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중국 현지 취재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무서운 질주를 보면 그렇다. 자동차 변방 코리아의 현대·기아차가 세계 자동차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호랑이’들인 폭스바겐·도요타·혼다 등이 현대·기아차를 ‘주적’으로 격상(?)시키고 있을 정도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중국 등 자동차 시장의 ‘메이저리그’에서 ‘후보 선수’의 서러움을 딛고 ‘주전 선수’로 거듭난 비결은 뭘까. 한·미·중 3국 현지 취재를 통해 현대·기아차 성공의 ‘비밀의 문’을 열어봤다.
[현대·기아차] 10년 후 미래
“자동차가 없어 차를 팔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량 공급만 제대로 된다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이 팔 자신이 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자동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인더스트리 시티의 현대자동차 딜러점 ‘푸엔테힐스 현대’의 미첼 김 이사는 기자를 보자 하소연한다.
[현대·기아차] 10년 후 미래
쏘나타나 아반떼(미국명 엘란트라)를 사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 있지만 공급되는 차가 부족해 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단지 푸엔테힐스 현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다수 딜러점들이 안고 있는 문제다. 미국 현대차 판매 법인 관계자는 “올 들어 현대차를 찾는 고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제때에 차량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현대차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미국 자동차 전문 잡지 워즈오토에 따르면 현대차의 쏘나타와 아반떼는 올해 1~8월까지 현지 승용차 누적 판매 순위에서 각각 8위(15만6580대), 10위(13만3536대)를 차지했다. 현대차의 미국 점유율은 2009년 처음으로 4.2%로 4%대에 진입한 데 이어 올해 8월 기준 5.2%로 5%대의 벽을 넘어섰다.
[현대·기아차] 10년 후 미래
기아차도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기아차는 올 들어 매달 판매 신기록을 경신하며 9개월 만에 지난해 1년간의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아차의 쾌속 질주는 쏘렌토와 옵티마가 이끌고 있다. 옵티마는 지난 9월 6191대를 팔아 지난해 9월 2024대보다 무려 205.9%나 늘어나며 미국 중형차급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현대·기아차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유럽에서도 펄펄 날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9월 중국 시장에서 쏘나타와 K2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베이징현대(현대차 중국 합자 법인) 7만3255대, 동풍열달기아(기아차 중국 합자법인) 4만3508대 등 총 11만6763대를 팔아 역대 최대 월간 판매 실적을 달성했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유럽에서도 현대·기아차의 오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신형 모닝과 K5 등 신차 효과로 8월 역대 최고 시장점유율인 5.8%(현대차 3.5%, 기아차 2.3%)를 달성하며 전년 동월 5.2%(현대차 3.2%, 기아차 2%)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다.



품질 최우선 경영의 결실 맺다

현대·기아차는 세계무대에서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며 글로벌 메이저 브랜드로 도약했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인터브랜드가 매년 선정해 발표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2005년 처음으로 진입한 이후 지난해 브랜드 가치 50억 달러를 돌파하며 65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현대·기아차의 약진은 그룹 차원에서 실시해 온 품질 최우선 경영의 결실이다. 품질 경영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핵심 경영 철학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0년 동안 ‘품질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며 품질 개선에 총력을 쏟아 왔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삼았던 현대·기아차가 이제는 각종 품질 조사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현대·기아차의 변신을 두고 ‘자동차 업계의 가장 놀라운 기적’이라고 극찬했다. 품질과 함께 세계적 수준에 오른 디자인 역량도 오늘의 현대·기아차를 만든 비결 중 하나다. 기아의 K5, 스포티지R는 레드닷, IF 디자인상, 미국 굿 디자인 어워드 등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렇지만 현대·기아차가 아직은 ‘세계 최정상’에 도달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 가운데 도요타·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르노닛산 등의 견제도 극심해지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1등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생산량도 늘리고 고급차 비중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스마트화와 친환경차 개발도 속도를 내야 하고, 무엇보다 오만에 빠져 나락을 경험한 도요타의 전철을 밟아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들린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10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길을 현대·기아차가 당당하게 달리고 있다. 과연 현대·기아차가 ‘세계 1위’에 오르는 날은 언제쯤일까.

취재=권오준(미국 LA)·장승규·우종국 기자·오광진 한국경제 기자(중국 베이징)
사진=서범세·김기남·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