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캡숑 권도혁 대표·이두희 CTO


대학생들 간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클래스메이트(Klassmate)를 만든 이두희 씨를 만났을 때 나는 잠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멈칫한 상태였다. 원래는 권도혁 대표를 만나는 줄 알고 찾아왔는데 권 대표는 마침 자리에 없었다. 그는 인터뷰를 하기엔 너무나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한두 번 쯤 더 생각하게끔 만드는 기이한 유머 감각이 있었다. 이두희 씨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울트라캡숑. 이름에서부터 4차원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이 회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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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의 전설적인 해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03학번 이두희 씨는 학생들이 강의를 자발적으로 평가하는 ‘SNU EV(snuev. com)’를 만들어 학교에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서울대의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고 순전히 그가 친구·후배들과 함께 만들었다. 지금은 서울대 전 학생이 다 사용하는 사이트다. “2월 1일에 얼마나 접속했는지 보니까 하루에 1만 명이 들어왔더라고요.” 서울대 재학생은 1만6000여 명 수준이니 전교생이 다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왜 만들었어요? 서울대에도 자체적으로 강의 평가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나요?”

“있죠. 그런데 그것을 학생들에게 공개하지 않아요. 정작 학생들은 모른다는 거죠. 100만 원짜리 노트북 하나를 사도 20, 30개 리뷰를 읽어 보는데 400만~500만 원의 수업료를 내고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듣는 수업이 어떤 내용인지, 들어본 사람들의 후기는 어떤지 등 정보도 없이 신청해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2006년 ‘서울대 정보화 포털 3만 명 신상 정보 유출’을 학교에 가장 먼저 알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도 그였다. 서울대 전산 시스템을 해킹해 김태희 씨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꺼내온 사람도 그다.

“김태희 사진은 왜 해킹했어요?”

“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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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희 CTO는 창업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냥 개발을 계속했어요. 개발을 해서 친구들의 삶을 좀 바꿔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는 그래서 생활 자체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뭔가 불편한 점이 있다고 하면 바로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토론했다. 와플스튜디오는 그가 주로 거주하는 곳이었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는 거의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1년 내내 붙어 있다시피 했다.

2010년에는 서울대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을 만들기도 했다. 학교를 소개하고 지리 정보를 제공하고 곳곳의 다양한 정보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런 앱이었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이걸 싫어했다. 학교 정보가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불려가 주의를 받은 그는 결국 서비스를 몇 달 해보지도 못하고 내렸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살던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권도혁 대표가 그를 찾아오면서부터다. 2010년 11월. 늦가을 치고는 꽤 쌀쌀한 어느 날 권도혁 대표가 이두희 씨를 찾아왔다고 한다. 마침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울트라캡숑 사무실로 권도혁 대표가 들어왔다.

“그나저나 이두희를 어떻게 알고 찾아갔어요?” 권 대표에게 물었다. “이두희 친구가 큐박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 잘하는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교에 같이 갔었습니다. 그랬다가 만났죠.” 이두희 CTO는 그때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뭘 만들었는지 좀 봅시다.” 권 대표가 그에게 물어봤다. 이 CTO가 만든 SNU EV를 본 권 대표는 즉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저랑 같이 창업합시다.”

그렇게 해서 이 CTO의 창업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바로 아이템을 내놓았다. “그냥 강의 평가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업과 관련해 학교에서 항상 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클래스메이트를 만들었죠. 강의 평가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학교 정보도 주고받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했어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그날, 야심한 시각에 권 대표는 왜 이 CTO를 찾아갔을까. 연세대 경제학과 94학번인 권 대표는 졸업 후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다니다 2004년 NHN에 입사했다. ‘나도 벤처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자.’ 이런 마음에 2006년 4월 첫눈에 입사했는데 하필이면 입사한 지 3개월여 만에 첫눈이 NHN에 매각됐다. NHN에 있다가 나온 마당에 다시 들어갈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벤처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에서 소셜 뮤직 서비스인 큐박스 개발자들을 알게 돼 큐박스를 미국에서 서비스하는 일을 맡았다. 큐박스를 맡은 지 3년이 넘으면서 그가 만난 이들이 바로 서울대 와플스튜디오에 있던 이 CTO와 그의 친구, 동료 등 7명의 개발자들이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뭔가 큰일을 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도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 CTO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셰릴 샌드버그 같은 역할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설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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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도 시작은 학교에서 했다

권 대표는 비즈니스와 자금을 책임지기로 했다. 창업 자금은 같이 댔지만 엔젤 투자도 받고 사업에 대한 조언도 필요했다. 노정석 사장이 떠올랐다.

“해커 출신인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사장이라면 이 CTO와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을 소개해 줬죠. 노 사장이 이 CTO를 만나자마자 바로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뭘 더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습니다. 하하.”

노 사장은 그의 말처럼 즉각 엔젤 투자를 했다. 작년 9월 클래스메이트 서비스가 나올 때 쯤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하버드대 행정학과 졸업생 아벨 아쿠나(23)가 미국 서비스 총괄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아벨 아쿠나가 현지 운영진으로 나서면서 보스턴 지역 10개 대학 학생 1000여 명이 사용하게 됐다. 하버드대 학보인 ‘하버드 크림슨’에도 소개되면서 하버드대 학생들이 쓰는 앱으로 성장했다.

클래스메이트의 사용자는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10만 명에 미치지 못한다. 처음 서울대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파리(Safari)라는 항목을 만들면서 학교 간 대화와 네트워크의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학생 인증(e메일)만 하고 가입하면 자기가 익명의 아이디를 만들 수 있다. 자기를 상징하는 것은 동물이다. 이를테면 섹시한 타조, 수다쟁이 개미핥기 등등.

2012년 3월 5일 새 학기 개강 시즌에 맞춰 클래스메이트는 대대적으로 개편, 새롭게 오픈했다. 서울대·이화여대·인하대·경기대 등 국내 40개 대학과 하버드·스탠퍼드·오하이오주립대 등 미국 15개 대학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범적으로 실시했던 클래스메이트가 본격 서비스를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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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메이트는 궁극적으로는 대학 생활에 대한 종합적인 사이트로 성장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공식적인 정보보다 훨씬 알차고 다른 학교의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는 진짜 대학 생활을 온라인에서 만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도 처음엔 하버드대 내부에서만 쓰이던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이 쓰는 것처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은 대학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잡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 대학생이 350만 명, 미국이 1500만 명인데 1차 목표는 이 중의 절반, 즉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 절반인 1000만 명이 쓰는 서비스가 되자’입니다.”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