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해 본 한국 신도시의 미래
얼마 전 오사카 중심부로부터 전철로 30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센리 뉴타운을 다녀왔다. 일부러 출근 시간 때인 8시 30분~9시 전후로 방문했다. 오가는 사람들로 바쁜 아침 출퇴근 시간. 하지만 센리 중앙역 주변에 있는 대형 마트와 관공서, 금융회사 등으로 외지에서 출근하는 사람 외에는 센리 뉴타운에서 외지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지하철 역사로부터 5분 거리의 주택가로 들어서니 시내에서 보기 힘든 잔디가 깔린 중형 아파트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들만 한두 명 산책길에 나올 뿐 인기척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961년 오사카 북부권에 조성된 센리 신도시는 일본 최초의 신도시다. 이후 오사카 남부에 센보쿠, 서부에 호쿠세쓰 등의 신도시가 개발됐다. 센리 신도시의 계획 인구는 15만 명이지만 최근 인구수는 이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도쿄권에서도 다마·지바(동부)·쓰쿠바(북부)·요코하마·고호쿠(남서부) 등 신도시가 줄줄이 조성됐다.
일본의 46개 신도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개발 사례로 거론되는 곳은 ‘다마 뉴타운’이다.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이곳은 ‘꿈의 도시’라고 불리며 한국의 신도시 분양 때처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또 한국처럼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가 대거 이동해 가구를 꾸렸다. 다마 신도시의 계획 인구는 34만여 명이지만 현재 인구는 20만 명 선에 불과하다. 꿈의 도시라고 불리던 다마 뉴타운은 현재는 대표적인 일본의 ‘올드타운’이 돼 버렸다.
경기 침체…신도시 집값 회복 힘들 듯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2012년 경제성장률은 3.7%대다. 한국은행과 동일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한국개발연구원(KDI)보다 0.1% 포인트가 더 낮다. 민간과 국책 연구소를 가리지 않고 내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다소 둔화될 것으로 본 예상을 정부도 인정한 셈이다. 한국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유럽발 재정 위기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부진으로 수출 부진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몇 해 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요국의 경제력 비중 추이’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2030년까지는 세계 평균 성장률보다 높겠지만 이후엔 세계 평균을 밑돌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2030년을 정점으로 경제력 비중이 떨어지기 시작해 2040년에는 2.0%로 낮아지고 2050년엔 1.7%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의 신도시는 갈수록 매력을 잃어 가고 있다. 굳이 우리의 신도시로 비유하면 1기 신도시보다 외곽에 있는 김포·파주·청라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조차 국토부의 리모델링 수직 증축 불허와 서울의 부동산 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투자자들의 문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닥터아파트의 조사 자료를 보면 분당·일산·평촌 등 1기 신도시 대형 아파트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집값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08년 2월 22일부터 지난 10월 18일까지 1기 신도시 132㎡(이하 공급 면적) 이상 대형 아파트의 매매가 변동률은 마이너스 19.5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 변동률이 마이너스 2.86%라는 것을 감안하면 신도시의 대형 아파트가 약 7배나 더 하락한 것이다.
서울 대형 아파트(-5.13%), 수도권 대형 아파트(-9.67%)와 비교해도 하락 폭이 2~4배 정도 컸다. 1기 신도시 중 매매가 하락률이 가장 컸던 지역과 면적은 평촌의 198㎡ 이상으로 같은 기간 25.04% 급락했다. 분당 132㎡ 이상~165㎡ 미만 아파트도 21.20% 떨어졌고 분당 165㎡ 이상~198㎡ 미만 집값도 21.17%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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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서울 도심과 신도시 사이에 대규모 보금자리 입주 물량도 예정돼 있어 신도시 침체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민 연령층이 다양하게 뒤섞여 있는 도심과 달리 신도시는 비슷한 연령층이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로 입주하기 때문에 고령화 문제가 단기간에 급속히 나타날 수 있다. 젊은층까지 신도시를 외면하면 빈집뿐만 아니라 빈 상가도 급속히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도시 정책은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구가하고 그에 따라 소득이 증가 일로에 있을 때 효과를 보는 정책이다. 하지만 경기 변곡점이 급속히 꺾이기 시작한 지난 금융 위기 이후 외곽의 새로운 신도시 건설은 기존 신도시의 쇠퇴와 유지비용의 증가를 가져왔다.
경기 침체기에 있는 일본·영국·미국 등 선진국은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신도시 개발보다 도심 재개발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 대도시의 중심 산업은 이미 오래전에 지식 기반 산업으로 바뀌었는데 필연적으로 지식 기반 산업은 도심을 선호하게 돼 있다. 일본 정부는 ‘도쿄의 경쟁력이 일본의 경쟁력’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도심 재개발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 금융 지원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 도쿄에는 롯본기힐스·미드타운 등 도심 곳곳에 초고층 오피스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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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세계적인 투자자들은 신용 위기를 겪으면서 보다 안전하고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도심권 ‘프라임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부동산 시장도 투자금이 몰리면서 경제 호황 직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경기가 침체될수록 상승기를 대비해 상대적으로 일자리와 볼거리, 놀거리가 풍부한 도심에 투자하는 것이 세계적인 대세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인접한 50번가의 고급 주택가 및 허드슨 강변의 고급 콘도, 주상복합 등의 3.3㎡당 매매가는 우리 돈으로 1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가다.
일본의 ‘신도시 외면’ 원인 중 하나는 젊은층이 직장과 가까운 도쿄 도심에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비해 의료·쇼핑·문화 등 편의 시설 이용이 불편한 점도 젊은층의 ‘탈(脫)신도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대중교통비가 비싼 일본과 우리의 신도시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또한 업무지구가 서서히 갖춰지고 있는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와 베드타운이 주가 되는 일본 신도시를 비교하는 것도 빈약한 논리일 수 있다고 반박하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신도시별로 센리 뉴타운처럼 오사카 도심에서 가까운 곳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이 태반이다. 결론적으로 경제성장률 추이가 갈수록 우상향되고 업무 시설이 신도시로 몰려든다면 우리나라 신도시는 분당과 일산을 필두로 부활의 닻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저성장 추이가 고착화된다면 한국의 신도시도 일본 신도시의 전철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 ceo@youand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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