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는 노후 마스터플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수원에 사는 배대환(남·44) 씨는 지난해 농촌진흥청의 귀농 대학에서 3개월 동안 약 100시간에 걸친 귀농 교육을 받았다. 현재 모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수행 비서로 일하고 있는 배 씨는 조만간 퇴직 후 강원도 양양 쪽으로 귀농할 계획이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아내와 초등학생 자녀도 모두 배 씨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배 씨가 노후 준비를 위해 ‘귀농’을 선택한 건 일에 매여 살았던 지금까지의 삶과 그 궤를 달리하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귀농·부업·창업…‘3인 3색’ 노후 준비
배 씨의 아이들은 각각 13세와 4세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획일적인 도시의 교육 스타일에도 답답함을 느낀 배 씨는 “자연을 접하며 조금은 느긋하게 사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알아보니까 뜻밖에 지방의 교육 여건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제 또래 직장인들 중에서는 귀농하고 싶어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분들도 많은데, 오히려 교육적인 면을 봐도 자연과 가까운 환경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배 씨는 직장에 다니는 와중에 틈틈이 정착할 땅과 집을 알아보느라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낙향할 지역의 귀농회 회원들과 정보도 계속 교류하고 귀농대학에서 배운 농사짓기 위한 환경들도 꼼꼼히 따져 보았다. 배 씨처럼 귀농을 계획하거나 귀농을 꿈꾸는 이들의 커뮤니티인 ‘다음카페 귀농사모’에서는 귀농대학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살아있는 귀농 관련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회원만 12만~13만 명에 달하는 커뮤니티인데요, 이곳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현지에 가서 바로 집을 구매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지역의 장단점을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한동안 살아 본 후 집을 살지 결정하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의외로 임대할 만한 빈 땅과 빈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집이나 땅을 찾아도 주인의 2세들이 훗날 자신들의 귀농을 위해 임대를 주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땅값이나 집값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귀농대학이나 각 지자체에서는 귀농을 앞다퉈 권하지만 막상 현지에서는 귀농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 많더군요. 충실한 귀농 계획을 세울 수 있게 좀 더 정확한 현지 정보를 많이 제공해 줬으면 좋겠어요.”

여러 번에 걸쳐 직접 발품을 판 끝에 원하던 조건에 걸맞은 집과 땅을 구한 배 씨는 늦어도 올겨울이면 양양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지 적응기까지의 생계 대책은 직장에 다니는 아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여러 모로 부족한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자연과 함께 자연이 주는 이로움을 누리며 느리고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커요. 내 아이들에게 내가 직접 키운 안전한 먹을거리를 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죠.”

특기·취미 살리되 투자 위험도 줄여야

삶의 터전을 통째로 옮기는 배 씨와 달리 남경주(여·37) 씨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안정적인 노후 준비를 시작한 케이스다. 남편과 딸, 아들 두 아이를 둔 가정주부인 남 씨는 둘째 아이를 낳기 전까지 농협에서 근무했다.

“출산 때문에 퇴직한 후 온라인으로 아동복 판매를 2년 동안 했죠. 하지만 워낙 비슷한 사이트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웬만한 홍보로는 승산이 없더라고요.”

그 무렵 취미 삼아 공방에서 DIY 가구 제작을 배웠다. 아이들 방에 가구를 만들어 주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하나둘씩 가구를 주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 카페 ‘올리브아줌마’를 열고 원목 수제 가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아이방 인테리어 겸업에도 나섰다.

“자본에 대한 부담감 없이 시작하려다 보니 정식 도메인을 가진 판매 사이트가 아니라 네이버 카페를 통한 공동 구매 형식의 판매를 선택했어요.”

온라인으로 옷을 판매할 때는 자기자본을 들여 미리 상품을 구비해야 하지만 수제 가구 판매는 공동 구매를 통한 판매였기 때문에 판매금이 들어온 후 자재를 구입할 수 있어서 사업비용 면에서 부담이 거의 없었다.

“집 근처에 따로 작업실을 마련하는 게 큰일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어려운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공동 구매 시스템 후 사용 후기 홍보를 유도한 덕분에 사업 홍보비도 전혀 들지 않았고요.”

본격적인 창업에 비해서는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지만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남편은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는 처지인 만큼 안정적인 노후 준비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미래를 준비하는데 보탬이 된 것 같아 기쁘죠.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노후 준비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사전 조사와 여유 자금 마련 ‘필수’
귀농·부업·창업…‘3인 3색’ 노후 준비
자신의 특기를 제2의 인생 항로로 잡은 것은 조인택(남·41) 씨도 마찬가지다. 개인 신용평가 관련 컨설팅 업무에 종사하던 조 씨는 올 7월에 퇴직한 후 현재 열린사이버대학에서 시니어 창업 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퇴직 후 2주일 동안은 나 자신에 대해 공부했어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내 약점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인지, 하고 싶지만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리스트를 작성해 나갔죠.”

빵집이나 커피숍 같은 창업을 할 것인지,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살릴 것인지 고민하던 끝에 조 씨는 후자를 활용한 노후 준비를 선택했다.

“일단 가진 자본이 적기도 하고 빵집이나 커피숍은 보통 10% 정도만 살아남는다고 할 정도로 성공 확률이 낮아 새로운 분야의 창업은 많이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래서 커리어와 특기를 살린 창업으로 안정적인 노후 준비를 하자고 결심했어요.”

다행히 시중에 재무 설계나 컨설팅 관련 창업 교육을 하는 기관들이 많았다. 시니어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중소기업청에서 교육비를 80%를 지원하는 열린사이버대학이나 능률협회 등의 교육기관들에는 다양한 커리큘럼이 준비돼 있다. 조 씨는 그중 주중에는 열린사이버대학에서 ‘1인 기업형 재무 설계’를, 주말에는 한국능률협회에서 ‘중고생들을 가르치는 경제 교육 지도사 강사 양성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사실 퇴직하고 은퇴 준비를 할 때 가장 막막한 건 ‘나 혼자’라는 점 때문이었어요. 어디 가서 어떻게 정보를 얻고 어떻게 해법을 얻을지 알 수 없었죠. 하지만 시니어 창업 교육을 통해 수강생들 간의 네트워크도 생기고 전문가들에게서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의 시장 경향 및 시장 규모 등의 정보를 얻게 돼 한결 큰 도움이 됐어요. 만약 지금 은퇴 준비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시장조사 등을 통해 그 일을 위한 사전 준비를 충분히 해 두는 것이 중요해요. 물론 준비를 위한 기간의 생활 대책도 마련해 두어야 하죠.”

조 씨는 생활 대책을 위해 퇴직금 외에 약 1200만 원의 여유 자금을 준비해 뒀다. 기본 생활비를 200만 원으로 책정하고 약 6개월 정도는 따로 수입이 없어도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마련한 자금이다.

“남들은 왜 이렇게 일찍 퇴직하느냐고 묻더군요. 그런데 전혀 이른 게 아니에요. 45세, 아니 늦어도 50세에 정년을 맞아도 그 뒤에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정도의 삶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시간을 위해서라도 좀 더 일찍, 좀 더 충분한 준비를 통해 노후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