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 원 블루오션…유행 타지만 성장 ‘쭉’


다이어트는 유행 산업이다. 거의 해마다 새로운 다이어트법이 등장한다. 1990년대 초반 인기를 끈 포도와 사과 다이어트에서부터 바나나 다이어트, 수박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뒤캉 다이어트, 덴마크 다이어트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올해는 레몬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밥을 굶는 대신 레몬 분말을 물에 타 마시는 ‘원 푸드 다이어트’의 일종이다. 다이어트 카페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면서 대형 마트에서 레몬이 박스째 팔려나가고 관련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유행은 빠르게 흘러간다. 한 번 밀려난 제품은 다시 찾지 않는다. 이처럼 유행이 심한 다이어트 산업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매년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지목할 만큼 심각한 ‘질병’이다. 비만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일반적인 잣대는 체질량지수(BMI)다. 체중(kg)을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가 30 이상이면 ‘비만’으로 분류된다. 25~30은 과체중 상태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지난해 국내 비만 인구는 138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과체중 인구 755만 명을 더한 893만 명이 다이어트 시장의 1차 타깃이다. 이승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10년간 비만 인구 비율이 1.5배 증가했다”며 “특히 40~60세 중년 남성의 과체중 이상 비율이 4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블루오션 몸짱 비즈니스] 다이어트 시장 어디까지 왔나
비만·과체중 인구 893만 명 타깃

다이어트 시장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은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다이어트에 대한 지나친 강박은 정상 체중이거나 오히려 저체중인데도 계속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정신적 비만’을 유발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하는 지역사회 건강 조사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2010년 조사에서 서울 지역의 비만(BMI 25 이상) 인구 비율은 21.7%로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절반 이상인 56%가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어트 시장은 다이어트 실패율이 높을수록 더 가파르게 성장한다. 현재까지 등장한 다이어트 방법은 무려 2만6000가지가 넘는다. 이 중 확실하게 효과가 입증된 것은 거의 없다. 의학 전문가들은 비만을 재발률이 높은 대표적인 질병으로 분류한다. 다이어트를 중단하면 금방 원상태로 돌아가는 ‘요요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수석연구원은 “한 번 줄인 체중을 2년 이상 유지하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국내 다이어트 시장 규모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는 아직 나온 것이 없다. 이창원 풀무원ECMD 상무는 “미국 시장을 토대로 대략적인 시장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한국 다이어트 시장을 미국의 10분의 1 정도로 본다. 시장조사 업체인 마켓데이터엔터프라이즈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다이어트 시장은 78조7000억 원 규모다. 체중 감량 수술, 다이어트 알약 등 다이어트 의료가 11조3000억 원, 헬스클럽과 체중감량센터가 29조3000억 원, 다이어트 식품과 서적·비디오 등 기타가 38조1000억 원을 차지했다. 미국 다이어트 시장은 매년 5~10%씩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이 상무가 추정한 한국 다이어트 시장의 전체 규모는 7조6000억 원 안팎이다. 다이어트 의료가 1조9000억 원, 헬스클럽이 2조5000억 원, 다이어트 식품 등 기타가 3조2000억 원을 차지할 것이란 계산이다. 이 상무는 “한국은 단기간에 체중을 대폭 감량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지만 미국은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바꾸는 상담과 개인별 맞춤 프로그램 위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풀무원이 지난 3월 균형 잡힌 식단(도시락)을 통해 체중을 조절하는 새로운 다이어트 프로그램 ‘잇슬림’을 선보인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풀무원은 미국의 체중감량센터를 벤치마킹한 다이어트센터도 내년 초 문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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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건강 서적 코너에서는 다이어트 시장의 흐름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최근 ‘골반 다이어트’, ‘숀리 다이어트’, ‘간지몸 프로젝트’ 등이 건강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나란히 포진해 있다. ‘골반 다이어트’는 일본의 다리 전문가 사이토 미에코가 쓴 책이다. 2~3년 일본에서 붐을 일으킨 골반 다이어트가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이 책을 기획한 보누스출판사 이현정 씨는 “다이어트 시장은 고도 비만 다이어트와 몸매를 예쁘게 하는 다이어트로 양분된다”며 “무조건 살만 빼는 게 아니라 틀어진 골반을 바로잡아 몸의 균형을 잡아주면 몸매도 예뻐지고 몸도 건강해진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출간된 이 책은 지금까지 대략 1만 부 정도 팔려나갔다. 생각보다 적은 부수다. 이 씨는 “출판 시장이 위축돼 베스트셀러에 올라도 판매량이 과거처럼 많지 않다”며 “하지만 다이어트는 모든 여성들이 평생 안고 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꾸준하게 팔리는 분야”라고 말했다.

다이어트 시장은 의료계에도 블루오션이다. 비만 치료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다 보니 경영난에 빠진 병원들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너도나도 다이어트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깐깐한 관리를 받지 않아도 되고 소득원도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진료 과목 구분 없이 누구나 비만 치료를 할 수 있는 것도 다이어트 사업이 인기를 끄는 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의과대학에 ‘비만과’가 따로 없기 때문에 피부과든, 정형외과든, 아니면 가정의학과든 먼저 가져가 간판을 내걸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피부과와 성형외과는 원래부터 ‘뷰티’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를 다루고 있고 정형외과는 고도 비만 환자의 위 절제술이나 위 밴드 수술을 맡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출산율 저하와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 분만을 포기한 산부인과나 건강 보조 식품 시장의 성장으로 한약 인기가 수그러들어 어려움을 겪는 한의원도 이 시장에 깃발을 꽂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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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맞춤형 관리로 진화

최근에는 다이어트 전문 병원 프랜차이즈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03년 문을 연 ‘365mc’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를 포함해 전국에 28개의 병원을 거느리고 있다. 기존에 비만 클리닉, 지방 흡입 수술, 위 밴드 수술 등 한의원과 성형외과, 외과에 분산돼 있던 다이어트 시술만 모은 다이어트 전문 병원이다. 강수진 365mc 홍보팀장은 “2003년만 해도 의학적 시술로 살을 뺀다는 것이 생소해 초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시장 잠재력을 확신했지만 이렇게까지 커질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365mc는 오는 12월 교대역 인근에 13층 규모의 비만 수술 전문 병원을 완공한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첫 사례다. 강 팀장은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의료 관광 수요까지 고려한 투자”라고 말했다.

이승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다이어트 산업의 성장 방향을 3가지로 예측한다. 맞춤형 적정 체중 관리와 예방적 비만 관리, 통합·장기적 비만 관리 등이 그것이다. 우선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체질, 사회경제적인 환경을 고려해 개인별로 목표 체중 범위를 제시하고 알맞은 의료기기와 식품, 운동 프로그램을 처방하는 맞춤형 서비스가 유망하다. 실제로 나이와 성별에 따라 사망률을 낮추는 BMI 구간이 달라진다. 64세 이상 노인 중 남성은 약간 과체중 상태가, 여성은 적정 체중 유지가 바람직하다.

비만의 사후 치료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성공률이 높지 않기 때문에 사전 예방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 수석연구원은 “비만 전문가와 네트워크로 연결해 상시적으로 비만 관리와 교육 프로그램 제공받는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비만은 복합적인 요인이 장기간 누적된 결과이기 때문에 치료법도 통합적이고 장기적인 솔루션이 필수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U헬스케어가 주목받는 이유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