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현지 취재-중국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높은 수준의 품질을 똑같이 제공한다는 글로벌 전략과 중국과의 허셰(和諧)를 중시한 현지화 전략을 조화시킨 덕분입니다.”

베이징현대차 노재만 총경리(사장)는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질주하는 비결로 두 가지를 들었다. 노 총경리는 중국에서 현대 브랜드의 차가 생산 출시된 2002년부터 베이징현대차를 진두지휘해 왔다.
[현대·기아차]‘현대속도’로 질주…‘300만대 클럽’ 가입
그는 “중국에서도 설계는 물론 부품 품질에서부터 근로자들의 조립 품질과 생산 설비 품질까지 똑같은 글로벌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새 차를 내놓을 때는 본사의 품질팀이 직접 와서 단계별로 평가하고 이 기준을 통과해야 생산과 출시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우수 협력업체와 중국에 동반 진출한 것이나 중국 부품 업체도 같은 수준이 돼야 협력 업체로 받아들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중국이니까 비용을 줄여 어느 정도 품질을 떨어뜨려도 통하겠지’라는 ‘섣부른 중국화’를 거부한 것이다.

대신 현대차는 중국과 함께 발전하는 중국화의 길을 넓혔다. 노 총경리는 “중국의 합작 파트너인 베이징현대차는 물론 중국 직원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허셰 전략이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졌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국 사업에서의 고비를 묻자 베이징 택시 사업 진출을 결정할 때와 4년 전 처음으로 자동차 판매가 감소세로 돌아섰을 때를 회고했다. “현대차가 택시로 많이 보급되면 택시 운전사들의 입소문을 타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것이라는 의견과 당시 대부분의 베이징 택시로 사용되던 샤리 수준 밖에 안 되는 차로 인식돼 이미지가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맞섰지요.” 노 총경리는 “품질에 자신 있었기 때문에 택시 운전사들의 구전(口傳)효과가 클 것으로 확신했고 그래서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2007년에 겪은 어려움은 한 해 전에 출시한 NF쏘나타와 엑센트의 가격이 중국내 인지도 대비 비싼데다 당시 불어 닥친 가격 인하 전쟁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이유에서 비롯됐습니다.” 노 총경리는 이 같은 판단 아래 현대차의 인지도와 가격대를 정밀 조사하고 시장에서 통할 가격에 맞추기 위한 원가 분석까지 마친 뒤 엘란트라를 내놓았다며 중국인의 기호를 제대로 파악한 첫 차종이라고 소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단일 차종 월간 판매로 중국 1위를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현대차 중국 사업의 턴어라운드 주역으로 떠올랐다.
[현대·기아차]‘현대속도’로 질주…‘300만대 클럽’ 가입
노 총경리는 중국 시장을 장밋빛으로만 보지 않았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15년 중국 내 자동차 공급 대수는 2551만 대로 예상되는 반면 같은 해 중국의 국가통계국이 전망한 수요는 1960만 대 수준입니다.” 600만 대 가까운 공급과잉이 이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해법은 단순했다. 현대차가 중국 전역에서 달릴 수 있게 차종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것.

“베이징은 1000명당 200명이 자동차를 굴리지만 30명이 차를 보유하는 귀저우성 같은 곳도 있는 게 중국입니다.” 노 총경리는 대도시와 시골에 맞는 차종이 다르다며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저가로 내놓을 수 있는 중국 전용 브랜드 차종 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현대속도’로 질주…‘300만대 클럽’ 가입
현대·기아자동차가 중국에서도 질주하고 있다. ‘현대속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을 정도다. 현대차의 베이징 합작 공장은 학생부터 기업인과 정부 고위 관료까지 매년 7만 명이 견학하는 학습의 장이 됐다. 기아차가 장쑤성 옌청에서 가동 중인 공장도 고위 관료들의 시찰 코스가 된 지 오래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2002년 중국에서 합작 법인을 만들어 승용차 생산을 시작했다. 1985년 진출한 외자계 자동차 회사 1호 폭스바겐에 비하면 한참 늦은 후발 주자다. 스타트는 늦었지만 ‘현대속도’로 선발 업체들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지난 8월 베이징현대차는 300만 대 클럽(누적 판매 기준)에 들어갔다.

