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된 여론에 백기를 든 것일까. BAT코리아가 담배 ‘보그’의 가격을 원상 복귀하기로 했다. 최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1갑에 2700원인 ‘보그’ 가격을 3월 12일부터 2500원으로 인하하겠다고 신고했다. BAT코리아는 지난해 4월 던힐과 보그 등 자사 담배 가격을 1갑에 200원씩 인상한 바 있다. 결국 1년 만에 가격이 원상회복된 셈이다. 외산 담배 업체들이 담뱃값을 올렸다가 다시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외산 담뱃값 다시 내리는 이유? 1년 만에 인하…매출 급감·여론 악화
외국산 담뱃값 인상 러시는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됐다. BAT코리아·JTI코리아·필립모리스 등 외국계 담배 업체들은 작년부터 담뱃값을 잇달아 인상해 왔다. 지난 2월 필립모리스는 말보로·팔리아멘트·라크를 2500원에서 2700원으로 200원 올렸고 버지니아슬림도 2800원에서 2900원으로 100원 인상했다.

지난해 4, 5월에는 BAT코리아가 ‘던힐’과 ‘켄트’, JTI코리아가 ‘마일드세븐’ 가격을 각각 200원씩 올렸다. 외국계 담배 업체 가운데 ‘빅3’가 한국 시장에서 ‘가격 인상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국내 담배 시장에서 외국계 점유율은 약 40% 정도다.

외국계 담배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내세운 이유는 동일하다. 필립모리스는 담뱃값 인상 이유로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각종 원·부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을 들었다. 지난해 BAT와 JTI가 밝힌 가격 인상 원인과 같은 명분이다.



외국계 ‘빅3’ 가격 인상 전략 채택

하지만 외국계의 담뱃값 인하 명분은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담뱃값의 구성을 살펴보면 과연 200원 인상이 합당한지에 대한 의혹이 든다는 주장이 소비자단체 등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담뱃값은 2500원을 기준으로 한 갑에 총 1549.5원의 제세 기금이 부과돼 조세율이 62%에 달한다. 여기에 판매업자 마진 10%를 빼면 제조업자의 몫은 28%다. 즉 2500원에서 700원을 담배 제조업체가 가져가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200원 인상은 28.5% 인상이란 계산이 나온다.

