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패션왕②- 명유석 헴펠 대표

동대문에서 의류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는 백(百)이면 백 다 다를 정도로 가지각색이다. 매출 연 600억 원(통합)인 (주)헴펠과 (주)밀앤아이를 운영하는 명유석 대표는 그중 비교적 엘리트 코스를 밟은 편이다. ‘비교적’이라고 한 데는 그가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고 취업해 경험을 충분히 쌓은 뒤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기업에 오래 다녔다고 해서 창업에 무조건 성공하지 않듯이 그가 성공을 위해 노력한 과정을 보면 배경이나 지식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동대문에서 성공하려면 근성과 끈기 그리고 감각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회의 땅' 동대문 패션왕] 성실·끈기 무장…600억 원 기업 일궈
약력:1966년생. 건국대 의상학과 졸업. 숭실대 섬유패션과 석사. 1989~2002년 동대문에 근거지를 둔 다수의 의류 업체에서 일함. 2002년 독립해 밀(Mill) 설립. 헴펠·르퀸 등 다수의 브랜드 론칭. 헴펠 및 밀앤아이 대표이사(현).



동대문에 대기업식 혁신 도입

명 대표는 건국대 의상학과 4학년 2학기 때 의류 회사에 취업해 1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그중 7년은 17곳의 ‘브랜드’ 디자인실에서, 나머지 7년은 ‘홀세일’ 매장에서 보냈다. ‘브랜드’는 자체 대리점(소매점)에서 직접 파는 것이고 ‘홀세일(도매)’은 흔히 말하는 옷가게 주인들에게 파는 것을 말한다.

명 대표에 따르면 ‘브랜드’가 ‘홀세일’보다 더 어렵다. 홀세일은 디자인이 완성되면 먼저 소량으로 샘플을 만든 뒤 고객(옷가게 주인)들의 반응이 좋은 것들만 대량으로 생산한다. 소비자의 반응을 바로 캐치할 수 있고 재고가 많이 남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브랜드는 전국 소매점(직영점 또는 가맹점)에 대량으로 깔린 뒤에야 소비자의 반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크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트렌드를 미리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실패하기 쉽다. 명 대표는 이를 ‘감도(感度)’라고 표현한다. “홀세일은 감도에 따라 월 매출이 10억 원에서 5000만 원까지 왔다 갔다 하는 편입니다.”

브랜드는 홀세일에 비해 유통 과정이 단순하고 브랜드 파워가 있기 때문에 이익률은 훨씬 높은 편이다. 또 홀세일은 무명의 ‘장사꾼’ 취급을 받지만 브랜드를 하면 비로소 ‘사업가’로 대접하기 때문에 의류업의 최종 목표는 브랜드가 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과 반대로 명 대표는 7년 동안 브랜드 업체를 먼저 경험한 뒤 홀세일 업체로 이직했다. 회사 생활 뒤 지인(아는 형)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나왔는데, 그 업체가 홀세일 업체였기 때문이었다. “그 형이 사업을 하면서 늘어난 빚을 내가 없애주겠다고 마음먹고 들어갔었죠.” 직원으로 들어갔지만 거의 경영자나 마찬가지의 전권을 갖고 자신의 일처럼 매진했다.

나중에 독립한 뒤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홀세일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일이었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4시까지 출근하면 고객(소매상)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몰려든다. 8~9시가 되어 가게가 잠잠해지면 샘플 주문·재주문·원단 주문 등을 확인, 10~11시에 공장에 주문을 넣는다. 가게에서 낮 장사를 하다가 4시부터 공장에 가서 현장 확인, 샘플 수정 뒤 가게에서 마무리하는 시간이 오후 9~10시. 집에 가면 11~12시가 넘고 개인적인 일을 보고 난 뒤 새벽 1~2시에 잔다. 집에서 숙면을 취할 시간이 2~3시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홀세일은 정말 쉽지 않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명 대표는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을 버텨야만 동대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패션왕이 우아하게 디자인만 잘한다고 되지는 않는 것이다. 감각도 중요하지만 성실과 끈기가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기회의 땅' 동대문 패션왕] 성실·끈기 무장…600억 원 기업 일궈
위기 대비 다브랜드 전략이 비결