외국계 합작사로는 4번째지만 속도는 중국 역대 최고다. 이치폭스바겐이 29년, 상하이폭스바겐이 22년, 상하이GM이 13년 걸린 것을 베이징현대차는 10년이 채 안 된 기간에 해냈다. 현대속도는 갈수록 속도가 붙고 있다. 베이징현대차가 누적 판매 100만 대를 돌파한 시점은 첫 쏘나타가 생산 라인을 타고 나온 지 63개월이 지난 2008년 2월이었지만 이후 26개월 만에 200만 대, 다시 16개월 만에 300만 대를 넘어섰다.

지난 9월엔 월간 역대 최고 수준인 7만3255대를 기록했다. 내년 7월이면 베이징에서 연산 30만 대 규모의 3공장이 가동돼 100만 대 생산 시대를 열 예정이다. 이어 4공장 계획도 추진 중이다. 쉬허이(徐和誼) 베이징현대차 동사장(회장)이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창립 15주년이 되는 2017년까지 1000만 대(누적 기준)를 판매하겠다”고 공언한 배경이다.



“베이징 택시의 70%가 현대차”

기아차도 9월에 전년 동기 대비 19.5% 증가한 4만3508대를 생산 판매했다. 중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올 들어 10위권에 진입해 월 기준 7위에 올라섰다. 2002년 연간 2만 대에 불과했던 기아차의 현지 생산 판매량은 지난해 33만 대에 이어 올해 43만 대를 예상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은 전 세계 판매량의 20.1%로 가장 많다. 2009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으로 올라선 중국의 고성장 흐름을 그대로 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대속도를 가능하게 한 ‘엔진’은 품질이다. 베이징에서 엘란트라 택시를 모는 운전사 류완수는 “5년간 65만km를 뛰었는데 큰 고장 한 번 없었다”며 “지금 현대차가 중국에서 1위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폭스바겐과 시트로앵의 택시를 채택한 택시 회사들도 최근 들어 현대차로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현대차 정명채 마케팅 부장은 “현대차가 베이징 택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품질의 버팀목이 된 건 탄탄한 노사관계다. 베이징현대차는 지난 8월 중국 정부와 민간 경제 단체가 공동으로 선정한 전국모범노동관계화해기업에 꼽혔다. 특근·잔업 등 시장 상황에 맞춰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노동 유연성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2공장이 바쁠 때는 1공장 근로자가 잠시 옮겨 근무할 정도다. 협력 업체와의 동반 성장도 품질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 베이징현대차 146개 협력사 가운데 56%가 한국계 업체다. 신차 개발 때 협력 업체 연구진을 합류시키거나 소그룹 교육 등을 통해 품질 경영을 지원해 주고 있다.

‘현대속도’가 계속 질주할지의 관건은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있다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베이징현대차의 노재만 총경리는 “중국의 자동차 구매가 점차적으로 그 자체의 품질보다 브랜드 파워, 소비자 만족도, 서비스 지수 등의 감정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 내 자동차 제조사 중 판매량으로는 4위지만 브랜드 가치로는 4위가 안 된다”며 “고급차, 중대형 차량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호는 좋다. 2008년만 해도 20%에 머무르던 중대형 고급차의 비중이 지난해 26%에 이어 최근 35%까지 올라섰다. 중국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노력도 브랜드 인지도 올리기와 무관하지 않다.

2003년 중국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때 사스 퇴치 본부에 업무용 차량을 발 빠르게 기증한 것이나 네이멍구 사막을 초원으로 복원시키는 사막 방지화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속도전의 성공을 발판으로 제2 창업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