가격 인상이 원자재 값 상승에 따른 것이라는 업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억측 논리”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담배 업체의 한 관계자는 “수입 잎담배보다 2배 이상 더 비싼 국산 잎담배를 전량 구매해 사용하는 KT&G와 비교하면 수입 잎담배만 사용하는 외국계 담배 업체의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구나 외국계 담배 업체들은 해마다 이익이 늘어났다. 필립모리스는 영업이익이 2008년 847억 원, 2009년 947억 원, 2010년엔 1332억 원이다. 3년간 156%의 영업이익 신장률을 기록했다. 수익 악화를 내세우며 가격 인상에 나서기엔 빈약한 논리라는 것이다. BAT코리아도 최근 3년간 매출액 1조7863억 원, 순이익 907억 원을 기록했지만 가격 인상을 단행,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일부에선 다국적 담배 업체들의 가격 인상을 두고 투자자들의 배당금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이들 ‘빅3’의 배당금(2010년 942억 원, 2009년 729억 원)과 판매 대금의 8.5%가 로열티(2010년 418억 원, 2009년 367억 원) 명목으로 해외에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BAT코리아가 담뱃값을 전격적으로 내린 진짜 이유는 뭘까. 담배 업계는 매출 급감과 악화된 여론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BAT코리아는 가격 인상 직후인 지난해 5월 2주 차부터 담배 판매량(훼미리마트 기준)이 예전보다 28.1%나 급락하는 등 심각한 매출 부진 사태에 봉착했다. 이에 따라 주력 제품 가운데 하나인 ‘보그’의 시장점유율이 지난 2월 0.78%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는 가격 인상 직전인 지난해 3월의 1.21%보다 크게 낮아진 비율이다. BAT코리아뿐만 아니라 JTI코리아도 지난해 5월 마일드세븐 가격을 200원 올린 뒤 판매량이 감소했다. 필립모리스 역시 2월 10일 말보로·팔리아멘트·라크·버지니아슬림 등 일부 담뱃값을 1갑에 100~200원씩 인상한 뒤 실적이 나빠진 실정이다.
<YONHAP PHOTO-0223> A man smokes on a street in Valparaiso, about 75 miles (121 km) northwest of Santiago, May 31, 2010. Chilean congress is planning to tighten the existing anti-smoking law prohibiting smoking in closed areas and is also planning to raise the tax on tobacco, both to help fund reconstruction after an 8.8 earthquake struck the country on February and to seek a healthier Chile, a measure the government estimates will raise an additional $990 million in revenue over four years. Tobacco is the second major cause of death in the world, currently responsible for the death of one in 10 adults worldwide, or about 5 million deaths each year, said the WHO. REUTERS/Eliseo Fernandez (CHILE - Tags: HEALTH)/2010-06-01 05:11:3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man smokes on a street in Valparaiso, about 75 miles (121 km) northwest of Santiago, May 31, 2010. Chilean congress is planning to tighten the existing anti-smoking law prohibiting smoking in closed areas and is also planning to raise the tax on tobacco, both to help fund reconstruction after an 8.8 earthquake struck the country on February and to seek a healthier Chile, a measure the government estimates will raise an additional $990 million in revenue over four years. Tobacco is the second major cause of death in the world, currently responsible for the death of one in 10 adults worldwide, or about 5 million deaths each year, said the WHO. REUTERS/Eliseo Fernandez (CHILE - Tags: HEALTH)/2010-06-01 05:11:38/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인상 후 매출 급감으로 곤혹

올 들어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월 말 담배·유통 업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BAT코리아의 담배는 2월 2주 차(11~17일) 편의점(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 기준) 판매량이 가격 인상 전인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한 주간 판매된 것보다 16.4% 줄었다. 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의 전국 5800여 개 점포 판매량을 보면 필립모리스의 1월 4주 차 판매량은 223만2862갑이었으나 이달 2주 차에는 186만6147갑으로 감소했다.

점유율이 하락하자 BAT코리아는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가격 환원이라는 카드를 뽑아들게 된 것이라는 담배 업계의 분석이다.

매출 급감과 함께 여론 악화도 담뱃값 인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애연가들은 담배처럼 중독성이 강한 기호품을 충분한 설명도 없이 대폭 값을 올리는 행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해 왔다. (사)한국담배판매인회가 전국 흡연자 1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소비자들의 불만을 엿볼 수 있다. 필립모리스의 담배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가격이 인상되면 다른 담배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또 응답자의 78.4%는 외국계 담배 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외국계 담배 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분노하는 네티즌들과 소비자들은 담뱃값 인상에 항의하는 1만 명 서명 운동을 시작했고 인터넷에는 가격 인상을 비난하고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외국계 담배 업체들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은 사회 공헌에는 무심하면서 담뱃값만 올렸다는 점도 한몫했다. 담배 산업은 국민 건강이나 환경 등에서 사회 해악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사회 공헌을 통해 이미지 개선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895억 원의 매출을 올린 필립모리스코리아가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BAT코리아는 지난해 3억1000만 원, JTI코리아는 1억4000만 원에 불과했다.

업계에서는 BAT코리아가 보그의 가격 인하로 매출이 증가하면 인기 품목인 던힐을 다시 2500원으로 인하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판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보그의 가격을 내려 시장의 반응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라며 “이번 담뱃값 인하로 매출이 다시 늘어난다면 주력 제품인 던힐의 가격도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들도 1년 만에 담뱃값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도봉구에 사는 애연가 K(45) 씨는 “가격을 인상했다가 판매율이 떨어지고 소비자가 반발하자 다시 인하하는 것은 소비자를 물로 보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