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고급화…일본인 고객 열광

‘한류 명소’로 떠오른 신오쿠보 K프라자
일본 도쿄의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가 관광 명소로 급부상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신오쿠보를 ‘한류 유원지’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한국 제품을 쇼핑하고 한국 식당을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 유원지나 관광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오쿠보의 중심인 도쿠사이도리 거리는 주말은 물론 평일 낮에도 걸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인파로 북적댄다.

신오쿠보는 김·라면·막걸리 등 한국 식품이나 한류 스타들의 사진집 등을 파는 매장과 한국 전통 음식점들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쇼핑 가게와 음식점들이 소규모인 데다 허름하다. 음식의 수준도 떨어진다는 것이 현지 교포들이 전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한국 재래시장의 먹자골목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한류 붐이 주춤해지면 신오쿠보의 인기도 금세 시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오쿠보에서 사업을 하는 한인들 사이에서 “(신오쿠보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 12월 1일 신오쿠보의 변화를 상징하는 일이 일어났다. 신오쿠보 중심가 K프라자 빌딩에 그랜드파크(지하 1층), 총각네(1층), 스킨가든(2층) 등 대형 몰 3개가 한꺼번에 문을 열었다. K프라자는 기존 신오쿠보의 한국 가게와 차원이 다르다. 우선 매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다. 1개 층이 528.9㎡(약 160평) 규모다.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도 백화점처럼 세련됐다. 쉽게 설명하면 재래시장에 백화점 같은 매장이 들어선 셈이다.

K프라자의 브랜딩 및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 정인숙 브랜드앤브랜더스(구 브랜드웍스) 대표는 “(K프라자를)한국 문화의 체험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소개했다. 정 대표는 기존 신오쿠보 거리에 대해 “거리만 있고 브랜드는 없는 곳이었다”거나 “타운 형성도 안 돼 있고 형성된 문화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택시 타고 ‘K프라자로 갑시다’라고 하면 통할 수 있는 곳, 한인타운을 대표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추구했다”고 덧붙였다. 매장 내부 디자인 콘셉트도 ‘뉴(New) 코리아’로 정했다. 정 대표는 “일본인도 한국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려고 했다”고 밝혔다.
‘한류 명소’로 떠오른 신오쿠보 K프라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기자가 방문한 12월 중순 K프라자는 말 그대로 북새통이었다. 막걸리·김·김치 등 한국 식품을 파는 코리안푸드마켓 ‘총각네’는 매장 내에서 옮겨 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로 손님들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인테리어도 국내 백화점 식품 매장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고급스러웠다. 손님들이 매장 곳곳에 있는 시식 코너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황병욱(46) 총각네 사장은 “주말엔 하루 1만 명의 쇼핑객이 들른다”며 “이 중 약 30%가 물건을 구입한다”고 했다. 쇼핑객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층이다. 총각네의 콘셉트는 “백화점 규모의 매장에서 백화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가격은 일반 마트 수준”이라고 황 사장은 밝혔다.

매장에서 만난 일본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주부인 사토 요시미 씨는 “제품 종류가 많고 진열도 잘 돼 있다”며 “사람이 너무 많아 매장을 찬찬히 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친구와 함께 구경을 왔다는 요시모토 마유미 씨도 “기존에 신오쿠보에서 보지 못했던 물품이 많았다”며 “한국에 가지 않아도 한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황 사장은 20대 초반에 일본에 건너가 한국 식품을 일본에서 판매하는 동아트레이딩을 설립해 크게 성공한 사업가다. 동아트레이딩이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물품은 김·고춧가루·유자차·김치·막걸리 등 600여 종으로 일본 내 1만2000여 개 음식점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이 50억 엔에 달할 정도로 일본 내 대표적인 한인 사업가다.

황 사장은 신오쿠보 중심지에 대형 식품 매장을 연 까닭을 묻자 “한국 식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 식품이 맛있고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다면 ‘총각네’를 지방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꿈은 일본 전역에 ‘총각네’를 개설하는 것이다.

2층 스킨가든도 여성 손님들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루 5000여 명이 방문하고 일 매출은 150만 엔(2200만 원) 정도”라는 것이 매장 주인인 신상윤(46) 사장의 귀띔이다. 고객층은 20~30대와 50~60대가 50 대 50꼴이다. 스킨가든은 밝고 은은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아래 백화점 화장품 매장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 인테리어가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손님들의 휴식 공간인 카페와 6개의 화장실이 이색적이었다. 일종의 차별화 전략으로 신오쿠보 거리에 화장실과 휴식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신 사장은 1989년 일본에 유학을 왔다가 눌러앉았다. 도쿄 주재 한국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1999년 김 공장을 설립하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을 주업으로 삼은 이유를 묻자 “당시 가장 많이 팔리는 한국 식품이 김과 김치였다”고 회고했다. 도쿄 인근 사이타마 현에 있는 김 공장은 연간 4억8000만 엔(약 72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알짜배기다. 이번에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것에 대해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상품은 인삼·김치·김·화장품 등의 순으로 바뀌고 있다”며 “일본인들이 한국 관광을 다녀오면서 가장 많이 사오는 선물이 화장품”이라고 설명했다. 신 사장은 ‘일본 속 한국’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모두 한국인으로 채용했다. 직원들의 서비스 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신 사장은 “한국 백화점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지하 1층의 그랜드파크는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집과 브로마이드·음반·드라마CD 등을 팔고 있다. 이 매장을 이용하는 연령층은 다양하다. 김덕홍(41) 그랜드파크 사장은 “60대 노인도 장근석 사진집을 사러 온다”라며 “이 노인으로부터 장근석의 사진집을 구할 수 있어 너무 고맙다는 감사 e메일도 받았다”고 했다.
‘한류 명소’로 떠오른 신오쿠보 K프라자
김 사장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에 건너가 2004년 신오쿠보에 한국 식품 매장을 열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08년 신오쿠보역 앞에 496㎡ 규모의 그랜드파크로 큰 성공을 거뒀다. 신오쿠보뿐만 아니라 요코하마와 후쿠오카에도 그랜드파크를 열었고 한국 식당과 한국 식품점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전체 매출액은 연간 20억 엔(약 300억 원)에 달한다.

일본에 한류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욘사마로 통하는 배용준 주연 드라마가 일본에 방영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주로 50~60대 여성들이 열광했다. 그렇지만 2007~2008년을 거치면서 10대부터 70대까지 전 세대가 한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류 붐을 활용한 비즈니스는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K프라자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한 백상철 B&플래너스(구 푸드플래너) 대표는 “기존 한류 비즈니스의 문제점은 상품 개발과 공급 시스템이 없었던 것”이라며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한류 상품의 유통 경로의 체인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대표는 “K프라자의 성공은 일본의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중국·동남아 지역에서도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도쿄=글·사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