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당초 집권 여당의 참패가 점쳐지던 총선 정국이 흥미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정당 지지율이 다시 역전된 것이다. 작년 말 시작된 ‘쇄신 경쟁’에서 새누리당이 한 발 앞섰다는 평가다. ‘난파선’ 처지던 새누리당의 극적인 부활은 박근혜 위원장이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의 활동에서 비롯됐고 그 중심에 선 인물이 김종인(72) 비대위 위원이다.

지난 3월 13일 종로구 부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은 “박 위원장이 있다는 것은 새누리당에는 큰 행운”이라며 “박 위원장 없이 총선을 맞았다면 새누리당은 유권자들에 의해 몰락한 일본 자민당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행보가 주목받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박 위원장의 집권 구상이 상당 부분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은 “집권 초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며 “이번에는 반드시 준비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박 위원장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가장 오랫동안 대통령을 준비해 왔고 탐욕이 없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경제 민주화 미루면 ‘제2 일본’ 된다”
비대위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3월 27일이면 만 3개월이 됩니다. 그동안 인적 쇄신과 정책 쇄신을 추진하면서 당내 잡음도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관심의 초점이 돼 온 것이 사실이지요. 처음 걱정했던 것보다 굉장히 빨리 당이 활기를 되찾고 상황이 호전됐다는 측면에서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봐요. 만약 비대위 체제 없이 지난 두 달을 보내고 4월 총선을 맞았다면 새누리당은 몇 년 전 55년 체제를 마감한 일본 자민당처럼 유권자들에 의해 완전히 몰락하는 길을 걸었을겁니다. 그래도 새누리당에 운이 있는 거죠. 박 위원장이 있다는 것은 새누리당에 큰 행운이에요.

기존 당내 세력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고 불만도 터뜨렸는데요.

갈등은 무슨. 서로 견해 차이가 조금 있었던 것뿐이죠. 현실 판단이나 전반적인 앞을 내다보는 시각에서 의견이 똑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다만 과거에도 선거에서 지고 나면 한동안 쇄신하니 어쩌니 하다 조금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강조한 거죠.

어떻게 비대위에 참여하게 됐습니까.

박 위원장을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러려면 일단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비대위에 들어가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고, 이왕 돕기로 한 거라면 이럴 때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게 된 겁니다. 당 내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새누리당에서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어요.

언제부터 박 위원장을 자문해 주셨습니까.

꽤 오래전부터죠. 작년에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에요. 그랬다면 비대위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입니까.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것처럼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폭발 직전이에요. 기존 정당들이 어떻게 변화된 모습을 갖고 이런 불신을 해소할 것이냐가 첫째 관건이죠. 경제 상황도 만만치 않아요. 최근 엥겔지수가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왔어요. 일반 서민의 삶이 굉장히 어렵고 빈부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게 현실이죠. 반면 한쪽에서는 경제 세력이 비대해져 탐욕에 끝이 없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내놓고 국민들의 표를 요구해야죠. 특히 새누리당은 누가 뭐래도 집권 여당이에요. 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박 위원장은 대권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걸 하기 위해 다수 의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국민을 상대로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죠.

연말 대선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이번에도 경제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될 겁니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모두 처음 출발할 때는 서민 생활을 향상시킨다는 기치를 내걸고 출발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악화시켜 서민들로부터 배척받았고,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사라져 버린 것 아닙니까. 이명박 대통령도 경제를 살린다고 약속했지만 서민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지지도가 뚝 떨어진 것이죠.

집권 초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오셨는데요.

집권 초반을 어물어물 지나가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새 정부 들어 1년쯤 지나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게 없으면 국민들이 실망하게 되고 정권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죠. 그러면 정부 스스로 힘이 빠져 버려요. 그동안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은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준비 절차를 철두철미하게 마련한 다음 대선 후보로 나서야 해요. 종전에는 대통령만 되면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초기 출발이 매끄럽지 못했던 겁니다.

준비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면 최소한 작년 말까지는 나라를 이끌어갈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준비가 머릿속에 돼 있고 그걸 추진할 사람까지 구상한 다음 대통령 선거에 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5년 임기 동안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거든요. 초기 1~2년 집중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그다음은 시간에 쫓겨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죠.
“경제 민주화 미루면 ‘제2 일본’ 된다”
박 위원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가장 오랫동안 대통령을 준비해 온 분이죠. (오래 준비했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래도 준비 안 한 사람보다는 낫겠죠. 무엇보다 박 위원장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요. 경제 세력이나 이익집단이나 마찬가지죠. 또 탐욕이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 대통령이 될 사람으로서 이건 굉장히 큰 장점이에요.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권력과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실패했거든요.

