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스·코텍 지분 매입…무얼 노렸나

올 들어 코스닥 시장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은 지난 6월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 세계 2위인 아이디스의 국내 카지노용 모니터 1위 업체 코텍 인수를 꼽을 수 있다. 아이디스가 코텍 인수에 쓴 자금만 700억 원. 아이디스의 김영달(44) 대표와 코텍의 이한구(63) 회장은 벤처 업계에서 자수성가한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그런데 아이디스의 코텍 인수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은 김 대표나 이 회장이 아니라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의 김정주(44) 회장이었다. 김 회장이 M&A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김 회장은 6월 초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80 00여억 원에 인수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M&A 업계 ‘큰손’이다. 김 회장이 아이디스·코텍 M&A에 자꾸만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우선 넥슨의 지주사인 NXC가 이번에 코텍을 인수한 아이디스의 지주회사인 아이디스홀딩스의 지분 23.9%를 보유한 2대 주주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디스의 코텍 인수가 김 회장의 향후 행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NXC는 어떤 회사인가. 2011년 말 회계 기준(연결 재무제표)으로 현금성 자산만 1조8000억 원을 갖고 있다. 자산 규모는 3조9000억 원, 작년 매출은 1조2000억 원, 영업이익은 5300억 원에 달한다. 김 회장이 지분 48.5%, 김 회장의 부인 유정현 씨가 21.5%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자사주가 26.56%다. 김 회장의 개인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NXC는 2011년 말 기준 17개의 국내외 종속법인과 25개의 국내외 지분 투자 법인이 있는데, 대부분 게임·소프트웨어·콘텐츠 관련 기업들이다. 하드웨어 분야의 투자는 아이디스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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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C,아이디스홀딩스 지분 23.9% 보유

김 회장이 상장사 중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곳도 역시 아이디스뿐이다. 2011년 3월 말 기준 아이디스홀딩스 지분 9.58%를 보유하고 있던 NXC는 2011년 8월부터 3개월간 33회의 장내 매집을 통해 지분을 16.8%까지 끌어올렸다. M&A 직전인 5월 28일 130만여 주를 추가로 사들여 23.9%를 갖고 있다. 아이디스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김영달 대표로 31.23%를 갖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 회장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다. 아이디스·코텍 M&A에 김정주 회장이 오르내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인수 과정에서 김 회장이 관여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업계의 지적 때문이다. 그 근거로는 아이디스와 NXC가 2010년부터 이미 코텍 지분을 꾸준하게 매입해 왔다는 것이다.

아이디스홀딩스는 2010년 9월 12만6469주 (0.99%)를 장내 매입했다. 그해 말까지 아이디스홀딩스의 자회사인 아이앤아이가 30만 주(2.4%)를 추가로 사들였다.

NXC는 2010년 12월 말 이미 7만6285주(0.6%)를 보유하고 있었고, 2011년 8월엔 63만3000주(4.97%)로 불어난데 이어 지난 7월 현재 7.8%까지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김영달 대표의 아이디스와 김정주 회장의 NXC가 같은 시기에 코텍 지분을 집중 매입해 온 것이다. 김 회장과 NXC가 처음부터 아이디스와 코텍 간 M&A 협상에 깊숙이 개입했거나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하다. 이에 대해 NXC는 아이디스홀딩스와 코텍 간 경영권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고 단순히 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취득했다고 강조했다. NXC의 이재교 홍보 이사는 “코텍 이외에도 여러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며 “투자 이외의 목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아이디스 측도 김정주 회장의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영달 대표는 “김정주 회장이 M&A의 큰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어 넥슨이 관련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번 코텍 인수에 대해 김 회장과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M&A 업계에선 여러 정황상 NXC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우선 아이디스홀딩스의 2대 주주가 회사 경영의 중대한 변화인 대형 M&A가 진행되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김영달 대표와 이한구 회장은 지난 6월 M&A가 종료된 후 가진 투자 설명회에서 2년 전부터 경영권 양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2년 전이면 2010년 상반기다. NXC가 아이디스의 5% 이상 지분을 취득해 주요 주주로 올라선 때다. 아이디스도 하반기부터 코텍 지분을 본격적으로 사들였다. 2년 전 김영달 대표와 이한구 대표는 단지 M&A 협상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부 지분 투자까지 실행했던 셈이다. M&A 업계에서는 아이디스와 코텍의 M&A가 2년 전인 2010년부터가 아닌 2007년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각 금액에 대한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다가 결렬된 후 2010년에 재개됐다는 것이다. 이는 김영달 대표가 올 4월부터 본격적인 M&A 논의를 했다고 주장한 것과 배치된다. 물론 ‘본격적인 M&A’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M&A 업계에 따르면 통상 M&A의 협상 과정은 최소한 6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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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스·코텍 M&A “3분 만에 체결”

이번 M&A의 또 다른 당사자인 이한구 회장도 “지난 4월에 제안이 들어와 M&A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4년 전부터 코텍 매각을 아이디스에 시도했고 2년 전에도 매각을 제안했지만 당시엔 아이디스가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 후 “아이디스가 아이디스홀딩스와 아이디스로 분할되고 아이디스가 유상증자를 거치는 등 인수 조건을 갖춘 뒤 우리 측에 제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또 “오랫동안 교감을 나눴기 때문에 M&A는 단 3분 만에 전격적으로 체결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말대로라면 이미 4년 전부터 아이디스와 코텍 간 M&A 수순을 밟았다는 얘기가 된다. 또 “단 3분 만에 전격 체결”은 해석하기에 따라선 지난 6월 M&A 계약은 이미 4년 전부터 진행돼 온 M&A 과정에 마침표를 찍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아이디스는 코텍 인수 다음날에 매도자에게 500억 원을 지급하고 200억 원을 매도자와 매수자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계좌에 입금했다고 공시했다. 통상적으로는 계약금 지급, 실사, 중도금 납입, 주총일 잔금을 지급하는 것이 관례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계약일 이후 하루 만에 전액을 인수자가 지급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 아니다”며 “상당한 M&A 절차가 사전에 종료됐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정주 회장과 김영달 대표가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코텍 인수와 관련된 정보를 사전에 교환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김 대표는 투자 설명회에서 “(김정주 회장과는) 카이스트의 같은 연구실에서 일한 동기생으로 우애가 깊다. 가족끼리 여행도 가곤 한다”고 말했다.

넥슨의 지주사인 NXC는 투자회사나 마찬가지다. NXC 관계자의 주장대로 “투자 목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정주 회장이 코텍 지분을 취득하기 이전부터 김영달 대표가 코텍 인수를 추진해 왔다면 “미리 정보를 알았거나 공유하고 지분을 매입했다”는 오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