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 삐걱삐걱’…나눠주기 ‘ 선심’

기업도시 도입 논의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 목표 중 하나는 ‘국가 균형 발전’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민간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기업도시’라는 당근을 내놓았다. 즉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큰 틀 속에서 기업의 투자를 이끌고 지방 발전을 견인하겠다는 것이다. 대형 개발 사업으로 건설 경기를 살리고 내수 경기도 진작시키겠다는 뜻도 있었다. 이에 따라 2004년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도시특별법안을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에 공식 제출하고 국토해양부가 기업도시과를 신설하면서 가속화됐다.

논의의 시작 단계에서 보듯 당시의 기업도시 정책은 상당 부분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추진됐다. 현재 비교적 성공한 기업도시로 평가받는 아산이나 파주와 같이 ‘기업의 필요→지방정부의 지원→정부의 지원’과 같은 순서가 아니라 ‘정부의 권유→기업의 참여→지자체의 지원’과 같은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즉 시작부터 어느 정도 ‘나눠주기 식’의 선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기업도시에 대한 논의는 2005년이 돼서야 본격화됐다. 기업도시 선정은 2005년 5월쯤 이뤄졌는데 정부는 이미 영암·해남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 1호로 내정하고 기업들만 모집하는 형태로 일을 추진했다. 당시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상 영암과 해남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개발하겠다고 미리 발표해 버린 것. 기업도시의 형태 네 가지(산업교역형·관광레저형·지식기반형·혁신거점형) 중 관광 레저형은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가 아닌 문화관광부가 사업자 선정을 주관하며 주무 부처 간의 갈등 혹은 책임 떠넘기기가 시작됐다.

또 당시 기업도시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적어 정부는 시행자 사업 신청 자격 기준으로 재무와 경영 상태에서 5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했는데 이를 3가지 정도만 충족하더라도 사업자 선정이 가능 하도록 했다. 이후 경영난에 빠진 대한전선·벽산건설·경남기업 등이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다.
<YONHAP PHOTO-0337> 6일 준공하는 충주 기업도시

(충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충북 북부권의 산업 지도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충주 기업도시가 부지 조성 공사를 마치고 오는 6일 준공한다. 사진은 기업도시내에 주거단지 모습. 2012.7.4
nsh@yna.co.kr/2012-07-04 07:43:14/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6일 준공하는 충주 기업도시 (충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충북 북부권의 산업 지도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충주 기업도시가 부지 조성 공사를 마치고 오는 6일 준공한다. 사진은 기업도시내에 주거단지 모습. 2012.7.4 nsh@yna.co.kr/2012-07-04 07:43:14/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7곳 지원해 6곳 선정

선정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당시 기업도시 사업에 참여를 신청한 지자체는 모두 7개였다. 전남 무안, 충북 충주, 강원 원주, 충남 태안, 전남 영암·해남, 전북 무주, 경남 사천 등이다. 즉 훗날 사업자로 선정된 곳이 모두 여섯 곳이었으니 경남 사천 단 한 곳만 사업에서 탈락한 것이다. 사업 선정은 단 두 달 만에 이뤄졌다. 웬만한 국토 개발 사업의 선정 과정이 적어도 대여섯 달은 걸리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지나치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애초 일곱 군데의 후보 중에 국토해양부에 의해 2005년 7월 8일 1차로 선정된 곳은 전남 무안과 충북 충주, 강원 원주, 전북 무주 등 네 곳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인 8월 25일 충남 태안과 전남 해남·영암 지역이 추가로 선정된다. 한 달 만에 결정이 바뀐 이유는 너무도 단순했다. 태안은 사업성이 높지만 환경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돼 탈락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환경문제는 개선 가능하다’고 결정이 바뀌었다. 해남·영암도 비슷하다. ‘재검토 결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선정 이유의 전부였다. 이처럼 선정된 기업도시가 훗날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당시부터 지적됐다. 즉 정부 및 지자체들이 낸 발표 자료에는 사업 투자비 정도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이나 방안 등이 모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정 후 7년이 지난 2012년 기업도시로 선정된 지역들의 변화는 별다른 게 없다. 오히려 기업도시 선정으로 기대감에 부풀었던 현지 주민들은 각종 개발 제한 규제로 불편만이 늘었을 뿐이다.
<사진->이총리,기업도시위원회 1차 회의 주재.
     이해찬 총리가 18일 오전 정부 중앙청사에서 제1차 기업도시위원회 회의를  주재 하고 있다./강한구/정치/                2005.5.18(서울=연합뉴스)
    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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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총리,기업도시위원회 1차 회의 주재. 이해찬 총리가 18일 오전 정부 중앙청사에서 제1차 기업도시위원회 회의를 주재 하고 있다./강한구/정치/ 2005.5.18(서울=연합뉴스) kang@yna.co.kr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문제의 핵심은 ‘정부의 정책 실패’다. 기업도시를 선정하고 추진하던 참여정부는 ‘균형 개발’의 명목 아래 수많은 지역 개발 공약을 남발했다. 현재 대규모 사업이 추진 중인 곳은 기업도시 외에도 전국적으로 혁신도시 10곳, 세종시, 경제자유구역 6곳, 첨단의료복합단지 2곳 개발 사업 등에 이른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 따르면 정부가 기업도시 기반 시설을 위해 지원할 예산은 총 833억 원(도로 예산 등)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까지 6개 기업도시에 540억 원을 집행했다. 나머지 290여억 원은 올해 안에 집행될 예정이다. 벌써 웬만한 사업비는 동이 난 것이다.

