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다.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등 정당들은 경제 민주화를 화두로 끌어올리고 총선 공약으로 잇따라 내걸었다. 총선이 끝나자 종북 논란 중인 진보당을 제외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입법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새누리당이다. 중도-진보 쪽의 민주당보다 더 적극적이다. 실제로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7월 22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응답자의 39%가 ‘새누리당이 경제 민주화를 더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28.7%에 그쳤다.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이처럼 경제 민주화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 배경에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있다. 이 모임은 소장파 리더인 남경필 의원을 대표로 김세연·정두언·나성린·강석훈 등 현역 의원 39명과 구상찬·이혜훈·임해규 등 8명의 18대 의원 등 총 47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7월 15일 횡령·배임 등을 저지른 대기업 총수에 대해 집행유예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비례대표인 민현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은 대기업 총수의 횡령·배임에 대해선 형량을 최소 7년 이상으로 하자는 것이다.
[여의도 생생 토크] 급진전 경제 민주화 논의 어디로?
밀어붙이는 여당…신중한 정부

7월 25일에는 2호 법안을 냈다. 대기업들이 한 계열사에 일감 몰아 주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익 편취가 있다면 총수가 해당 계열사를 강제로 매각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일감 몰아 주기와 불공정 행위 등이 발생하면 대주주의 지분을 아예 처분하게 하거나 그런 계열사를 처음부터 설립을 금지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이런 법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나는 8월 중순까지 굵직굵직한 경제 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세 차례 이상 더 내놓을 계획이다. 3개의 법에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거나 ▷대기업의 순환 출자를 금지하거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내용들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집권 여당에서 이렇게 밀어붙이고 있어 신중한 모습이다. 경제 민주화와 가장 관련이 깊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표적이다. 김동수 위원장은 7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나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만 말했다.

재계는 곤혹스러운 눈치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이 계열사를 설립하거나 편입할 때 사익 추구 목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4대 그룹의 다른 관계자는 “산업이 융·복합화하는 추세인데 대기업의 계열사 신규 편입을 금지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안이 실제로 통과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장담할 수 없다. 2호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종훈 의원은 “반드시 대선 전까지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고 모임의 대표인 남경필 의원도 기자와 만나 “대선 일정과 상관없이 꾸준히 법을 내놓고 밀어붙일 것”이라며 “8월 중순 이후엔 음원 문제, 이동통신사의 부정행위 등 소프트한 주제로 넘어가 이를 계속 이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후보 캠프는 한 발 물러서 있는 분위기다. 박 후보와 가까운 이한구 원내대표는 경제 민주화 법안 발의와 관련해 “당론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본선에서 박 후보의 정책을 담당할 경제학 교수를 역임한 안종범·강석훈 의원 등은 모임에 소속돼 있으면서도 2호 법안까지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캠프 핵심 인사들 중에선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정도가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격려하고 있는 정도다. 이에 대해 남경필 의원은 “당론이 되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으며 우리는 우리대로 간다”며 “민주당 의원들과 뜻을 맞추면 충분히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