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준비 ‘어디까지’

한국형 헤지펀드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국내 증권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연내에 한국형 헤지 펀드 1호가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가장 큰 이슈는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가 되기 위한 증권사들의 ‘몸집 키우기’다.

지난 7월 금융위원회가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을 진입 자격으로 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대형 IB)’ 제도를 신설해 헤지 펀드의 핵심인 프라임 브로커 업무를 허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프라임 브로커는 헤지 펀드 설립 지원부터 자금 모집, 운용 자금 대출, 주식 매매 위탁 등 헤지 펀드와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 6월 말을 기준으로 자기자본은 KDB대우증권(이하 대우증권)이 2조8606억 원으로 가장 많고 이어 삼성증권(2조8016억 원)·현대증권(2조6893억원)·우리투자증권(2조6287억 원)·한국투자증권(2조4205억 원)순이다. 지난 9월 대우증권이 1조4000억 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데 이어 우리투자증권(6000억 원)·삼성증권(4000억 원) 등이 연달아 유상증자를 단행했고 현대증권까지 유상증자를 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0월 20일 현재 프라임 브로커리지 서비스(PBS)가 가능한 증권사는 네 곳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증권사 ‘빅5’ 중 남은 한국투자증권도 유상증자를 계획 중이라고 밝힌 상태다.
프라임 브로커리지 위한 유상증자 ‘착착’
한국형 헤지 펀드 시장 선점에 역량 집중

지난 10월 18일 현대증권은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 등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한 운영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우선주 7000만 주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5950억 원 규모다. 이번 유상증자 후 현대증권의 자기자본은 6월 말 기준 2조5683억 원에서 3조1463억 원으로 늘어나 대형 IB(Investment Bank)의 최소 자격 조건인 자기자본 3조 원을 갖추게 된다.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4조 원이 훌쩍 넘는 자기자본 규모를 확보한 대우증권은 자본금에서부터 앞서나가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대우증권 측에 따르면 “PBS 사업을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났다”고 자신한다. 대우증권 글로벌 마켓 이경하 이사는 “PBS에 대비해 지난 몇 년간 철저하게 준비를 마쳤기 때문에 퀄리티에 있어서는 업계 1위를 자신한다”고 말했다.

최근 자산운용사들의 프라임 브로커 선정 작업이 한창인 것과 관련해서도 이 이사는 “주요 운용사들의 (프라임 브로커 선정을 위한) 공식적인 프레젠테이션(PT) 요청에서도 우리는 빠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이르면 1~2주 안에 한두 개 회사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면에서도 대우증권 측은 업계 선두를 확신하고 있다. 현재 11명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우증권은 확정 후 확대 개편을 통해 인력을 확충할 계획이다.

우리투자증권 측도 PBS 분야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우리투자증권 측은 “2007년 업계 최초로 주식 대차 업무를 시작해 2009년 1월 프라임 서비스 그룹으로 그 역할을 확대한 후 본격적 PBS 시장 활성화에 대비해 왔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해외에 헤지 펀드 설립을 통해 운영과 관련된 노하우를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자회사 설립 등을 통해 국내 헤지 펀드 운용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우리투자증권 측은 “현재 헤지 펀드 운용 방식으로 관련 상품들을 운용하고 있는 대안 투자(AI) 그룹을 중심으로 스핀오프(기업 분할) 방식을 통해 헤지 펀드 운용 자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AI 팀을 만들고 재간접 헤지 펀드 운용 경험이 있는 글로벌 IB 출신 인력 8명을 확보하는 등 헤지 펀드 시장을 준비해 온 삼성증권 측은 “지난 7월 프라임 브로커리지팀을 신설하고 관련 사업을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국내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사전 마케팅을 시작했으며 올해 말까지 전산 인프라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다. 그러나 헤지 펀드 직접 운용은 서두르지 않을 방침이다. 직접 운용에 있어서는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운용 부문의 트레이딩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도 “대형 IB 요건인 자기자본 확충을 위해 지주사 차원의 자금 조달 후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3조 원 요건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밝혀 PBS 사업 진출 의사를 확고히 했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국내 헤지 펀드 시장에 대비, PBS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조직을 3년 전부터 구성해 준비해 왔다”며 “한국형 PBS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증권 대차와 신용 공여, 펀드 재산의 보관 관리 및 청산 결제 업무 등 PBS를 제공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여의도 증권가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603..
여의도 증권가 /김병언 기자 misaeon@ 20110603..
“초기 PBS 사업은 제한적일 것”

이처럼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PBS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것과 관련해 자본시장연구원 노희진박사는 “초기 PBS 사업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그러나 증자를 통한 대형화로 우리 증권업계가 대형 IB로 나가는 단초가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형 IB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노 박사는 “금융시장 균형 차원에서도 그간 은행에 비해 증권의 규모가 작았다”며 그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의 국제화로 외국과 경쟁해야 하고 또 외국 시장으로도 진출해야 하는데 PBS를 계기로 대형 IB가 만들어져 가능성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형 IB 요건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헤지 펀드 운용 자격 요건인 자기자본 1조 원 이상에 해당하는 다른 증권사들도 헤지 펀드 시장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 4월부터 PBS 팀을 신설해 만반의 준비를 해 온 대신증권 측은 PBS를 위한 자기자본 요건 충족이 안 돼 한때 당혹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유상증자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1월 신설된 전략운용부를 통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한국형 헤지 펀드의 운용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동양종합금융증권·하나대투증권·신한금융투자 등도 자기자본 요건을 위한 유상증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동양종합금융증권 측은 “헤지 펀드가 아직은 수익이 보장된 시장이 아니라 향후 추이를 봐가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라임 브로커리지 위한 유상증자 ‘착착’
PBS뿐만 아니라 해외 헤지 펀드 전문 운용사와의 협약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아직 헤지 펀드 운용 경험이 없는 국내 증권사에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얼마 전 스웨덴에 본사를 둔 북유럽 헤지 펀드 운용사인 IPM과 헤지 펀드 독점 판매에 대한 업무 협약을 맺었고 우리투자증권은 헤지 펀드 시딩(Seeding) 전문 운용사인 프랑스 뉴알파(New Alpha)와 아시아 신생 헤지 펀드 투자를 위한 펀드 조성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투자증권도 재간접 헤지 펀드 전문 운용 회사인 퍼멀그룹(Permal Group)과 한국 헤지 펀드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미래에셋증권 역시 세계적인 운용사 아문디(Amun-d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헤지 펀드 시장의 발달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측은 “헤지 펀드의 발달은 우리 자본시장의 선진화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며 “헤지 펀드의 역기능만 부각되는 오해를 불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이경하 이사는 “한국형 헤지 펀드가 도입되는 2012년 첫해는 3조~4조 원, 3년 이후에는 50조 원 규모의 시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의 답은 헤지 펀드”라고 말했다. 또한 “초기에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금융 당국이 진입 장벽을 높였지만 시장이 활성화되면 나중엔 분명 진입 규정을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