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가격 낮춰 신고’…소송 진행 중


윈저·조니워커 등 유명 위스키를 수입, 판매하는 디아지오코리아가 또다시 거액의 세금 폭탄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작년 9월 30일 서울세관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는 디아지오코리아에 대해 2008년 3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수입된 윈저 위스키의 수입 신고 가격에 대해 약 2167억 원의 추가 관세 부과를 확정했다. 디아지오코리아가 주력 제품인 윈저의 수입 가격을 저가로 신고해 거액의 세금을 포탈했다는 것이다.
[단독] 윈저, 또 2167억 원 세금 폭탄 맞았다
과세전적부심사는 과세 당국이 납세자에게 미리 세금 부과 사실을 알려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는 세관장을 위원장으로 내부 인사 2명, 변호사·관세사 등 외부 인사 4명을 위촉해 구성한다.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의 결정은 곧 관세청의 최종 결정이다. 이미 3개월 전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지만 그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다. 관세청과 디아지오코리아 양측이 모두 입을 닫고 있었다. 디아지오코리아 측 관계자는 “회사 내에서도 일부만 알고 있을 정도”라며 “워낙 충격이 큰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디아지오코리아 관계자의 “충격이 크다”는 말은 엄살이 아니다. 디아지오코리아가 이번에 부과 받은 추가 과세는 두 번째다. 관세청 서울세관본부는 이미 2009년 12월 디아지오코리아에 1940억 원 납부를 통보했다. 디아지오코리아가 2004년 2월부터 2007년 6월까지 39개월 동안 위스키 윈저의 수입 가격을 낮췄다는 것이 과세 이유였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이때 부과된 1940억 원은 이미 납부한 상태다. 이로써 디아지오는 두 차례에 걸쳐 4000여 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한 셈이 됐다. 추징 세금 4000여 억 원은 국내에서 초유의 일이다. 관세청 40년 역사상 최초다. 디아지오코리아의 2010·2011년 결산(6월 결산 법인)에 따르면 연간 매출액은 3973억 원이다. 한 해 매출액을 몽땅 세금으로 내야 될 형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0년 10월 이후 수입 물량분에 대해서도 추가 세금을 추징당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추징금이 4000억 원에 그치지 않고 5000억~6000억 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디아지오코리아 측은 어떤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자가 여러 차례 디아지오코리아 홍보팀에 관련 사실 확인을 요구했지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업이 정부와 싸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며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관세청이 디아지오코리아에 의혹을 가진 것은 2007년 8월께로 알려져 있다. 2004년 디아지오코리아의 심사를 담당했던 관세청 직원이 1억 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 기존 심사 결과를 의심하기 시작한 서울세관이 전격적으로 재심사 착수에 들어갔고 2008년 2064억 원의 세금을 추징한 것이다. 이에 대해 디아지오는 불복했다.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를 거쳐 조세심판원 심판청구 등을 통해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일부 금액만 삭감된 채 1940억 원의 추징금이 최종 확정됐다.

디아지오코리아에 대한 관세청의 주장은 간단하다. 이 회사가 다른 위스키 수입 업체보다 현저히 낮은 수입 가격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영국 디아지오의 100% 자회사다. 이들의 수입 거래 가격, 즉 ‘이전가격’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디아지오코리아 측은 영국 본사에서 들여온 위스키에 대한 관세를 납부하는 과정에서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신고해 계산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디아지오코리아가 신고한 수입 가격은 경쟁 업체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세관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 3개월 전 결정

수입 물품의 과세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복잡하다. 현행 관세법에 따르면 수입 물품 과세가격은 ①해당 물품 거래 가격 ②동종·동질 물품 거래 가격 ③유사 물품 거래 가격 ④국내 판매 가격 ⑤원자재 비용과 이윤 기초 산정 가격 ⑥기타 합리적 기준 등에 따라 계산한다. 6가지 방법들은 반드시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가장 먼저 ①번으로 과세하고 ①번이 안 되면 ②번으로 과세한다.

관세청은 디아지오코리아가 관세를 포탈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제조원가를 낮춰 신고하는 것으로 판단했고 수입 물품 과세가격 계산 방식 중 ⑥번 ‘기타 합리적 기준’으로 관세를 추징했다는 것이다.

디아지오코리아의 경우 ①, ②, ③, ④번 적용이 어려웠다는 것이 관세청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①번인 해당 물품 거래 가격은 특수 관계자 거래(디아지오와 디아지오코리아)인 관계로 적용이 쉽지 않고 ②번인 동종·동질 물품 거래 가격은 디아지오코리아가 윈저를 독점으로 수입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동종·동질 물품 거래 업체가 없다는 점이 제외된 이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세청이 디아지오코리아가 적용한 ⑤번이 아닌 ⑥번을 적용한 까닭은 무엇일까. 서울세관본부 관계자는 “⑤번으로 하기에는 제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디아지오코리아가 제품 원가에 포함되는 통상적인 이윤과 일반 경비를 상당히 적게 반영했다는 것이다. 특히 양주 가격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숙성 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것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숙성이 오래될수록 맛과 향이 깊어지는 양주의 특성상 숙성 비용이 적잖이 들어간다.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디아지오코리아가 2009년에 1차로 2000억 원 가까운 추가 세금을 납부하라는 관세 당국의 확정 통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가격의 산정 방식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뭘까.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기는 하지만 패하면 추가 과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디아지오코리아는 추징금을 다 내야 할까. 그렇지만은 않다. 관세청의 과세 결정이 내려지면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에 참석해 소명할 기회가 주어진다. 과세전적부심사위원회에서도 같은 결정이 내려지면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할 수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1차 세금 부과 때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냈다.

조세심판원은 재조사 결정을 내렸고 관세청은 이에 따라 재조사를 진행해 일부 금액만 깎은 채 최종 결정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행정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행정소송은 길게는 몇 년을 끌 수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행정소송에 그치지 않고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분쟁해결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어떤 회사
세계 최대 주류 기업 디아지오의 자회사

디아지오코리아는 영국 국적의 세계 최대 주류회사 디아지오의 한국 자회사다. 디아지오코리아의 원조는 1980년 설립된 두산씨그램이다. 1996년 윈저 프리미어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1998년 씨그램사가 두산씨그램 지분을 인수했고 2001년 씨그램사가 디아지오에 매각되면서 씨그램코리아는 디아지오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2002년 7월 사명을 디아지오코리아로 변경했다. 같은 해 조니워커 등을 내놓았다. 디아지오코리아는 2007년 거액의 세금 포탈로 8개월간 영업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지난해 매출액 3973억 원, 순이익 1041억 원을 기록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국내 위스키 시장의 부동의 1위 업체다. 2위는 임페리얼의 페르노리카코리아다. 하지만 잘나가던 디아지오코리아가 약 4000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으면서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