더욱이 지방 사업 대다수가 낙후 지역 개발 명목의 특별법에 의해 추진되다 보니 개발지가 겹치는 등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개발 사업이 5개나 중복되는 지역이 11개 시·군에 달한다. 정부에서 39개 법률에 근거해 55종의 지역·지구(13만 860.07㎢)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낙후 지역의 개발을 정부 주도로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개발의 주체는 ‘기업’에 떠넘겼다. 하지만 기업은 수익성이 생명이다. 기업은 각종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인구 밀집 지역에 투자하는 게 훨씬 수익성이 높다.

각종 개발 공약으로 치솟은 땅값은 기업이 투자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실제로 현재 3.3㎡당 5만~7만 원 수준인 무안 지역의 땅값은 기업도시 발표 이후 15만 원 선까지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을 주도해야 할 삼성·현대자동차·LG 등 대기업들이 사업에서 발을 뺐다. 대규모 사업에는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의 참여가 필수다. 현재 비교적 잘 추진되고 있는 충주의 개발 주체는 롯데와 포스코 등이다.
<사진->기업도시 반대 시민연대 기자회견.
    기업도시 반대 시민연대 회원들이 25일 오전 정부 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업도시 저지를 위한 시민환경단체 공동 기자회견를 갖고 서남해안및 태안천수만 기업도시 시범사업  추가 선정 반대 구호를 외치고있다./강한구/사회/ 
     2005.8.25(서울=연합뉴스)
    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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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업도시 반대 시민연대 기자회견. 기업도시 반대 시민연대 회원들이 25일 오전 정부 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업도시 저지를 위한 시민환경단체 공동 기자회견를 갖고 서남해안및 태안천수만 기업도시 시범사업 추가 선정 반대 구호를 외치고있다./강한구/사회/ 2005.8.25(서울=연합뉴스) kang@yna.co.kr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참여정부의 대표적 정책 실패 사례

2008년 벌어진 금융 위기는 결정타였다. 주로 중견그룹사들로 이뤄진 개발 주도 기업들이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 이와 함께 대기업들은 자본을 크게 ‘먹을 게 없는’ 지역 개발 사업보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활용하는 게 더 우선순위였다. 즉 애초부터 이 사업에 매력을 느낄 만한 대기업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롯데는 내수 위주의 기업이고 포스코는 아직 정부의 영향력이 큰 기업이다. 또 지금은 취소된 무주의 개발 주체인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의 소유자(현재는 매각)였다.

물론 ‘먹을 게 없다’면 만들면 된다. 즉 과감한 규제 완화 혹은 세제 혜택 등을 통해 대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면 된다. 이 지점에서 바로 MB 정부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한 기업도시 관련 전문가는 “MB 정부는 기업도시와 관련해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즉 기업도시 사업의 시작이 전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개발의 주체는 기업 그리고 지자체였으니 전 정부의 정책을 현 정부가 지원하는 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주 개발이 취소되고 무안 기업도시가 난항에 빠지면서 정부도 위기감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어느덧 올해 12월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로 인해 또 한 번의 ‘정치적 선택’이 이뤄지는 것일까.

국토해양부는 7월 31일 기업도시 개발 사업의 투자 여건을 개선하고 투자 의욕을 높이기 위해 기업도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 관계 부처 협의를 신속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선수금 수령 조건을 완화하거나 개발 면적 기준을 줄여 사업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또 개발 이익 재투자율을 하향 조정해 투자 수익을 높이고 개발 이익이 당초 계획보다 감소할 때에는 투자 금액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기업도시 활성화를 촉진하고 기업도시 제도가 지속 가능한 제도로 운영되도록 개발 사업자의 애로 사항과 제도상의 문제점을 지속 발굴해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업도시가 단지 ‘선심성’이 아닌 균형 발전과 기업 투자 활성화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도’로 자리매김할지는 앞으로 또다시 수년 후에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