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올해로 80세를 맞으셨다. 광양군에서 태어나 그 지역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전남대 농대를 졸업하셨다. 이후 순천농업전문대학에서 평범한 교수로 지내시다가 순천대로 승격된 후 초대 총장을 맡으셨다.

보통의 남자라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아버지의 사회적 성장 과정을 보고 자란 나는 더더욱 영향을 많이 받았다. 더욱이 어릴 때부터 어떤 말이든 가감 없이 받아들였던 내 기질과 맞물려 아버지가 하신 말씀들은 언제나 내 삶의 방향타이자 비옥한 토양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아버지의 ‘일요일 훈화’다.

교육자이셨던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우리 삼형제를 모아 놓고 학교 훈화 같은 말씀을 주셨다. 마치 선생님께서 어린 제자들을 앉혀 놓고 인생의 방향을 가르치는 모습처럼 말이다. 아버지의 일요일 훈화 중 필자의 기억에 가장 깊이 남고 가슴으로 다가왔던 말씀은 바로 윌리엄 클라크의 ‘소년이여 대망을 가져라’였다. 이 말은 아버지의 훈화에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 주제다. 이 말씀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가슴속에 희망이 넘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도 항상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해 왔다.
[아! 나의 아버지] ‘일요일 훈화’의 추억
아버지의 일요일 훈화 중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것은 “사람은 태어난 순간에 항상 고뇌를 짊어지는 존재이므로 놀 기회가 있을 때 잘 놀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즐거움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어릴 때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이 말씀에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회식이나 작은 모임에도 솔선해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고 의사가 된 지금까지도 비교적 낙천적인 성격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또 아버지는 항상 작은 것이라도 주변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셨다. 이런 점은 내게도 그대로 전해져 따뜻하고 넓은 마음으로 환자를 보살피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의대 진학을 생각했던 내게 의대 진학을 권유했고 오늘날 피부과 전문의로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도 아버지였다.

이렇게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살아 온 내가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 못지않게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버지의 건강을 직접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의대 졸업 후 한번은 평상시 의학 지식을 토대로 아버지에게 심장 검사를 권유했는데 다행히 조기에 관상동맥질환을 발견했고 그 후 의과 동기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신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는 말은 비단 외모만을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행동·습관·태도, 삶의 모습 같은 아버지의 일상은 그대로 아들에게 전해진다. 의사로서 환자를 열심히 진료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은 비록 길은 다르지만 교육자로서 항상 넘치는 에너지로 주변과 함께했던 아버지의 과거 모습 그대로다. 예전에는 필자가 아버지의 희망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여든이신 아버지가 내 희망이다.

김영구 연세스타피부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