직원으로 들어간 회사지만 명 대표는 나름의 수완을 발휘해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이뤄냈다. 주문장의 형태나 디자인에서부터 배송 시스템, 인력 배치, 주문 방식 등 주먹구구식이던 관행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갔다. 대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경영 혁신을 동대문의 영세 업체에 도입한 것이다. 빚에 쪼들리던 회사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이 모이기 시작하자 사원이던 명 대표와 회사 대표와의 사업 방식에 이견이 나타났다.

명 대표는 “소비자의 트렌드가 워낙 자주 바뀌기 때문에 돈이 생기면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재투자를 해야 한다. A가 잘 안 될 때 B가 본전, C에서 돈을 벌고, B가 안 될 때 C가 본전, A에서 돈을 버는 식이다. 사업 다각화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존 대표는 현금을 부동산 매입 등 다른 용도에 사용했다.

결국 명 대표는 독립 후 자신의 회사인 ‘밀(Mill)’을 설립한다. 사무실을 별도로 얻지 않고 동대문 벽산아파트 142㎡형을 얻어 작업실로 이용했다. 다시 홀세일의 살인적인 스케줄이 이어졌고 창업 1년 뒤에는 청평화시장에 밤시장(도매)이 생겨 저녁 7시 30분에도 매장에 나가는 일이 추가됐다. 명 대표는 아파트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직원들은 출퇴근했지만 거의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직전에 몸을 담았던 회사는 명 대표가 떠난 지 1년 안에 망했고 함께 일했던 직원이 하나 둘 합류하면서 밀은 3년 만에 안정적 궤도에 진입했다. 2007년에는 아파트에서 일반 사무실로 이전했다.

2008년 명 대표는 ‘르퀸’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했다. 현재 르퀸은 가로수길·명동·분당·동대문 두타의 독립 매장 외에 전국 35개 홈플러스에 입점해 있다. 연매출 150억 원대로 중저가 여성 패션 편집숍을 표방하고 있다. 명 대표는 “르퀸을 처음 론칭했을 때는 중저가 여성 스파(SPA: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가기로 했으나 자라·H&M 등 글로벌 SPA 업체와 부딪치면서 방향을 틀었다”고 얘기했다. 대신 롯데 김포몰 내에 새로운 중저가 편집숍을 시작으로 몰 위주의 입점 전략을 준비 중이다.

명 대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비결에 대해 “죽도록 열심히 하는 겁니다. 절실하게, 배고프게”라고 답했다. 그는 사업 다각화·다(多)브랜드 전략을 강조했다. “소비자가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소비자가 변해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한편 그의 직원들은 1년에 2번 정도 해외 연수를 나간다. 트렌드가 중요한 디자이너 외에 물류 담당과 지원 인력도 동일하다. “회사는 결국 직원이 만드는 겁니다. 직원들이 번 돈을 직원에게 쓰는 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저의 역할은 핀트를 잘 맞추는 것뿐이고 나머지는 직원들이 하는 거죠.”

개인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번 그는 “돈이 있으면 편리해지는 것뿐이지 그 이상 있는 건 의미 없다”고 얘기한다. 아낌없이 직원에게 투자하니 그 직원들이 더 많은 돈을 벌어 준다고도 말했다.

의상학을 전공한 그에게 대학이라는 배경이 동대문에서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고 물었다. “1%도 안 됩니다. 차라리 경제·경영을 배웠다면 더 도움이 됐을까요. 대학에서의 배움에 대해서는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중졸도 대졸과 평등하다고 봐요. 다만 MT나 워크숍을 통해 사회성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벌에 따른 인맥도 그저 그렇습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