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서는 항상 세 투자 주체가 물고 물리는 혈전이 벌어진다. 바로 개인 투자자, 기관투자가, 외국인 투자자가 그들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때로는 우직하게, 때로는 민첩하게 투자 패턴을 바꿔가며 개인 투자자와 기관투자가의 넋을 쏙 빼놓곤 한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가를 큰 폭으로 들어올리기도 하는 것은 물론 위기가 발생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팔아치우며 변동성을 키운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의 30%를 움켜쥐고 있는 ‘알다가도 모를’ 외국인 투자자들의 비밀을 파헤친다.
[증시 ‘큰손’ 외국인 투자자]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지난 1월 말 기준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상장 주식을 380조8000억 원어치 가지고 있다. 전체 시가총액의 30.8%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은 항상 국내 주식시장에 가장 중요한 투자 주체로 꼽혀 왔다. 이유는 이들이 수급의 주체, 즉 추세의 변곡점에서 유입과 유출을 지속하며 국내 증시의 방향성을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외국인들은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각에서는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를 이끄는 이른바 ‘외국인 장세’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덕분에 국내 증시도 6개월 만에 2000선을 탈환하기도 했다.

실제로 외국인은 작년 말부터 꾸준히 한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3월 5일 금융감독원이 밝힌 ‘2월 외국인 증권 투자 동향’을 보면 올해 2월 중 외국인은 3조8469억 원어치의 상장 주식을 순매수했다. 지난해 12월 3346억 원어치의 상장 주식을 순매수한 이후 3개월째 ‘매수 행진’을 이어간 것이다. 1월에는 무려 6조2833억 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며 올해 들어서만 모두 10조 원어치가 넘는 상장 주식을 쓸어 담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국인의 투자 증가는 미국 경기 회복 기대감, 유럽 재정 위기 완화에 따른 위험 자산 선호 현상 강화, 글로벌 유동성 증가 등에 주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분석처럼 외국인들은 한동안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를 늘려갈 것이라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영준 SK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유럽중앙은행(ECB) 등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경기 부양을 위해 통화 완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통화 완화 정책이 6개월 정도의 시차를 가지고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고려하면 2012년 글로벌 유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는 곧 2012년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 유입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증시 ‘큰손’ 외국인 투자자] 그들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외국인 매수세 당분간 이어질 것’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외국인들이 증시의 주도권을 쥘 때 국내 투자자들은 치솟는 주가지수를 바라만 보고 있다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또 반대로 금융 위기 등 부정적 이벤트가 발생해 이들이 급격히 떠나면 증시의 변동성이 높아지며 국내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때도 많았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장기적으로 성장할 기업에 투자하기보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지수 상승에 도박하듯이 투자해 단기 차익을 내려는 성향이 짙다”며 “국내 증시가 고평가됐다고 판단하면 자금 회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같은 외국인 투자자라고 할지라도 어떤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 증시를 이끌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2월 말 기준 3만3630곳에 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해 시장에서는 지역에 따라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눈다. 영미계, 서유럽계, 중동 및 아시아계, 조세 회피 지역 등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영미계는 비교적 장기 투자를 선호한다. 워낙 투자 금액 자체가 크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급격한 유출입을 해가며 시장을 잘 흔드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영미계 중에서도 영국계 자금은 미국계 자금보다 좀 더 위험성이 높은 운용을 하는 편이다. 증권업계에선 최근 영국 자금이 한국 증시에 많이 투자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자금은 단기성 자금이 대부분으로 시장 불안 요소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룩셈부르크 등 조세 회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자금들도 유심히 봐야한다. 이들은 ‘헤지 펀드’다. 적은 돈을 가지고 ‘레버리지’, 즉 빚을 내서 막대한 금액을 일거에 쏟아 붓는 이들은 말 그대로 ‘변동성의 주범’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중동 및 아시아계의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 및 아시아계는 매우 안정적으로 초장기 투자를 하는 편이다. 이유는 이들 펀드의 자금원이 주로 사우디아라비아나 중국 등의 정부가 운용하는 국부 펀드들이기 때문이다. 김영준 애널리스트는 “중동 및 아시아계 펀드는 2008년 이후 월평균 3300억 원어치의 순매수를 기록하며 우리 증시의 작지만 든든한 우군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취재=이홍표·장진원 기자
전문가 기고=김영준 SK증권 애널리스트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