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 등 유럽 국가들의 금융 위기 여파가 우리나라의 외화보유액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은 최근 5월 말 현재 우리나라 외화보유액이 전월 말 대비 59억7000만 달러나 감소한 3108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달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던 외화보유액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에 발목 잡히며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외화보유액이 줄어든 것은 올 들어 처음이자 작년 9월(88억1000만 달러 감소)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외화보유액이 줄어든 것은 보유하고 있는 유로화와 파운드화 등 유럽 통화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미국 달러화 환산액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최고치를 기록한 3일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화폐정리를 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0503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최고치를 기록한 3일 외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화폐정리를 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20503
“대기업 해외 여유 자금 활용하자”

외화보유액은 한 나라의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의 총액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해외 채무 지급불능 사태를 예방하고 외환시장의 급변동을 막기 위해 쌓아 놓은 외화 자산이다.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과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통화(달러·엔·유로 등), 해외 예치금, 외화증권, 해외 및 국내 보유금, 특별 인출권(SDR)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외화보유액은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유가증권 2823억5000만 달러(90.8%) ▷예치금 203억4000만 달러(6.5%)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 인출권(SDR) 34억6000만 달러(1.1%) ▷금 21억7000만 달러(0.7%)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는 최근 들어 외화보유액에 이어 제2의 외화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외화예금의 활성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화예금은 외화보유액 이외의 외화 자금 운용 재원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제2의 외환 방패막이로 인식된다. 그러나 1년 만기 정기 외화예금의 금리가 연 2% 안팎으로 원화 예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투자 대상국 통화가 원화보다 강세를 띠면 환차손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 대상 상품으로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외화예금 총잔액은 38조 원으로 외화보유액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외화예금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은행들의 외화예금 유치 실적에 따라 외화 차입 한도를 늘려주는 방안 ▷외화예금 유치 실적이 뛰어난 은행에 정부의 외환 거래 물량을 몰아주는 방안 ▷은행들에 무기명 외화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을 허용해 주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실제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도 지난 4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화예금 확대 방안에 대해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실적이 우수한 은행에 외화 차입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논의하는 방안 중 하나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6월 개최된 ‘유로존 위기의 지속과 대응 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류상철 한국은행 거시건전성연구팀장은 “유럽 사태가 본격화되면 국내 은행 외화 차입금이 급격히 유출될 수 있다”며 “은행이 충분한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금융연구원은 국내 대기업의 해외 여유 자금을 국내 은행의 외화예금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5월 ‘대기업의 해외 여유 자금 활용을 통한 국내 은행과의 동반 성장 방안’이란 자료에서 “국내 대기업의 해외 여유 자금을 국내 은행 창구를 통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내 은행의 수지 개선과 외화 유동성 제고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