그건 문재인 이사장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성실성과 정직성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대통령은 유권자가 뽑는 거니까 국민들이 누구를 더 선호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박 위원장은 ‘서민의 삶을 모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서민과 접촉이 많지 않아 그런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되고 싶은 사람이 일반 국민, 특히 서민 생활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어요. 대통령이 되려면 표를 많이 얻어야 하고 표는 다 서민이 갖고 있거든요. 서민의 애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걸 해결하겠다는 인식이 없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에 ‘경제 민주화’가 들어갔는데요. 어떤 뜻입니까.

경제 민주화는 대한민국 헌법에 있는 내용입니다. 시장만 갖고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어요. 시장은 적자생존이 지배하거든요. 강한 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다 죽게 돼 있어요. 우리는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는 시장경제를 추구해요. 시장은 경쟁을 전제로 하는 반면 민주주의 정치 질서는 평등을 전제로 하죠. 서로 잘 부합이 안 되는 거죠. 이걸 잘 부합하게 하려면 정부가 보완적인 기능을 해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폭발해 버리고 말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가능합니까.

여러 가지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경제 민주화를 실현할 수 없어요. 공정거래법도 제대로 만들어 철저하게 이행되도록 해야죠. 대기업의 쓸데없는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해야 하고요. 노동조합이나 노동시장 문제도 해결해야죠. 지금 미국에서 ‘1% 대 99%’라는 불만이 터져 나와요. 만약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큰 일이죠. 경제 민주화는 그걸 사전에 대비해 막자는 겁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좀 더 성장이 필요한 단계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해 온 논리 아닙니까. 그런 입장을 가진 거대 경제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해요. 하지만 그들이 경제 민주화를 맹목적으로 반대하면 언젠가는 자신들의 존립 자체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1977년 근로자 건강보험 도입 때도 똑같은 반대 논리였어요. 만약 그때 도입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 능력에 맞는 수준에서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해나가면 돼요. 파이를 먼저 키우자고 하는데, 파이가 커지면 그들의 세력만 더 커집니다. 나누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죠.

1987년 개헌 때 경제 민주화 조항을 직접 만드셨는데요.

우여곡절이 많았죠. 당시 정주영 전경련 회장과 논쟁도 참 많이 했어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에 애초 건강보험 등이 다 들어가 있었어요. 막상 법이 통과돼 시행하려고 하는데, 미국 기득권 세력이 대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해 위헌 판결이 나면서 모두 빠져 버리고 말았죠. 우리도 앞으로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부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재를 가하려고 하면 기득권 세력이 헌법재판소로 몰려 갈 게 뻔했어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 근거 조항으로 집어넣은 거죠. 전두환 대통령에게 설명하니까 그러면 하라고 지시해 틀이 잡힌 거죠. 미국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강보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지 않습니까.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한데요.

우리나라 조세 부담률이 21% 조금 넘다가 감세 추진하면서 19%대로 떨어져 있어요. 이걸 1%만 끌어 올려도 10조 원에서 12조 원이 들어옵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가 훨씬 넘는 나라에서 조세 부담률 1% 올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세제 구조만 조금 바꿔도 만들 수 있어요. 문제는 의지죠. 하기 싫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안 하면 되는 거죠. 사회가 갈등 구조 속에서 허덕이다가 끝장까지 가게 두는 겁니다. 오늘날 사회 안정을 유지하면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나 음미해 볼 필요가 있어요. 반대로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잘나가던 일본 경제가 20년째 침체에 빠져 있는 이유도 생각해 봐야죠. 우리가 그렇게 안 된다는 보장이 없어요.

일본이 침체에 빠진 원인은 무엇입니까.

1989년 일본 노무라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당시 3만9800이던 닛케이 지수가 1995년 8만까지 간다고 했어요. 21세기가 되기 전에 일본 경제의 총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능가한다는 전망도 나오죠.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과 똑같은 짓을 한 거죠.(웃음) 하지만 일본은 누적된 구조적 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어요. 일본 경제는 대기업과 정부, 정당이 합동작전으로 끌어가던 구조예요. 한동안은 큰 성공을 거두니까 그게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어요. 세상의 변화를 외면한 거죠. 우리는 절대로 이런 착각에 빠져서는 안 돼요.
“경제 민주화 미루면 ‘제2 일본’ 된다”
약력:1940년 서울 출생. 1964년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1972년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 1973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1981년 11, 12대 국회의원(민정당).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 1990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1992년 14대 국회의원(민자당). 2004년 17대 국회의원(민주당). 2008년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2011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