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내공’을 키우는 비결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요즘 직장인들의 하루는 ‘살풍경’과도 같다.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와 같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나 후배,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으로 파김치가 된다. 일상이 마치 줄타기를 하듯 위태롭다.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그날의 기분 상태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날씨도 어떤 날은 햇볕이 강렬하고, 또 어떤 날은 흐리듯이 사람의 기분도 이와 같아 밝은 날이 있는가 하면 흐린 날도 있다. 예전 중국에서는 이를 ‘강한 날’과 ‘부드러운 날’로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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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날에는 경서를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사서를 읽는다.” 남회근이 쓴 ‘주역계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남회근은 중국의 유불선(儒彿仙)에 정통해 현대 중국의 현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는 어느 친구 집에서 여러 명이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집 거실에는 자식을 위해 걸어 놓은 글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강한 날에는 경서를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사서를 읽는다(剛日讀經 柔日讀史)”라고 쓰여 있었다. 다들 그 글을 보고 글씨가 좋다고 했지만 강한 날이 어떤 것이고 부드러운 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양일(陽日)을 강이라 하고 음일(陰日)을 유라고 풀이하며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사회든 정치든 어떤 방면이든 거기에 대해 불만이 있을 때,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이런 때는 독서를 하십시오. 역경이나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어 보십시오.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를 읽어 보십시오. 무료하거나 침울할 때, 또는 졸릴 때는 역사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투지와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때문에 강한 날에는 경서를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사서(史書)를 읽으라고 한 것입니다. 강유의 이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승진할수록 책 읽어야 창의력 생겨

직장인 등 누구나 하루하루 기분이 다를 것이다. 즉 강한 날이 있는가 하면 부드러운 날이 있을 것이다. 남회근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날에는 각기 읽는 책을 달리하면 독서의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에 위안과 투지를 주고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서를 읽기에는 겨울이 좋다. 그 정신이 전일(專一)한 까닭이다. 역사서는 여름에 읽는 것이 좋다. 그날이 길기 때문이다. 제자백가는 가을에 읽는 것이 좋다. 그 운치가 남다른 까닭이다. 문집은 봄에 읽는 것이 좋다. 그 기운이 화창하기 때문이다.” 이는 장조가 쓴 ‘유몽영(‘내가 사랑하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첫 페이지에 나온다. 인간의 성정은 계절마다 달라 그 달라진 성정에 맞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나온다. “경전은 혼자 앉아 읽어야 좋고, ‘사기’와 ‘통감(자치통감)’은 벗과 더불어 읽어야 좋다.” 또 장조는 “경서를 먼저 읽고 나서 역사책을 읽으면 일을 논함에 성현과 어그러짐이 없을 것이다. 역사책을 먼저 읽은 후 경서를 읽으면 책을 봄에 한갓되어 구절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독서를 할 때에는 남회근이나 장조의 글에서처럼 그날그날의 기분을 감안해 책을 달리 읽어 보자. 이를 위해서는 집안 곳곳에 다양한 종류의 책을 비치해 놓아야 한다. 필자는 침대 옆에 항상 10여 종의 책을 놓아두고 있다. 동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최근의 경제 경영서까지 뒤엉켜 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이들 책 더미 속에서 하나의 책을 뽑아낸다.

그 책의 종류가 바로 그날의 기분이 담겨 있다. 스트레스를 받고 울분으로 감정이 격한 날을 옛 사람들은 ‘강한 날’이라고 했는데 이런 날 밤에는 ‘논어’와 ‘니코마코스 윤리학’ 같은 경서를 읽는 것이다.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음이 울적하고 비관적이고 가라앉는 ‘부드러운 날’에는 ‘사기’나 ‘십자군 이야기’와 같은 역사서를 읽으면 다시 투지가 살아나고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흔히 승진하면 그때 그동안 다하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가족과 휴가를 보내고 아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승진하면 그 이후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필자가 강연할 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결같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오후 늦게까지 회의다 미팅이다 하면서 지내다 보면 하루가 가고 늦게 귀가하면 책을 붙잡고 있을 여유가 없다. 평소 독서를 즐기던 출판사 사장도 대표이사에 선임된 후에는 책을 볼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요약해 놓은 자료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책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는 알기 위해서다. 이렇게 읽다 보면 창의적인 사고는 나올 수 없다.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리더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독서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내면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차라리 높은 자리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는 게 바람직한 처세술일지도 모른다. ‘주역’에서 말하는 “공을 의식하지 않으면 크게 길하고 이롭다”에 해당할 것이다. 즉 ‘항룡유회(亢龍有悔)’를 경계해야 한다고 남회근은 강조한다. 항룡유회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 높이 도달한 용은 후회가 있다’는 말인데 ‘너무 높은 곳에 오르면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풀이한다.

남회근은 원세개와 그 아들의 일화를 들려준다. 원세개가 황제가 되고자 했을 때 그의 둘째 아들이 말렸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정면으로 반대할 수 없었기에 시로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두드러진 높은 곳에는 비바람이 많으니/화려한 궁궐의 제일 높은 곳에는 가지 않는다.’ 원세개는 이 시를 보고 화가 나서 아들을 가둬버렸다고 한다. 원세개는 신해혁명 때인 1916년 1월 황제를 칭했으나 두 달 만인 3월에 취소되고 6월에 죽었다.

남회근은 “사람은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해서는 안 되며 가장 평범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직장인은 대부분 승진과 높은 자리가 로망이자 인지상정일진대 이게 또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승진에 뒤지면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면목이 없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당장의 욕망을 좇다보면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위안하는 게 퇴직하면 그때 읽고 싶은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퇴직 후에는 또 마음이 어수선하고 바쁘기만 해 책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억만장자들은 독서로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옛사람은 요즘과 달랐습니다. 그들의 관직 생활 자체가 곧 독서와 연계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장서가 많았습니다. 조정에서 집에 돌아오면 옷을 바꿔 입고 부인이나 아이들과 몇 마디 나누고는 곧 서재로 들어갑니다. (중략) 옛사람들은 평생을 학문과 함께했습니다. 책을 읽고 글씨를 쓰고 시를 지었지요. (중략) 현대인들은 퇴직만 하고 나면 매우 적막해진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무엇 하나 변변히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남회근) 물론 그 당시에도 모두가 이런 생활을 한 것은 아닐 테지만, 그야말로 가슴이 뜨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독서는 낮보다 밤이 제격이다. 우리나라에서 야행성 체질의 상징적 존재가 있다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꼽힌다. 안상헌이 쓴 ‘이건희의 서재’에는 “이건희는 어눌하지만 책에서 얻은 지식 덕분에 독특한 용어와 세련된 언어를 구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회장은 자신만의 신념으로 경영에 임하는데 그 비결도 책에서 찾고 있다고 한다. “이건희는 관찰과 사색으로 고독을 채우고, 독서를 통해 얻은 지혜를 실무에 적용한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억만장자들의 돈 잘 버는 6가지 습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낙관론이 승리한다. ▷작은 돈을 모아 크게 불려라. ▷오늘을 마지막처럼 살아라. ▷책을 읽어 내공을 쌓아라. ▷부자가 될 만한 일을 당장 시작하라. ▷주저하지 말고 실행하라.

여기에도 독서가 포함돼 있다. 마지막 습관이 ‘주저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실행하라’다. 독서를 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실행하자. 단, ‘강한 날’과 ‘부드러운 날’에 따라 달리 책을 읽는다면 더 큰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독서 내공’을 키운다면 굳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누구보다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