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경기를 합니다. 한국 선수가 맨 앞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목표 지점이 바뀌었습니다. 정반대편이 목표라고 합니다. 다들 뒤돌아 뜁니다. 한국 선수는 졸지에 꼴찌가 됐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대한민국 웹 환경을 비유해 말하자면 이렇다는 얘기입니다. 대한민국은 일찌감치 초고속 인터넷 전국망을 깔고 그 기반 위에서 다양한 웹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웹 환경은 세계 최악입니다.

인터넷을 하려면 브라우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니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관람권 예매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인터넷 쇼핑이나 전자 정부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회사 인트라넷은 물론입니다. 크롬·파이어폭스·사파리 등 최신 브라우저가 빠르고 편한 것을 알면서도 익스플로러 아니면 안 됩니다. 애플 맥북이 마음에 들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광파리의 IT 이야기]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웹 환경, 액티브X에 중독…변화 외면
한 중견기업은 약 1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6에 맞춰 인트라넷을 개설했습니다. 그런데 익스플로러 버전이 7, 8, 9로 올라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위 버전 익스플로러로는 사이트가 제대로 열리지 않는 겁니다. 사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인트라넷 담당자는 7, 8 버전은 패치를 깔게 했고 9 버전은 아예 사용하지 말라고 게시했습니다. 이 게시물은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 사이트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근 상임위 생중계를 지켜보려고 국회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생중계 화면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브라우저가 익스플로러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익스플로러를 깔고 플러그인을 깐 다음에야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수목원 관람권을 예약하려고 접속했다가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크롬이 깔린 맥북으로는 예약이 안 돼 익스플로러가 깔린 PC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웹사이트는 대부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돼 있고 생중계나 예약과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X라는 기술을 이용해 특정 프로그램용 플러그인을 깔아야 합니다. 액티브X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해커들이 악성 코드를 침투시키기도 하죠.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고 브라우저를 최신 버전으로 바꾸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광파리의 IT 이야기]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웹 환경, 액티브X에 중독…변화 외면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10년 전만 해도 세계 공통어나 다름없었습니다. 시장점유율이 90%를 웃돌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진 반면 구글 크롬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선두로 치고 올라왔습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휴대전화나 태블릿으로 인터넷 서핑도 하고 인트라넷도 이용하고 예약도 하고 결제도 합니다. 현재의 낙후된 웹 환경으로는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바꿔야 합니다. 문제는 조직의 책임자들이 왜 바꿔야 하는지 잘 모르고 인트라넷 담당자 중에는 바꾸는 걸 싫어하는 이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