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정식 발효된다. 한미 FTA는 메가톤급 이슈다.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점하는 거대 시장이다. 한국의 무역 상대국으로도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그만큼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한미 FTA로 자동차·전자 같은 수출 주도 산업엔 해가 떴다. 반면 농업·제약 같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종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는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와인·육류 등 일부 식품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지만 의약품의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 효과부터 따져보자. 한미 FTA의 가장 큰 효과는 공산품 관세 철폐다. 한미 양국은 협정 발효 뒤 10년에 걸쳐 거의 모든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양측이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공산품은 각각 8434개, 7094개에 달한다. 협정 발효 3년 이내에 한국은 94.1%, 미국은 92.2%의 품목에 붙는 관세를 없앤다. 5년 내 이 비율은 각각 95.5%, 96.9%까지 높아지게 된다. 수출 대기업은 한층 강화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된다.

자동차 분야 수출액의 37.9%를 차지하는 자동차 부품 업계는 한미 FTA의 수혜를 가장 크게 볼 업종으로 꼽힌다. 최대 12.5%에 이르는 미국 측 관세가 발효 즉시 없어진다. 현대모비스·만도 등의 수출길이 열린 셈이다.
평택항 기아자동차 전용부두에서 수출하기 줄지어 서있는 차량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701..
평택항 기아자동차 전용부두에서 수출하기 줄지어 서있는 차량들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701..
가장 이익 보는 업종은 자동차 부품

완성차 업계는 2.5%의 미국 측 관세 철폐 시기가 4년 뒤여서 당장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관세가 없어지면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 업계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자 부품 및 완제품 대부분이 무관세 혜택을 보고 있어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한국에서 생산하는 냉장고·세탁기 등과 고급 가전제품은 한미 FTA로 관세 혜택을 받는다. 미국 시장의 관세는 에어컨·세탁기·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1~2%, TV는 5% 정도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이 90%를 차지하는 섬유산업은 평균 13%의 미국 관세가 사라져 15년간 연평균 1억 달러 정도의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농업과 제약업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체리와 오렌지 등 농산물과 쇠고기 등 육류가 몰려들어 국내 농가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지난해 8월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FTA 발효로 예상되는 농업 분야의 누적 손실액은 15년간 12조2000억 원이다. ‘농업을 희생한 FTA’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특히 축산업의 생산량은 15년간 7조 원이 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축산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의약품(제약 산업) 분야도 가장 큰 피해자로 지목받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 도입으로 제네릭 의약품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 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허가·특허 연계 조항은 3년간 유예되기는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면 오리지널 의약품 품목을 보유한 업체들이 제네릭 의약품 출시를 지연하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한미 FTA 체결로 국내 의약품 생산이 연평균 686억 원에서 1197억 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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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손해보는 업종은 축산업

서비스 시장도 대폭 개방되면서 시장을 내줘야 한다. 금융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진출을 받아들여야 한다. 법률·회계·세무 분야는 단계적으로 개방이 추진된다.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둔 다국적 로펌 ‘맥더못 윌 앤드 에머리’가 서울사무소 개설을 발표하는 등 7~8개 미국 로펌이 국내 진출을 준비 중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7~8개 미국 로펌에서 한국 사무소 개설 절차나 외국법 자문사 등록 절차, 준비 서류 등을 문의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국내 사무소를 개설한다고 해서 미국 로펌이 바로 모든 법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3월 14일까지는 1단계 개방으로 미국법과 관련한 자문만 할 수 있고 2단계로 2017년 3월 14일까지는 국내 법인과 제휴해 국내법 사무를 일부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후 3단계 개방에 들어가서야 국내 변호사를 고용해 국내 소송 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

관세가 사라지면서 미국산 소비 제품의 가격도 낮아지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혜택을 본다. 대표적인 미국산 제품은 와인이다. 미국산 와인에 붙는 15%의 관세는 발효 즉시 사라진다. 업계에서는 10% 안팎의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칠레와 유럽산이 주를 이루는 국내 와인 시장에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산 맥주 관세 30%도 7년 안에 철폐된다. 수입 맥주 시장의 가격 인하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캘리포니아산 건포도(21%), 캘리포니아산 아몬드(8%), 체리(24%)도 발효 즉시 관세가 사라져 가격 인하가 기대된다.

미국산 쇠고기의 가격도 더 저렴해진다. 현재 40%인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는 15년에 걸쳐 사라진다. 돼지고기(22.5~25%) 관세도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지금도 국내산보다 싼 미국산 쇠고기·돼지고기 가격이 더 싸진다는 얘기다. 슬라이스 치즈에 부과되는 관세 36%도 없어진다.

2000㏄ 이상 미국산 자동차 가격도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산 수입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00㏄ 이상 차량에 대한 관세율이 지금보다 4% 포인트 내려가고 개별 소비세율도 2% 포인트 인하되기 때문이다.

의류(13%)와 가방(8%)에 붙는 관세는 발효 즉시 사라지고 화장품(8%) 관세도 10년에 걸쳐 없어진다. 대부분 미국 브랜드들이 일부 모델만 미국에서 직접 제조하고 상당수는 아시아·남미 등 제3국 공장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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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