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키 알파이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사우디 원유 생산 시설은 테러 안전지대”
투르키 알파이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약력:1945년생. 1968년 미국 조지타운대 졸업. 프린스턴대·케임브리지대·런던대에서 수학. 1973년 왕실 보좌관. 1977년 정보부장. 2003년 주영국 대사. 2005년 주미국 대사. 2009년 영국 중동 전문지 ‘더 미들 이스트’에서 ‘아랍 최고 영향력 인사 50인’에 선정. 킹파이잘센터 이사장(현).











“사우디아라비아는 친환경적인 에너지 믹스를 달성하려는 각국의 노력에 협력할 것입니다.” 투르키 알파이잘(66)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대전환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태양광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원자력발전소 16기를 짓기로 한 사우디 정부의 계획도 밝혔다.

투르키 왕자는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의 조카로 유력한 차기 외교장관 후보로 꼽히는 거물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조지타운대 동문이며 1977년부터 24년간 사우디 정보부장을 지낸 뒤 영국과 미국 등 핵심국 대사를 두루 거쳤다.
“사우디 원유 생산 시설은 테러 안전지대”
투르키 왕자는 아랍 민주화와 관련해 “이웃 나라들의 변화를 지지한다”며 “이제는 사회적 대격변에 따르는 재건 과정의 혼란과 어려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4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8회 한·중동 협력 포럼에 참석한 투르키 왕자의 발언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최근 중동 지역 정세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10개월 동안 아랍 세계에서 많은 변화가 벌어졌습니다. 중동 지역은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에 들어섰어요. 정부가 흔들리고 새로운 사회 세력이 등장합니다. 기존의 협력 관계가 재조정되고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요. 모든 정책에 대한 새로운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죠.

‘아랍의 봄’으로 몸살을 앓는 나라들이 많은데요.

사우디는 자기 나라의 리더십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하는 아랍 국가 국민들의 강한 의지를 잘 인식하고 받아들입니다. 많은 경우 이들의 변화를 지원하고 있지요. 이상적인 비전에 기초한 사회적 대격변에는 거의 예외 없이 어려운 현실들이 뒤를 이어 나타나죠.

우리는 이러한 과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랍의 봄이 처음 만개한 땅인 튀니지와 이집트는 어렵고 위험한 재건 단계에 들어서 있어요. 두 나라의 경제가 급락하고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과 정치 운동들이 다가올 선거에서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움직이죠. 리비아의 내전과 고조되는 예멘의 폭력 사태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십 년 동안 이룬 발전을 후퇴시켰어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사우디 원유 생산 시설은 테러 안전지대”

사우디 왕국은 중동 지역을 휩쓸고 있는 폭풍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요. 사우디는 압둘라 왕의 확고한 리더십 아래 애국주의가 고조되고 있어요. 아랍 세계의 리더로서 평화롭고 공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지요. 격랑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웃 나라들도 신의 뜻과 사우디의 지원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안전한 해안에 도착할 것으로 믿어요.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사우디 정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육과 시민 참여, 안보, 경제정책에서 일련의 개혁들을 추진해 왔지요. 그것이 좋은 결실을 보고 있어요. 사우디 내에서 그 어느 때보다 나라를 강력하게 하나로 묶는 애국주의 물결이 일고 있죠. 최근 서구 언론에서 많이 보도한 ‘분노의 날’이 좋은 사례예요. 많은 시위대가 왕국을 에워쌀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시위대는 없었어요. 분노나 폭력이 없는 고요의 날이었죠. 우리는 이웃 나라들과 다르게 애국주의의 발흥 속에서 그 자신의 ‘사우디의 봄’을 경험하고 있어요.

중동은 세계 최대의 원유 공급 지역인데요.
“사우디 원유 생산 시설은 테러 안전지대”
중동의 안정과 안보는 글로벌 에너지 문제에 곧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일차적으로는 전 지구적인 에너지 공급망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에요. 아랍 걸프만의 다른 나라들도 중요한 원유 공급자로 남아 있죠. 송유관과 수송 항로가 중동의 갈등 지역과 분쟁 지역을 가로질러요.

이 지역의 안정은 원유 시장과 원유 가격에 핵심 변수 역할을 합니다. 세계 거의 모든 경제권에 불가피하게 영향을 미치죠. 세계 에너지 시장을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또 다른 형태의 전환을 목격하게 됩니다. 유럽과 미국이 중요한 에너지 소비자로 여전히 남아 있지만, 글로벌 수요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기 시작했거든요.

대안 에너지 확산 움직임은 어떻게 보십니까.

거의 모든 나라들이 에너지 독립성을 강화하고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믹스를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이외의 대안 에너지를 활용하기 시작한 거죠. 사우디 쪽에서 보면 이는 에너지 독립(independence)이 아니라 에너지 상호의존(inter-dependence)에 관한 겁니다.

경제와 환경 모두에 좋은 방향을 선택해야죠.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각 나라의 현명한 목소리들이 그들의 정부를 설득해 다양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에 도달하도록 하는 거예요. 사우디는 이를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사우디의 경제 전망은 어떻습니까.

사우디는 세계 원유 매장량의 25%, 세계 잉여 생산능력의 7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향후 5년간 매년 평균적으로 2500억 달러의 원유 매출을 예상합니다. 올해에는 원유로 3000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보이죠. 정부가 국민 복지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고 경제성장과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요.

현재 약 6000억 달러의 외화보유액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를 계속해서 확충해 나갈 계획이죠. 태양광 기술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요. 현재의 원유 수출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내 에너지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죠. 사우디 전체에 1000억 달러를 투입해 원자력발전소 16기를 지을 예정이에요. 향후 10년 내에 원자력이 국내 에너지원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원유 생산 시설의 안전 문제는 어떻습니까.

사우디의 원유 생산 인프라는 각종 공격에서 안전한 것으로 이미 검증됐습니다. 안전과 감시에 많은 투자를 했을 뿐만 아니라 3만5000명의 강력한 특수군을 창설했지요. 이 부대는 사우디 전역에서 모집해 미군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어요. 2005년만 해도 이런 게 존재하지 않았죠. 이들은 대내외적인 위협에 대응해 에너지 시설을 지켜내는 매우 특별한 임무를 맡고 있지요.

테러리즘의 위협은 여전하지 않습니까.

테러리즘은 여전히 중요한 위협으로 남아 있습니다. 음모를 꾸미는 것은 알카에다만이 아니에요. 새롭게 등장하거나 재등장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있어요. 정치적 역학 관계의 변화가 만든 권력 공백을 틈타 이들이 움직입니다. 리비아·예멘·튀니지·이집트·시리아처럼 약화된 통치 상태에서 테러리스트들이 뿌리를 내리고 극단적·무정부적인 행동들을 자행하죠. 사우디는 동맹국들과 협력해 그릇되고 파괴적인 목적을 명분으로 타인에 대한 극악무도한 폭력 행사를 자신들의 권리로 생각하는 니힐리스트들을 근절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

서귀포(제주)=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