주 기업도시는 앞으로 3만1000여 명의 고용 효과와 함께 3조1000억 원의 생산 효과가 기대돼 중부 내륙권의 새로운 성장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입주 기업 유치가 속도를 내면서 주거·상업용지 매각도 탄력이 붙고 있다. 단독주택 용지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연초에 이미 447필지 전량이 팔렸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짓는 땅(10필지)도 절반이 매각됐다. 남아 있는 상업용지와 지원 시설 용지도 매입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조만간 분양이 완료될 것이라는 게 충주 기업도시 측의 설명이다.
기업도시 누가 죽였나
문제투성이…적극적 투자 유치 필요

반면 2005년 충주 기업도시와 함께 지정된 6개 지역(충주, 원주, 무안, 태안, 영암·해남, 무주)은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기업도시는 산업 입지와 경제활동을 위해 민간 기업이 산업·연구·관광·레저·업무 등의 주된 기능과 주거·교육·의료·문화 등의 자족적 복합 기능을 고루 갖추도록 커뮤니티 형태로 개발하는 도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4월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을 제정, 민간 기업이 산업·연구·관광·레저 분야 등에 걸쳐 계획적·주도적으로 자족적인 도시를 개발·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와 각종 제도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기업도시는 충주·원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업이 무산되거나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실제로 이미 무주 기업도시는 작년 초 사업을 접었다. 또 무안 기업도시는 지난 2월 투자자인 중국 측이 사업을 포기해 현재 특수목적법인(SPC) 청산이 진행 중이다. 영암·해남 기업도시는 보상에 따른 갈등으로 사업 착수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 지연으로 용지 분양도 자꾸만 늦어지고 있다. 현재 충주 및 원주 기업도시 정도만 토지 분양을 진행 중이다. 아파트 분양은 일정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 유치가 목표지만 경기 침체로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지자체와 협의해 기업도시별 특성을 감안해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도시 누가 죽였나
전문가들은 기업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자유구역처럼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세금 면제, 부담금 감면, 인프라 지원 등에 나서는 노력도 필요하다. 실제로 정부 역시 지지부진한 기업도시 사업을 살리기 위해 지난 7월 31일 ‘기업도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점은 대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국내 자본 가운데 대기업의 투자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기업의 투자가 해외 자본 유치와 중소기업 창업을 유발하는 핵심 고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성공한 기업도시로 평가받는 충남 아산 탕정(삼성)이나 경기 파주(LG) 등은 대기업의 역할이 컸다. 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도시인 일본의 도요타시 역시 도요타가 이끌었다. 결국 기업도시의 향배는 공공 주도가 아니라 철저한 민간 자율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여기서 공공의 역할은 지역 내 기업 관련 시설이 얼마나 신속하게 들어서게 하느냐, 또 얼마나 자율권을 보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