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경 피알하우스 대표

아버지가 27년 동안 근무했던 한 회사를 그만두시던 날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흥건하게 취해 돌아오셨다.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꽃다발을 드리고 이젠 여행도 다니시면서 재미있게 지내시라는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한 말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모두 집에 돌아가고 두 분만 남아 있는 자리에서 아버진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자식 중 누구라도 자기 사업하겠다는 놈이 있으면 말리지 말자고.”
[아! 나의 아버지] 정년퇴임일과 소리 없는 응원
다음번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아버지는 등산을 가시고 어머니 혼자 계셨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날 아버지가 하신 얘기를 들려주며 아이스크림 비즈니스를 하는 아버지 친구분의 얘기를 하셨다.

“아버지와 동갑인 그 친구분이 정년 없이 계속 바쁘게 사업을 하는 것을 보고 부러우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 어느 순간도 당신과 친구의 삶을 비교하지 않으셨는데…. 은퇴하고 기운 없는 당신과 왕성하게 뛰어다니는 친구분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다.

58세, 정년퇴직하고 등산만 즐기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다. 지금 일흔하나인 아버지는 여전히 젊다. 심지어 동안이기까지 하다. 삶에 가려 자식들 뒷바라지하다가 은퇴 후의 미래를 계획하고 맞이한 퇴직이 아니기에 더 허탈하셨던 것 같다.

한창 일할 나이에 덜컥 정년을 맞이하신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조용한 일상으로 하루 만에 바뀌면서…. 그런 갑작스러운 일상을 보니 자기 일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바쁜 일상의 친구가 부럽기도 하셨고, 또한 젊은 날 당신께서 하고 싶었던 일을 접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표현으로 그날 밤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학교를 잘 졸업할 수 있게 같이 공부하고 같이 운동하고 같이 바둑을 두셨다. 학교를 잘 졸업하고 좋은 직장 찾아갈 수 있도록….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으셨다. 그런데 은퇴하던 날 하신 말씀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남동생이 사업을 한다고 겁 없이 선언했다. 걱정 많고 소심한 우리 가족이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무척 걱정하면서도 격려의 말만 전하는 아름다운 연기들을 했다. 아버지 역시 아무 말 없이 응원해 주셨다. 이후 내가 그렇게 얘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소리 내서 응원하지 않으셨지만 그 응원 소리는 다 들렸다. 그리고 큰 힘이 됐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내 일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십여 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감히 꿈만 꿨던 내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지원사격, 즉 ‘자기 일 해보겠다는 놈은 말리지 말자’는 말씀 덕분에 감히 나도 할 수 있었다. 누군가 주변에서 걱정하고 말렸으면 시작도 못했을 텐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잘하기만을 바라는 마음뿐. 아버지의 진심 어린 얘기는 내게 그대로 통했다. 진심은 직접 마주 앉아 얘기하지 않아도 그대로 내 가슴속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아버지는 요즘 작은 사업을 하면서 친구들과 등산도 하고 그분들과 술 한 잔 즐겁게 기울이시면서 무척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다. 주말엔 아버지를 찾는 전화가 내 전화보다 더 많다. 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내 미래를 그려본다.